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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로니의글적글적 Dec 20. 2022

산타는 있다

마흔 살 힐링 담론 : 나의 보물

 



  크리스마스 이른 아침 눈을 떴다.

차가운 공기가 코끝을 훅 스쳤다. 시골의 찬바람은 집안이라고 예외가 없다. 밤사이 이불 위에 발을 올려놓고 잔 건지 한기가 느껴졌다. 나는 흐트러진 이불을 발로 뒤적여 머리끝까지 잡아당겼다. 두툼한 목화솜 이불이 몸을 눌렀다. 마치 이불에 깔린 듯 묵직한 느낌이 싫지 않았다. 몸은 이불속에서 꿈틀거릴 뿐 나는 일어나고 싶은 생각이 없었다.     


  “로니야.”

   옆에 누워있던 둘째 언니가 속삭이듯 부르는 소리가 들렸다. 나는 이불을 살짝 내렸다.

  “로니야, 이거 봐봐.”

  “뭐?”

   나는 목화솜이불을 턱으로 지그시 누른 뒤 언니에게 대꾸했다.

귓가에서 바스락대는 소리가 났다. 나는 얼굴은 그대로 둔 채 눈알만 돌려 언니를 쳐다봤다.

  

  새빨간 바탕에 금빛 무늬가 화려하게 들어간 포장지였다. 나는 그것을 보자마자 이불을 걷어차고 벌떡 일어났다. 빛의 속도가 따로 없다. 나는 주인 만난 강아지처럼 언니 옆으로 바짝 다가가 앉았다.

 빨간 포장지의 정체는 한눈에 보아도 예사롭지 않은 물건 같았다. 여덟 살 어린 마음에도 그건 필시 선물이라는 확신이 들었다. 어젯밤 잠들기 전 산타할아버지께 손꼽아 빌었던 소원이 드디어 이루어지는 듯했다. 나는 난생처음 받은 크리스마스 선물 앞에서 마른침을 꼴깍 삼켰다.


  언니가 내 머리맡에 있었다며 들고 있는 포장지 중 하나를 건네줬다.

미미 인형? 예쁜 원피스? 자석 필통? 기차 연필깎이? 나는 크리스마스 소원 목록을 떠 올리며 포장지를 조심스레 뜯기 시작했다. 핀란드에서 물 건너온 선물이라 그런지 꼼꼼하게 붙은 유리 테이프가 잘 떨어지지 않았다. 마음이 조급하여 바삐 손을 놀렸다.

  순간, 빨갛게 반짝이던 포장지가 은빛으로 활짝 펼쳐지더니 선물이 모습을 드러냈다.      


  눈을 한번 깜빡이자 노란 리본이 보였다. 나는 그것을 얼른 집어 들었다.

머리띠였다. 나는 머리띠를 들고 요리조리 살폈다. 머리띠는 노란 벨벳 천으로 귀 닿는 부분까지 마무리되어 있었는데 몰캉하고 부들부들한 게 손에 닿는 느낌이 좋았다. 머리띠 가운데 딱 자리 잡은 노랗고 커다란 대왕 리본은 통통한 볼륨감이 있었다.

  “언니야, 나 어뜨노?”

   나는 노란 머리띠를 머리에 하고서 고개를 이리저리 돌려댔다.

  “와! 니 진짜 예쁘다. 이것 봐라. 내 샤프도 멋지지? 신발 인형도 달렸다.”

  두 살 많은 언니가 샤프를 흔들며 들뜬 목소리로 말했다.

  “진짜?” 

  “그래, 이런 거 큰 언니가 쓰는 거 봤는데 나도 갖고 싶었거든. 밤에 진짜 산타 할아버지가 다녀가셨나 보다.”

  언니는 샤프 머리를 꾹꾹 누르며 말했다. 나는 마치 미미 인형이라도 된 듯 거울을 보며 연신 머리카락을 쓸어내렸다. 창문 너머 크리스마스 아침이 상쾌하게 밝아왔다.     

 





  나는 12월이 가까이 올 때마다 기도했다. 크리스마스 시즌이 되면 울지 않으려고 부쩍 씩씩한 아이가 되었고 말이다. 그 덕분인지 다음 해 그다음 해까지 산타할아버지가 다녀가셨다.

  어떤 날은 연습장을 찢어 만든 크리스마스 카드와 함께 새우깡을 두고 가셨고, 다른 날은 빨간 장화 모양의 과자 선물 세트를 놓고 가셨다. 산타할아버지가 다녀가고 난 아침은 그야말로 축제였다.

 

  하루는 산타의 모습을 직접 확인하겠노라 잠들지 않으려고 무척 애를 쓴 적이 있다. 산타를 기다리다 지쳐 까무룩 잠이 들 때쯤 루돌프의 썰매 끄는 소리가 들리는 것 같았다. 이불속에서 ‘산타다.’ 하며 오는 잠을 이기려고 하면, 옆에 누워있던 큰언니가 얼른 자지 않으면 산타가 도망간다며 으르기 일쑤였다.      


  그러다 내가 열두 살이 되던 즈음 산타가 오지 않았다. 머리맡에 선물을 두고 가던 산타의 행방은 묘연했고 대신 온 가족 만두 빚기가 크리스마스 행사로 자리 잡았다.

  나는 산타의 행방불명이 의아했다. 내가 산타의 존재를 의심해서? 아니면 너무 커 버렸나? 서운한 마음이 잊힐 때 즈음 사라진 산타의 정체가 밝혀졌다.

 

  크리스마스의 산타는 바로 큰 언니였다. 크리스마스 밤이면 큰언니가 유독 신경이 곤두서 보였던 이유가 그랬다. 선물 배달이 들키기라도 할까 봐, 혹 아이들보다 먼저 잠들면 어쩌나 혼자 노심초사했었다며 고백을 했다.

  당시 초등학교 6학년이던 언니는 코 묻은 용돈을 조금씩 모아 선물을 마련하게 되었고, 뜻밖의 환호로 반응하는 동생들을 보며 몇 해를 산타로 지내게 되었단다. 언니는 행복한 어린아이의 마음, 순수한 동심의 세계를 지켜주고 싶었다고 했다.      


  예상을 뒤엎었던 큰언니 산타는 적잖이 충격을 주기도 했지만 내 유년 시절 아끼는 보물처럼 소중한 추억이 되었다.

  어느덧 12월, 어리지만 조숙했던 깜찍한 산타 덕분에 지금도 크리스마스 시즌이 되면 그때 기억이 몽글몽글 떠오른다. 이번 크리스마스에는 오시려나. 내 마음속에는 영원히 크리스마스의 산타가 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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