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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로니의 글적글적 Dec 29. 2022

신춘문예는 가고, 브런치가 왔다

마흔 살 힐링 담론: 행복했던 순간



  하늘이 유난히 흐렸다. 오늘 아침 일기예보에 눈 소식이 있었는데 그 때문인지 몸이 더 찌뿌둥했다. 무거운 몸을 이끌고 거실로 나와 창밖을 내다봤다.  

  크리스마스이브. 한때 코로나가 집어삼킨 세상은 언제 그랬냐는 듯 일상으로 돌아가고 있었다. 아파트 곳곳마다 나무들은 알록달록 예쁜 조명옷을 입었고 연말을 즐기려는 사람들의 모습도 활기차 보였다. 나도 거실 귀퉁이에 서 있는 크리스마스트리에 전등을 켜고 식탁 벽에는 파티 가랜드를 걸어 한껏 크리스마스 분위기를 냈다. 


  오늘 밤에는 성탄전야 예배에 갈 것이다. 간단히 가족 파티를 하려고 이른 저녁 준비를 시작했다. 아파트 상가 피자집에 전화를 걸어 새로 나온 피자를 주문하고 스파게티는 직접 요리하기로 했다. 나는 양파를 얇게 채 썰어 베이컨과 함께 볶았다. 달콤한 양파와 베이컨 향이 오묘하게 뒤섞여 주방 가득 기분 좋게 퍼졌다. 





  깨톡! 교회 유년부 선생님께 알림이 왔다. 

  '아차, 무대 의상!'

  둘째 아이가 성탄 전야제에 입고 가야 할 준비물이었다. 나는 하던 일을 멈추고 성큼성큼 베란다로 가서 문을 열었다. 싸늘한 기운이 온몸에 닿자 어깨가 절로 움츠러들었다. 나는 서둘러  건조대에 널려있는 빨간 스웨터 향해 손을 뻗었다.

  ‘아뿔싸! “

  어제 세탁한 옷에서 꿉꿉함이 느껴졌다. 

  ‘아… 방에 널었어야 했는데….'

  나는 지금이라도 건조기에 돌릴까 말까 후회를 하며 빨간 스웨터에를 들고 거실로 들어왔다.      

 


   띠띠디디딕~ 띠리릭.

  그때, 누군가 현관 도어록을 누르는 소리가 들려왔다. 또박또박 누르는 소리로 짐작하건대 둘째 아이가 틀림없었다. 

  “엄마! 엄마, 나 오늘 학원에서 크리스마스 파티했어. 이것 봐! 선물도 많아. 우리도 파티해? 교회는 몇 시에 가?"

  성지는 가방을 휙 벗어던지고는 마치 장전된 따발총처럼 질문들을 퍼부었다.

  “응? 아니, 넌 집에 오면 손부터 씻어야지.”

  나는 아무렇지 않게 식탁에 앉는 아이를 못마땅해하며 눈을 흘겼다.     


  띠띠띠디딕~띠리릭. 

  다시 도어록 소리가 들리더니 이내 외욕실에서 물소리가 났다. 그리고 잠시 뒤,

  “나왔어. 오늘 저녁은 백퍼 스파게티! 예스! 내 말이 맞네.”

  지우가 물기 묻은 손을 옷에 닦으며 주방으로 걸어오더니 프라이팬을 힐끗 쳐다보았다. 곧이어 남편이 들어왔다.

  “옴마! 깜짝아! 당신은 언제 왔어?”

  “나? 난 백 년 전부터 여기 있었는데? 크리스마스 케이크는 냉장고에 벌써 넣었어.” 

   내가 어깨를 들썩거리며 놀란 기색을 보이자 남편이 히죽거리며 말했다.

  “스파게티 냄새 좋네. 옷은 왜? 성지 스웨터 아직 안 말랐어? 내가 드라이기로 말려볼까?”

  온 가족이 거실에 다 모이자 집이 들썩 거리는 듯했다.     


 




   우리는 식탁에 둘러앉아 저녁 식사를 했다.  산타 피규어가 있는 크리스마스 초콜릿케이크를 식탁 가운데 두고 배달 온 피자와 스파게티를 양옆으로 나란히 놓았다. 초에 불이 붙자 어떤 노래를 불러야 할지 몰라 박수만 요란하게 쳐댔다. 오늘 스파게티는 성공적인 듯 아이들은 두 번씩 리필해 먹었다. 나도 스파게티를 한입 먹으려던 참이었다.


  “참, 그런데 말이야. 당신, 지난번 응모했던 신춘문예 말인데. 이제 발표날 때 되지 않았어? 크리스마스 전에 결과 나온다고 했던 것 같은데?”

  나는 남편의 갑작스러운 질문에 당황스러웠다.

  "그… 그래? 벌써 시간이 그렇게 됐나?"

  나는 모르는 척 대답을 얼버무렸다.

  "맞다! 엄마가 당첨된 사람은 크리스마스에 전화 온다고 했었잖아."

  “내가? 그랬나? 그게… 말이지. 아무래도 여태 연락이 없는 걸 보면 이번에도 안 됐나 봐….  뭐, 어차피 난 처음부터 맘 비웠어. 경험 삼아해 본 건데 뭘. 내년에 다시 도전해 볼 생각이야. 아! 아이고, 여러분! 교회 늦겠다. 그냥 맛있게 밥이나 먹자고.”

  나는 지우에게 아무렇지 않다는 듯한 표정을 지으며 어색하게 웃었다.

  "음, 그래. 신춘문예라… 그건 아무리 생각해도 하늘에서 별 따기야. 정식 작가들한테도 수능이라 여겨질 만큼 어렵다는데…"

  남편은 잠시 내 표정을 살피더니 말끝을 흐렸다. 

  "자, 자 너희들 서둘러 준비 안 하냐? 아빠가 스웨터는 다 말렸다. 여보, 식탁도 내가 치울게."     

  남편이 고개를 휙 돌려 시곗바늘을 가리켰다. 6시가 넘어가고 있었다. 남편의 말이 끝나자마자 우리는 아무 말 없이 각자의 할 일을 시작했다. 





    아이들은 청바지에 빨간 스웨터를 입고 검정 롱패딩을 걸쳤다. 나도 모처럼 빨간 모직 코트를 꺼내 입었다. 빨간색이 왠지 기분을 좋게 하는 것 같았다. 

  우리 가족은 교회에 가려고 함께 집을 나섰다. 엘리베이터 문이 열리자 지하 2층을 눌렀다. 어색한 침묵과 함께 주차장으로 내려가고 있던 그때, 휴대전화 알림음이 울렸다. 나는 가방에서 급히 휴대전화를 꺼냈다.      

  ‘브런치 작가가 되신 것을 진심으로 축하드립니다!’

  “허 업!”

  브런치였다. 나는 짧은 외마디와 함께 나도 모르게 입을 틀어막았다.

  ‘글 발행에 앞서 프로필에 <작가 소개>를 추가해 주세요!’

  "진짜?"

  나는 휴대전화를 가만히 들여다보다가 혼잣말로 웅얼거렸다. 마치 꿈을 꾸듯 머릿속이 멍했다. 

  “여보, 왜? 뭔데 그래?” 

  “엄마?”

  “여보! 나, 브런치 합격했데!”

  “올! 대박! 당신 그럼 브런치 작가 된 거야? 그건 또 언제 신청했데? 정말 잘됐네. 진짜 축하해!”

  엘리베이터가 지하 주차장에 도착했다. 나는 남편과 아이들의 축하를 받으며 얼떨떨한 채로 자동차에 올랐다.     

     




     

  자동차는 지하 주차장을 벗어나 도로 위를 달렸다. 도로마다 차들이 가득했다. 거리에는 화려하게 장식한 네온 불빛과 크리스마스트리가 번쩍거렸다. 

  "여보, 여기 봐봐. 눈 오는 것 같은데? 올해는 화이트 크리스마스가 되겠는걸. 오늘 아주 기쁜 소식이 많네."

  남편이 들뜬 목소리로 말했다. 하늘에서 흰 가루가 하나 둘 날리더니 차창에 살포시 내려앉았다.

  "와! 형아, 진짜 눈이야!" 

  "…."

  "엄마, 엄마는 이제 진짜 작가님이야?"

   "…."

  성지가 보조석으로 바짝 몸을 기울이고 호기심 가득 찬 목소리로 물었지만 나는 아무 대답도 하지 못했다. 조금씩 시야가 흐려졌다. 뜨거운 눈물이 흘러내렸다.      

  ‘하나님, 감사합니다!’

  어느새 하늘에는 함박꽃 같은 눈송이가 펄펄 쏟아지기 시작했다. 2022년 크리스마스이브의 밤이 하얗게 깊어갔다.          

                                                     

                                                                                 

                                                                           -2022년 초 '1년 후 나의 모습'을 회상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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