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로니의글적글적 Jan 26. 2023

화가 난다

마흔 살 힐링담론: 나의 화 포인트


     


  사람들은 살면서 늘 화와 대면한다. 화가 나면 소리를 지르거나, 얼굴이 붉으락푸르락 해지거나, 폭력을 행사하거나, 울거나, 혹은 속으로 삭이거나.

표현 방법이 다를 뿐 다양하게 화가 나타난다고 할 수 있겠다.     


  나 어릴 적 보았던 동화책이나 TV에는 화를 내면 악당이고 나쁜 아이라고 했다. 형제가 많은 우리 집 역시 화라는 감정을 표현하는 것은 좋은 언니 혹은 착한 동생으로서의 본보기가 아니었다. 부정적인 감정은 숨겨야 했고, 부모님과 선생님께 칭찬받기 위해서 어떠한 상황에서도 꾹 참고 견디는 착한 아이의 이미지가 필요했다. 

  

  나는 엄마가 되기 전까지 제법 연기력이 좋았던 것 같다. 그런데 요즘 나의 화는 툭하면 잘도 튀어나온다. '뭐지? 뒤늦은 질풍노도의 감정. 나의 화 포인트.    




    


  그 약속 안 지킬 거면서 왜 해?


  어릴 적 부모님으로부터 약속은 꼭 지키는 거라고 교육받았다. 사람과의 약속뿐 아니라 학교나 직장 생활도 마찬가지였다. 나는 정해진 규칙과 시간에 진심인 편이다. 덕분에 학교 다닐 때는 늘 개근상을 받았다. 정형화된 주입식 교육의 좋은 산실이다.


  나는 일방적으로 약속을 취소하거나 약속 시간에 느긋이 나타나는 사람들을 보면 애가 탄다. 그런 사람은 약속을 잡고도 변덕스럽게 변하기라도 할 것 같아 신경 쓰이기 마련이다. 외출복을 입고 집을 나서려는데 아무렇지 않게 전화해서 약속을 변경해 버리는 사람도 있다. (갑작스럽게 생긴 중요한 일이야 충분히 이해하지만) 그 심리 무엇? 나는 약속 시간에 상습적으로 늦거나 변경하는 사람에게 무례함을 느낀다. 상대방에 대한 배려가 부족하다면 네 번까지만 참겠다.      


    

  죽자고 달리는 택시는 아니지     


  이른 아침, 문화센터 수업이 있는 날. 오늘은 늦겠다 싶어 택시를 타기로 했다.

휴대전화 앱으로 카*오 택시를 불러 놓고 아파트 정문 앞으로 나와 택시가 오길 기다렸다. 조금 뒤 택시가 도착했고 나는 급히 택시에 몸을 실었다. 그런데 싸한 이 느낌.

  

  기사님은 자동차 문이 닫히자마자 풀 액셀을 밟기 시작했다. 더구나 혼잡한 시내 도로에서 자동차와 자동차 사이를 아슬하게 비켜 가기를 반복한다. 택시는 급정거와 급출발을 계속하고 내 머리는 성난 파도처럼 일렁거렸다. 나는 '무사히만 내리자' 마음속으로 기도했다. 울렁거리는 속과 불안감에 택시 기사님께 대놓고 얘기는 못 하겠다. (요즘 어떤 세상인데)     

 

   택시에서 내리자마자 조용히 휴대전화를 꺼내 들고 탑승 후기를 클릭했다. 별 한 개! 안전 개념 없으신 기사님, 우리 다신 보지 말아요.     



  어려도 지킬 건 지키자     


  우리 가족은 숲 놀이터로 주말 나들이를 갔다. 모처럼 여유롭게 숲 속을 거닐고 다양한 놀이 체험을 하며 재미있는 시간을 보냈다.

숲 속 산책을 하다가 질서 정연하게 줄 서 있는 사람들을 발견했다. 집라인을 타기 위해 기다리는 사람들이었다. 우리도 집라인으로 이동해서 줄을 섰고 차례가 오길 기다렸다. 조금 시간이 지나자 드디어 우리 차례가 왔다.      


  우리가 로프를 잡으려던 그때, 초등학교 1학년쯤 돼 보이는 남자아이가 짓궂게 다가왔다. 그러더니 태연히 로프를 가로챘다. (너 뭐임?) 아이에게 네 차례가 아니라고 눈빛을 주지만 아이는 다짜고짜 로프를 끌고 가려고 했다.


  '저... 못 알아들을 나이는 아닌 것 같은데?' 흠흠.

  열받은 내 심장이 쿵쾅거리기 시작했다.      

  ‘네 엄마 어디 계시니? 아들이 당당히 새치기 중인데요?’라고 하고 싶지만 그 말은 목구멍 밑으로 꾹꾹 눌러 넣었다. 좀 더 이성적으로 말해보자. 너도 남의 집 귀한 자식일 테니.

  

    “얘야, 집라인은 차례차례 타는 거란다. 지금은 우리 차례니 너는 뒤에 가서 줄 서렴.”

  나는 표정은 단호하게 낮은 어투로 말했다. 네가 무슨 잘못이겠니 못 가르친 어른들이 문제지. 어려도 지킬 건 지켜야 하는 법.      


         

  똑같은 얘기는 그만!     


  두 아들과 남편. 온 가족들이 모이는 저녁이면 우리 집 거실은 늘 부산스럽다. 원래 정리된 것을 좋아하지만, 청소는 좋아하지 않는 나로서는 점점 원점에서 멀어지는 집안 상태가 견디기 어렵다. 여기저기 아무렇게나 벗어던진 양말이며 옷으로 그야말로 난리부르스다.

  

  '내가 색을 구분하라고 했어. 용도를 구분하라고 했어. 하다못해 뒤집어 놓으라고 했어. 그냥 빨래통에만 넣어 주면 안 될까? 옷과 양말은 제발 빨래통에. 벗은 옷과 양말로 지나간 흔적을 알고 싶진 않아. 아오, 벌써 13년째 같은 말이야!'     


  그리고 보태기.

  결혼 15년 차. 작년부터 시댁 명절 제사는 안 지내기로 했다. 음식스트레스 없는 추석 때 너무 좋았다.(할렐루야) 그런데 기쁨의 눈물이 마르기도 전에 설 전날 전화로 오색 나물은 해오라는 시월드. 나물이 없으면 명절에 먹을 게 없다고 하신다. (오마낫!) 

  식구도 단출하고 제사도 안 지내기로 해서 간단히 소고기 구워먹기로 했는데 먹을 게 왜 없지? 안 하기로 했으면 그냥 안 해야 하는 거 아닌가. 자꾸 말이 바뀐다. (진심 끙)   또 ?!

   

  에라, 오늘이 그날이다. 이럴 땐 시원하게 하현우급 샤우팅!

"악!"     




  

  몇 가지 상황을 떠올려 보니 나는 약속을 안 지키는 사람, 기본 질서를 흐트러뜨리는 사람을 보면 화가 튀어나오는 것 같다. 불편한 감정. 어떻게 내느냐에 따라 손해일지 득일지 모를 일이다.

  그건 사람이기에 어쩔 수 없지 않겠어. 화가 오면 깊은숨을 들이마시자. 그리고 내쉬면서 생각한다. 좋은 사람처럼 착하게, 나를 건강하게 보호하기 위해 슬기롭게 화를 표현하기로.





사진 © julienlphoto, 출처 Unsplash

작가의 이전글 학교 가는 길, 정말 싫은 날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