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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로니의 글적글적 Nov 24. 2022

나는 마흔에 꿈꾼다

마흔살 힐링 담론: 나의 꿈

          




 나에게는 습관처럼 매일 하는 일이 있다. 이 일을 한 지 십여 년 정도 된 것 같다. 바로 두 아들에게 잠들기 전 책을 읽어주는 것이다. 꼭 어떤 책을 읽겠다고 정해놓은 것은 없다. 우리는 그림책, 동화책, 영어책 등 손에 잡히는 대로 책 두 권을 읽고 난 뒤에야 잠자리에 들 준비를 했다. 일종의 잠자리 의식 같은 것이라 하겠다. 내가 책을 들고 침대에 앉아 있으면 아이들은 나를 가운데 두고 양 옆구리에 조용히 파고들었다. ‘책 읽기 준비가 되었다’라는 신호였다. 그러면 나는 나지막한 소리로 책을 읽기 시작하고 아이들은 내 목소리를 따라 찬찬히 눈을 굴렸다. 나는 그 모습이 신기하기도 하고 참 기특했다. 아이들이 이따금 방긋 웃어주기라도 하면 더 신이 났다.    


  아이들의 웃음은 큰 용기가 되었다. 내친김에 도서관 동화 구연 강좌를 수강했다. 수업 시간에 배운 것은 저녁 책 읽기 시간에 고스란히 써먹었다. 나는 마치 동화 속 주인공이 된 듯 목소리 연기를 했고 아이들은 재미있다는 대답 대신 반짝이는 눈빛으로 화답해 주었다. 나는 그럴 때마다 아이들에게 큰일을 한 것 같아 뿌듯했다. 그런 날이 많을수록 동화구연 수업에 더 열심을 내었다. 나는 수업을 들은 지 몇 개월이 지나서 동화구연 대회에 나갔다. 대회에서 운 좋게 입상까지 하게 되었고 동화구연 지도자 과정까지 수료했다. 나는 그때까지 무엇을 하겠다는 목표는 없었다. 그저 무엇을 배우는 것이 좋았고, 나 잘살고 있다는 것을 증명하듯 차곡차곡 쌓이는 스펙에 안도감이 들었다.


 어느덧 시간이 흘러 아이들은 6학년, 3학년이 되었다. 아이들에게 동화책을 읽어주던 어느 날이었다. 책을 읽고 있는데 문득 '나도 어렸을 때 상상하는 것을 좋아했고 백일장에 나가 글 쓰는 것을 즐겨했었지'라는 생각이 들었다. 자주 그런 생각이 반복되는 순간, 언제부턴가 '나도 글을 쓰고 싶다'라는 마음의 소리가 들려왔다. 나는 아이들에게 글 쓰는 엄마가 되고 싶었다. 아니 이제 내가 잘하고 좋아하는 일을 하고 싶다. 십여 년 넘게 육아에만 전념했던 나는 오랫동안 서랍 속에 넣어 두었던 꿈 상자를 다시 꺼내 들었다. 내가 쓴 동화가 책이 된다면 더 좋을 것 같았다. ‘할 수 있겠어?’하는 내면의 소리가 ‘할 수 있다’로 변하는 순간 심장이 요동치기 시작했다.     




  


 도시이지만 시골스러운 우리 동네에는 작은 도서관이 있다. 아파트 숲을 건너 좁은 들길로 들어서면 과수원을 지나서 나오는 보물 같은 곳이다. 나는 일주일에 한두 번 도서관을 간다. 아이들과 갈 때도 있지만 요즘은 혼자 가는 날이 더 많다. 그때만큼은 엄마가 아니라 온전한 나로 누릴 수 있는 시간이라 더 특별했다. 도서관에 앉아 책을 읽거나 글을 쓰고 있으면 마음이 저절로 편안해졌다. 그런데 가끔, 혼자 하는 일이 어려울 때가 있다. 

 새해가 되면서 호기롭게 세운 몇몇 계획 중 '하루 한 번 쓰기 실천'은 지킨 날보다 안 지킨 날이 더 많았다. 이러다가 연말이 되면 어쩌나 후회하고 있는 내 모습이 눈앞에 어른거려 불안해질 때가 많았다. 나는 함께 '쓰기'를 할 누군가 절실히 필요했다.


 그즈음이었다. 어느 공공도서관에서 글쓰기 강좌 모집 공고가 있었다. 도서관 홈페이지에 들어가 강좌를 클릭하고 강의계획서를 보는 순간'아! 이건 꼭 신청해야지'라는 생각이 번쩍 들었다. 마치 글쓰기 사막에서 오아시스를 만난 것 같았다. 다시 말해 전업인 내가 꿈 찾겠다고 값비싼 수업료를 들일 수 없는 형편이니 내게 무료 도서관 수업은 최상의 조건이었다. 나는 지금 '내 마음 글쓰기'라는 문화강좌를 수강하고 있다. 한 주마다 주제에 맞는 문학작품을 감상하기도 하고 선생님께서 글쓰기 이론과 감상평을 해주신다. 또 회원들이 정성스레 쓴 작품을 나누고 피드백도 한다. 자신의 삶을 고스란히 녹여 완성한 작품들을 만날 때면 때론 자극이 되기도 하고 어떤 날은 힐링이 되기도 한다. 나는 일주일 한번 수업에 갈 때마다 기다리던 좋은 친구를 만나는 것 같아 무척 설렌다. 

 

  나는 글쓰기를 하기 전 생각하는데 시간을 많이 두는 편이다. 하나의 주제가 던져지면 여러 생각으로 끙끙댄다. 그리고 마감 시간이 임박해 오면 숙제하듯 몰아 쓰기 시작한다. 글을 쓸 때마다 괴롭기도 하고 그 괴로움을 즐기기도 한다. 나는 글쓰기를 하며 살고 싶다. 어느 날은 바닷가에서 수채화 같은 주홍빛 노을을 보고, 다른 날은 숲 속에서 쏟아지는 별과 함께 글을 쓰며 늙어가고 싶다. 내 이름으로 된 책이 세상에 나오면 좋겠다. 따뜻한 이야기가 세상 사람들에게 온통 물들면 좋겠다. 이왕 꾸는 꿈 베스트셀러도 상상해본다. 지금은 누군가 내 글을 읽는다는 것이 부끄럽기도 하지만 글쓰기 내공이 쌓이면 당당하게 말하리라. 이것이 나의 이야기의 시작. 마흔의 꿈이었다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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