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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로니의 글적글적 Nov 30. 2022

선물

마흔살 힐링 담론 : 부모님과 나

              



 어느새 마흔. 두 아이의 엄마가 되었다. 결혼 전에는, 우아하게 품위를 지키며 좋은 엄마가 될 것이라는 상상을 많이 했었다. 하지만 현실은 거리가 먼 것 같다. 세상에서 엄마가 최고라는 아이가 너무 사랑스럽다가도 작은 일로 버럭 거리고 마음이 상해서 화내기 일쑤다. 매일 밤 잠든 아이들의 모습을 보면 아쉬움의 연속이다. 나는 엄마 역할을 능수능란하게 해낼 거라는 로망이 있었지만 어디까지나 꿈이었나 보다.

 요즘은 어릴 적 생각을 많이 하곤 한다. 엄마는 오 남매를 어떻게 키우셨을까? 새삼 대단하게 느껴진다. 자식들 모두 학교에서나 사회에서도 성실한 모범생으로 칭찬을 받으며 자랐으니 말이다.     


 부모님은 시골에서 농사를 지으셨다. 늘 바쁘셨지만 짬이 생기면 그네나 시소도 만들어 주시고, 여름이면 댕댕이덩굴을 따다가 바구니를 함께 만들기도 했다. 다정한 표현은 많이 안 하셨지만 따뜻하게 느껴졌다. 그래서일까 무난한 유년 시절을 보낸 것 같다. 그러다 학교에 가면서 엄마한테 서운한 일이 생겼다.


 열한 살, 어느 여름이었다. 엄마 아빠는 대구에 있는 큰집으로 제사를 지내러 가셨다. 제사가 늦게 끝나니 하룻밤 자고 온다고 하셨다.

 부모님이 안 계신 아침, 언니와 학교에 가려고 동구 밖을 나서는데 갑자기 배가 아팠다. 전날 친구들과 앵두를 따 먹은 게 탈이 난 것 같았다. 살살 또 살살 아팠다.

 집에서 학교까지는 어린이 걸음으로 한 시간 남짓. 가는 길에 설사를 만난다면 큰일이라는 생각에 언니를 먼저 보내고 방에 가서 누웠다. 배는 아팠지만 오래 안 걸으니 좋았다.

 더워도 가고 추워도 가고 아파도 울며 가던 학교. 꼭 학교는 가야 했다. 엄마는 내가 반장이 되었을 때도 상을 받았을 때도 그중 제일은 개근이라고 말씀하셨다. 엄마가 안 계신 틈을 타 반항하듯 게으름이 생긴 걸까? 6년 개근을 앞두고 사고를 치고 말았다.


 설사가 차차 나아질 때 즈음, 대구에 가셨던 부모님이 돌아오셨다.

“어, 니! 학교에 안 갔나? 엄마야, 정신이 있나? 없나? 결석이 웬 말이고! 참말로, 학교는 갔다 왔어 야제!”

 엄마는 마당에 들어서자마자 나를 보고 불같이 화내셨다. 어디가 어떻게 아픈지 묻지도 않았다. 혼자 배가 아파 힘들었는데, 뾰족하게 들리는 엄마 말은 더 속상했다. 그러나 엄마는 내 기분 같은 건 아랑곳하지 않으셨고 다음 날에도 그다음 날에도 시간 약속, 학교 가는 것만큼은 꼭 지키게 하셨다.      





 


 며칠 전 아침이었다.

“엄마, 나 배 아파. 학교 안 가도 돼?”

 작은아이가 배를 잡고 다가왔다.

“응? 왜? 많이 아파?”

 아이에게 장에 좋은 음식이라며 빈속에 요구르트와 마(麻) 가루를 타서 줬던 것이 문제였다. 학교 갈 시간은 지났는데 화장실을 들락날락하는 모습을 보며 아홉 살 인생 첫 결석이라도 하면 어쩌나 조바심이 났다. 평소에도 잦은 배앓이가 있는 아이한테 괜한 짓을 한 것 같아 미안한 마음과 걱정이 들었다. 배를 쓸어주고 핫팩으로 찜질을 하며 몇 시간을 보내니 차차 나아지는 것 같았다.     


  나는 아이를 학교에 보내 놓고 내내 신경이 쓰여 교문 앞으로 마중 갔다.

“성지야, 잘 다녀왔어? 배는 좀 어때?”

 조퇴하고 나와 터덜터덜 걸어오는 아이를 보고 낮은 목소리로 물었다.

“괜찮지. 이제 다 나은 것 같아.”

 아이가 웃으며 말했다. 마스크 위로 반달 눈이 떴다. 나는 아이의 손을 잡고 집으로 함께 오면서 여러 마음이 들었다. 아플 땐 결석하면 그만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이런 모습을 보여주고 싶었다.

 열 없으면 결석하지 않기, 약속은 미리 정하고 지키도록 노력하기, 준비물은 전날 챙기기, 숙제는 빼먹지 말기.

 특별하지 않은 일이지만 지키려고 노력하면 좋은 습관이 되겠지. 생각해보니 삼십여 년 전 엄마도 이런 것을 알려주고 싶으셨던 것 같다. 그 깊은 속내를 알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렸다. 무뚝뚝하셨지만  배 아픈 나에게도 이런 말을 먼저 하고 싶지 않으셨을까?

‘로니야, 많이 아팠나? 좀 괜찮나?’






 오늘은 백내장 수술을 하신 엄마와 함께 경과를 보러 가는 날이다. 엄마는 처음 하는 수술이라 많이 긴장하신 모습이었다. 엄마가 수술실에 들어갈 때 잘하고 오겠다며 파이팅을 외치던 뒷모습은 왜 그렇게 짠했을까? 늙고 작아지신 모습이 안쓰러웠고 엄마의 양육 방식을 싫어했던 마음도 죄송했다. 새삼 지금 옆에 계신 엄마의 소중함이 느껴졌다. 내 손을 꼭 잡은 거칠고 투박한 손은 더 따뜻했다.      


 나는 학창 시절 한 번의 결석 이후 계속 개근상을 받았다. 장학금을 받고 다닐 만큼 학업성적도 좋았고, 개근은 좋은 이력이 되어 직장에서 승진도 빨랐다. 지금도 봉사활동이나 모임의 책임 역할을 맡고 있고,  성실함으로 신뢰를 받고 있다. 그건 아마도 어린 시절 시간과 약속을 지키려고 노력한 덕분인 것 같다.

 돌이켜보니 인생에 좋은 영향이 되었다. 엄마가 나에게 주신 선물인 것 같다. 모든 순간, 지금의 나를 있게 해 주신 엄마께 감사한다. 노력하는 나에게도 잘해왔다고 칭찬해주고 싶고, 앞으로도 잘할 거라는 응원을 보낸다. 착한 딸로, 위대한 엄마로, 성실한 나로 오늘도 뜨겁게 파이팅을 외쳐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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