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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로니의 글적글적 Mar 02. 2023

의사 선생님! 양심 챙겨요

마흔 살 힐링담론 : 별 일



  “아니, 그래서 이 초진료가 맞다고요? 소아과 초진료가 6900원이란 얘긴가요?”

  애써 참고 있던 목소리가 희미하게 떨렸다.

  “네, 드레싱... 아니 원래 진찰료가 7200원이고요. 그것도 원장님이 깎아 주신 거라니깐요. 300원. 그래서 성지엄마가 6900원을 수납한 게 맞다고요.”

  간호사는 얼버무리듯 알아들을 수 없는 말을 계속 늘어놓았다.

 

  “그러면 제가 소아과 가기 전에 치과에 다녀왔잖아요. 거기선 초진료가 5100원이었거든요. 소아과도 같은 급 의원으로 알고 있는데 초진료가 다를 수 있어요? 저희는 감기 치료만 했는데... 다른 처치를 한 것도 없는데 왜 다른가요?”

  “그거야 저도 모르죠. 진찰료는 병원마다 다를 수 있어요. 저희는 원래 그래요. 궁금하시면 공단에다 물어보시든가요.”

  ‘아오, 이건 또 무슨 소리.’

  나 참, 병원마다 장비 발이 다르다는 말은 들었어도 초진료가 다르다는 건 또 처음이었다. 물론 같은 급 병원에서 말이다.     

  



 

  나는 식탁에 앉아 방금 다녀온 A소아과 수간호사와 카드내역에 찍힌 진찰료 문제로 통화를 하는데 고구마 100개를 먹은 듯 목이 꽉 막히는 기분이었다. 심장이 벌렁대더니 얼굴에서 열이 확확 올랐다. 내 얼굴은 아마 군고구마보다 더 벌겋게 달아올랐을 것이다.     

  “그러니깐 선생님, 지금 소아과 평일 낮 초진료가 6900. 아, 아니 할인 안 해주셨으면 7200원이라는 말씀인 거죠?”

  나는 혹시나 잘못 들은 게 아닌가 싶은 마음에 간호사에게 꼬집어 다시 물었다.

  “네.”

  간호사가 단호하게 대답했다.

  “아, 네... 지금 그 말씀 책임질 수 있으시죠?”

  “네.”

  “일단 알겠습니다.”     

 

   A소아과는 우리 동네에 생긴 지 5년쯤 되는 작은 병원으로, 진료하는 여 원장 1명 그리고 2명의 간호사가 있다. 병원이 처음 오픈 할 때부터 간간이 들른 곳으로 그날도 나는 진료를 받고 난 뒤 아무 생각 없이 결제 카드를 내밀었다(항상 의심하자) 그것이 별일의 시작.   


  나는 간호사와 통화를 끝내고 바로 건강보험공단 민원 앱을 찾았다. 전화하는 동안은 나름 고상한 척 평정심을 찾으려고 애썼지만 내 손가락은 이미 반격의 총알 장전을 하고 있었다. 나는 뭔가 억울하기도 하고 잘못된 것 같은 생각에 눈빛은 이글이글 타오르고, 오랜만에 미친 전투력이 상승하기 시작했다.     





  지난 목요일 오후, 아이의 병원 진료가 있는 날이었다. 치과와 소아과를 방문할 계획으로 학원 시간과 겹치지 않게 똑딱(병원예약시스템)으로 진료를 예약해 두었다. 시간이 빠듯했다.   

  먼저 치과에서 구강 검진을 했다. 담당의는 하얀 라텍스 장갑을 끼고 아이의 입을 한번 휘돌리더니 윗니가 흔들린다며 당장 이를 빼자고 했다. 나는 바로 그러자고 했고 의사는 긴장할 틈도 주지 않고 벤치를 아이 입으로 가져갔다. 곧 이가 빠졌다. 마취 없이.      

  시뻘건 피가 흘렀다. 생각보다 피가 많이 나진 않아 천만다행이었고 아이가 울지 않아 마음이 놓였다. 씩씩한 잼민이(초등학생).

  간호사가 입에 하얀 거즈를 물려주었다. 30분 정도 꽉 물고 있다 거즈를 버리라고 내게 당부했다. 아이는 거즈를 입에 물고 불룩해진 입을 한 채 치과를 나왔다. 마스크를 쓰니 감쪽같았다.      




  

  우리는 곧바로 옆 건물에 있는 소아과로 갔다. 예학 했던 시간이 조금 남았지만 가서 기다리기로 했다. 소아과에 도착하니 먼저 온 아기 환자가 있었다. 평일 오후 시간(봄 방학 중)이라 대기실은 한산한 편이었다.

  나는 먼저 데스크에 가서 접수했다. 아니 ‘왔다고 신고했다’라는 표현이 맞겠다.

대기 화면을 보니 몇 명의 예약자가 더 있었다. 진료 대기실에 앉아 잠시 TV를 봤다. 조금의 시간이 지나자 간호사가 아이를 불렀다. 

  나는 급히 접수창구 옆에 있는 두루마리 휴지를 돌돌 말아 뜯었다. 아이에게 다가가 입속에 있는 거즈를 뱉으라고 한 뒤 얼른 받아 내 주머니 속에 집어넣었다.      

  

  나는 아이와 함께 진료실에 들어갔고 아이가 바로 진찰 의자에 앉았다. 60대쯤으로 보이는 생 단발을 한 여원장이 책상 뒤에 앉아있다가 아이를 향해 몸을 홱 돌렸다. 아이에게 마스크를 내리고 입을 ‘아~’ 하라고 했다. 목 안을 살피고 카메라가 달린 긴 막대기로 코를 들여다보았다. 의사는 알레르기성 비염이라며 약을 4일분 처방해 주겠노라 했다.

막 진료실을 나오려고 할 때,     

 

   “저, 선생님. 혹시 거즈 좀 얻을 수 있을까요? 성지가 조금 전 치과에서 발치하고 왔거든요. 방금까지 거즈를 물고 있었는데 아직 지혈이 덜된 것 같아서요.”

   나는 문을 열고 나가려다 멈칫 서서 의사에게 말했다.

  “아~ 그렇지 않아도 아까 뭘 닦으시는 것 같길래. 콧물인가 했더니...”

  의사 옆에서 진료를 돕던 다른 간호사가 말했다.

  “거즈? 아, 네... 드릴게요. 나가 계세요.”

  의사가 잠시 머뭇거리다 말했다. 간호사가 작고 네모난 거즈(주사 맞고 난 뒤 눌러주는 하얀 거즈) 2장을 가지고 왔다. 나는 거즈를 동그랗게 말아 아이 입에 넣어 주었다. 수간호사가 아이의 이름을 불렀다. 나는 데스크에서 진료비를 계산하고 약 처방전을 받았다.     





 

  “안녕하세요. 건강보험공단 심사평가원인데요. 로니 님이시죠?”

  “네.”

  “민원 접수하셨길래 연락드렸어요. 접수하신 내용을 확인하기 위한 절차고요. 불편하지 않으신다면 민원 주신 그 소아과에 제가 전화해도 될까 해서요?”

  “네, 그렇게 하세요.”

  공단에 민원을 넣은 지 사흘 만에 심사평가원 담당자로부터 연락이 왔다.     

 


   띠~로리릴리~

  심평원으로부터 전화를 받은 지 10분이 안되어 휴대전화 화면에 A소아과 번호가 떴다. 여원장이었다.

   “아이고, 성지 어머님 그렇지 않아도 공단에 민원 접수하셨더라고요. 방금 연락받았고요.”

   “네, 말씀하세요.”

   “진찰료 때문에 궁금하셨다고요? 다녀가신 지 오래돼서 제가 기억이 잘 안 나지만, 다시 보니 그때 수납하신 진료비가 잘못됐더라고요. 차트가 아마 다른 사람 차트였던 것 같네요.”


  “네에? 다른 사람 차트요?”

  “네, 바쁘다 보면 이런 일도 생기고 그렇거든요.”

  “누구 차트로 보셨는데요? 저는 수납하고 약 처방전도 우리 아이 이름으로 맞게 받았는걸요.”

  “호호호, 처방은 맞게 나갔고요. 수납이 잘못됐어요. 그날따라 같은 이름을 가진 친구가 있었지 뭐예요. 진료실에는 맞게 진찰료가 떠 있었는데 마침 수납창구에는 다른 아이 차트가 떠 있어서 그걸로 수납했다고 하네요. 그래서 진찰료가 더 나왔나 보더라고요. 저희 수간호사가 그러네요. 이거 어쩌지요.”

  여원장은 능글맞은 목소리로 둘러대기 시작했다.      

 

 “이것 보세요, 선생님. 수납을 해야 처방전이 나오잖아요. 그 병원은 예약시스템인 데다 한 사람 진료가 완료돼야 다음 환자가 진료받는데 무슨 차트가 바뀌나요? 더군다나 그날 대기자 명단에는 동명이인도 없었어요.”

  “정신이 없어서... 환불해 드릴게요.”

  “솔직하게 그날 거즈 줬으니 드레싱 처치를 넣으셨다고 하시던가, 아니면 거즈 2장 값이 들어갔다고 말씀하시는 게 맞지 않나요? 그래도 다 받긴 미안하셨는지 300원씩이나 할인하셨다고요!”

  “아이고, 어머니! 저는 그런 사람 아닙니다.”

  “그러면 병원에서 진찰료 할인은 왜 해주는 건데요? 수간호사가 처음부터 초진료가 7200원이라 했던 건 어떻게 설명하실 겁니까? 제가 몇 번이나 물었다고요!”

  “아, 그건... 아마 바빠서 그랬을 겁니다. 당연히 초진료는 5100원이 맞지요. 지금도 그리 뜨고요. 저희는 있는 그대로 받습니다.”


  “참, 선생님 ‘바쁘다’ ‘정신없다’로 계속 둘러대시기만 하실 겁니까? 여기가 대학병원도 아니고 동네잖아요. 대여섯 명 되는 환자 차트도 헷갈릴 만큼 그리 정신없으시냐 말씀입니다. 결국 7200원이 초진료라고 우긴 것도, 진찰료가 더 많이 청구된 것도 인정하지 않으시네요.”

  “에고, 어쩌지요. 저도 그동안 이런 일이 없었는데... 일이 그렇게... 일단 환불을 해드리면 되겠지요?”

  “아니요. 됐어요. 지금 돈 몇 푼이 문제가 아니네요. 선생님 정말 실망이 큽니다.”

  “음... 어머니, 암튼 진정하시고요. 사람일이다 보니... 그럼 끊겠습니다.”

  ‘뚜르’

  “....”     



   

  A소아과 원장의 목소리가 휴대전화 속으로 쏙 사라졌다. 나는 미안하다는 말 한마디면 됐는데 그게 그렇게 어려운 일인가.

  오늘, 나는 동네에서 소아과를 잃었고, 사람도 잃었다.

  의사 선생님, 제발 양심은 잃지 마시길.      




사진 © jccards, 출처 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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