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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로니의 글적글적 Mar 16. 2023

중학교 입학식 날, 새 신발이 사라졌다

마흔 살 힐링담론 :속상한 일






  “엄마, 내 운동화가 없어….”

   기다리고 기다리던 큰아이의 입학식 날, 아이로부터 받은 전화의 첫마디였다. 그리고 담임 선생님과의 첫 통화였고.

  별별 생각이 다 들었다. ‘누가? 도대체 왜? 하필 우리 아이에게?’ 

  불편한 등교 첫날의 서막이 그랬다.     

  

  학교에서 아이의 신발이 사라졌다. 감쪽같이.

  입학의 설렘을 안고 상큼하리라 기대했던 중등 생활의 환상이 한순간에 와르르 무너졌다. 중등 생활 리스트에 없던 난항이었다. 나는 온갖 경우의 수를 생각하느라 머릿속이 복잡했다. 담임께 일단 아이를 집에 보내 달라고 한 뒤 신발장 근처 CCTV 확인과 반마다 안내 문자를 발송해 달라고 요청했다. 그러고 난 후 아파트 단톡방과 친구들에게도 혹시나 신발을 잘못 신고 간 아이가 있는지 알아봐 달라고 부탁했다.

  

  나는 지금이라도 학교로 달려갈까 아니면 침착하게 앉아 아이가 돌아오기를 기다려야 하나 어쩔 줄 몰랐다. 내가 조금이라도 시간을 지체하는 사이 신발이 영영 사라질까 조바심이 났다. 이런 상황 속에서 냉철한 이성이 작용할 리 없었다. 머릿속은 하얗게 멈춘 듯, 아이가 돌아오는 십 분이 십 년처럼 길게 느껴졌다. 






   잠시 뒤, 누군가 도어록 누르는 소리가 선명하게 들려왔다. 귀가 쫑긋 섰다. 나는 소파에서 반사적으로 몸을 일으켜 현관으로 뛰어갔다. 아이가 늘어진 어깨를 하고 터덜터덜 현관 안으로 들어왔다. 발에는 하얀 실내화를 신은 채.

  아이는 내게 난처한 표정을 지어 보였다. 나는 갑자기 가슴이 울컥했다.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아이의 걸음을 뒤따라 천천히 식탁으로 가서 함께 앉았다. 

 

 “성우야, 괜찮아? 대체 무슨 일이야?”

  나는 아까 담임 선생님과 전화 통화로 대충은 들은 뒤였지만 가라앉은 목소리로 차근차근히 물었다. 

  “아, 개빡쳐!”

  아이가 대뜸 화를 내며 말했다. 

  “집에 가려고 신발장 앞에 갔는데 신발이 없는 거야. 내 신발이랑 옆 반 애 신발이랑. 걔도 가만 보니깐 도덕 쌤이랑 같이 신발을 찾는 중인 것 같더라고. 나도 그 쌤이랑 같이 신발을 찾아다녔지. 아 근데, 걔 신발이 쓰레기장에 있는 거야!”

  아이의 목소리는 점점 빨라지고 높아졌다.

 

 “뭐! 쓰레기장?”

  “어. 그리고 걔는 갔고 울 담임이 와서 2학년 교실이랑 3학년 교실에 같이 갔어. 심지어 화장실도 가보고. 결국 못 찾아서 담임이 엄마한테 전화하랬어. 나 입학식 끝나고 교실 들어갈 때 신발장 번호도 두 번이나 확인하고 넣었거든… 진짜 개 짜증!”

  아이는 평소 같지 않게 험한 말들을 뱉어냈다.

  “정말? 와 씨. 별 거지 같은 일이 다 있네. 너 놀랐겠다. 신발장에 문은 있고? 남아 있던 신발은 하나도 없었단 말이지?”

  나도 입에서 욕이 뒤범벅되어 나왔다.

  “어. 개인 신발장. 문도 당근 달려있고.”

  “있잖아, 혹시 반 애들 분위기는 어땠어? 짓궂은 애들도 있어? 좀 노는 형들은 없었어?”

  “몰라. 첫날인데. 내가 그걸 어떻게 알아.”

  느낌이 싸했다.      





  발등 옆으로 하얀 삼선이 포인트로 있는 까만색 아디다스. 입학을 며칠 앞두고 남편이 아이에게 선물한 신발이었다. 남편은 며칠 동안 인터넷쇼핑몰을 싹싹 뒤져서 가장 저렴하게 구했다며 뿌듯하다고 했었다.

  요즘 아무리 비슷한 신발이 많기로서니 유치원 아니 무려 중학생이 제 신발을 몰라봤을까? 

  ‘누군가 새 신발을 노려서’ ‘아니면 ‘그냥 우리 아이가 장난의 표적이 되었나’라는 생각이 끊임없이 들었다. 노트북 앞에 앉아 밤이 깊도록 잠은 오지 않고 이런저런 상념에 잠겼다. 그저 날이 밝으면 악몽에서 깨길 간절히 바랐다.     




  다음 날 아침, 나는 무거운 마음으로 아이를 현관까지 배웅한 뒤 서둘러 씻었다. 오늘은 학교에 가서 직접 신발을 찾든지 뭐라도 할 참이었다. 머리에 수건을 돌돌 감고 욕실을 나와 화장대 앞에 앉았다. 그때였다. 거실에서 휴대전화 벨이 울렸다. 

  “여보세요.”

  “성우 어머니!”

  중년 여성의 흥분한 목소리였다. 

  “네, 말씀하세요.”

  “어머니. 성우 신발 찾았어요!” 

  휴대전화 너머 담임의 목소리가 귀에 울렸다.

  “아, 그래요? 잘됐네요. 선생님, 그런데 신발은 어디서 찾으셨어요?”

  신발을 찾았다는 안도감도 잠시, 나는 그토록 묘연했던 신발의 행방이 궁금했다. 

  

  “네, 어머니 일단 학교를 믿고 기다려주셔서 감사하고요. 어제는 CCTV 담당자가 퇴근을 하는 바람에 저희가 오늘 아침에 CCTV를 확인했어요. 화면에 잡힌 걸 보니 어제 방역 도우미께서 신발장 청소를 했지 뭐예요. 전에 학년이 신발을 두고 가는 일이 종종 있기도 해서요. 신발장을 정리하는데 마침 신발장 위에 까만 신발이 하나 올라와 있더라고요. 아마 그게 성우 신발이었던 것 같아요. 도우미께서 그걸 치우시더라고요. 그런데 하필 그분이 어제 바쁜 사정이 있으셔서 쓰레기봉투를 분리수거장에 못 버리고 차에 실어 가셨다고 하네요. 그래서 저희가 어젠 못 찾았던 거였지 뭐예요. 방역 도우미님이 학교 연락을 받고 밤새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셨데요. 아침에 성우 신발이 든 봉투를 가지고 급히 왔지 뭐예요. 어머니 어쨌거나 정말 다행이지요.”

  담임은 음악 선생님답게 숨 한번 쉬지 않고 말했다.

  “네? 방역 도우미요? 쓰레기봉투를 차에 싣고 학교 밖을 나가셨다고요? 신발장 정리를 개학 날에 한다고요? 그리고 새 신발을 쓰레기봉투예요? 성우는 분명 신발장 안에 신발을 넣었다고 했어요. 선생님, 방역 도우미가 지금도 학교에 있나요?”

 나는 담임의 말이 끝나자마자 되물었다. 목소리가 곤두섰다. 

 

  “아, 아니요. 방역은 이제 안 오십니다.”

  “그럼, 제가 CCTV를 볼 순 있나요?”

  “그건… 아무나 볼 순 없어요. 아주 특별한 경우 절차를 밟고 보실 순 있고요. 저도 혹시나 짓궂은 아이들 짓은 아닐까 무척 걱정했어요. 그렇다면 진짜 큰일이고요… 제가 교직에 오래 있었지만 사실 우리 학교 개교이래 이런 일은 한 번도 없었거든요. 어머니, 어제는 마음이 정말 힘들었지요? 다시 신발을 찾게 돼서 저로서도 참 다행입니다.”     

 

  뭐가 다행이란 말인가. 담임이 말한 대답은 오히려 수수께끼 같을 뿐 어느 곳 하나 매끄럽지 않았다. 아니 이상했다. 얼마나 많은 운명 같은 우연의 일치란 말인가? 더 글로리의 어느 장면을 떠올리며 밤새 마음 졸이고 걱정했던 시간을 보상이라도 받 듯 따지고 드는 게 맞을까? 아니면 이대로 웃픈 해프닝으로 끝내야 할까. 통화를 하는 사이 수만 가지 생각이 오갔다.     

  

  나는 잠시 가만히 있다가 다시 입을 열었다. 그리고 담임께 더는 묻지 않았다. 다만 수업이 끝나지 않은 상태에서 학교 신발장 정리를 자제하고 하필 입학식 당일 청소를 한다는 시스템적 아이러니를 시정해 주길 부탁했다. 그리고 설사 길 잃은 물건이라도 쓰레기장 가기 전 구원해 줄 분실물 보관센터 설치도 함께 말이다.     

  

  나는 이제야 놀란 가슴을 쓸어내린다. 

  아이의 중등 첫날은 그야말로 스펙터클이었지만 그래도 이 만하길 감사하다. 앞으로 3년, 중학교생활이 얼마나 더 많이 즐거울지 기대가 되기도 하고.

  다시 돌아온 신발, "참 반갑다. 올 한 해 더 높이 더 멀리 함께 걸어보자꾸나!"





사진 © CoolPubilcDomains, 출처 OGQ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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