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전, 모처럼 시내를 나가 옷가게에 들렀다. 매장을 둘러보다 마음에 쏙 드는 스웨터를 발견했다.
라일락꽃처럼 연보라색이었는데 배꼽이 보일 듯 말 듯 한 길이로 꽈배기 무늬가 촘촘히 있었다. 첫눈에 반한 듯 마음이 동했다.
집에 있는 연청색 통바지와 입으면 딱 좋을 것 같았다. 스웨터가 마치 ‘나를 데려가’라고 홀리는 듯 나는 직원에게 선뜻 결제 카드를 내밀었다.
오늘은 도서관 문화 강좌가 있는 날, 날씨도 따뜻하고 화사한 봄꽃 분위기와도 딱 어울릴 것 같아 보랏빛 스웨터를 입고 나왔다. 아침 거리는 오가는 사람들로 활기가 넘쳤다. 나는 버스에 올랐다. 버스에는 승객들로 가득 찼다. 제일 뒷자리에는 젊은 친구들이 노닥거렸다. 웃는 소리가 내 귀까지 들렸다. 한창 즐거울 때 같다. 나는 버스에 서서 창밖을 구경했다. 조금 뒤 버스에서 내려 길을 걸었다. 나는 괜히 쇼윈도 쪽을 흘끔 쳐다봤다. 투명한 유리문에 비친 내 모습을 곁눈질하며 옷매무새를 다듬고 긴 머리를 한번 쓸어 뒤로 넘겼다.
오늘따라 내가 좀 예뻐 보였다.
도서관에 이르러 마침내 강의실에 들어섰다. 발걸음이 솜사탕처럼 가벼웠다. 나는 앞자리로 천천히 걸어가 의자를 바짝 끌어당겨 앉았다. 수업 시간이 다가오자 수강생들이 하나둘 모여들었다. 내 뒷자리에는 중년의 남자 수강생이 앉았다. 나는 고개를 숙여 짧은 눈 맞춤으로 인사를 대신했다. 기분 탓일까. 그 수강생이 더 밝게 웃는 것만 같았다. 1시간 30 여분의 수업이 순식간에 지나갔다.
나는 강의실을 빠져나와 성인 종합자료실로 걸음을 옮겼다. 그곳에는 독서만 하는 전용 테이블이 있었는데 나는 읽고 싶은 책을 두어 권 골라 자리에 앉았다.
오늘따라 느껴지는 기분 좋은 시선들…. 그 가운데 최고는 맞은편에 앉은 젊은 남자들의 시선이었다.
‘역시 스웨터를 잘 입고 온 것 같다.’
세상이 온통 사랑스러웠다. 책을 읽어도 머리에 쏙쏙 잘 들어오는 것 같다. 뭐든 잘 되는 날. 오늘이 그런 날 같았다.
신경 안 쓰듯 엄청 신경 쓰며 책장을 넘기려는 순간,
“저기요….”
뒤에서 낯선 여인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네?”
나는 뒤를 돌아 집게손가락으로 나를 가리키며 말했다.
“저 … 혹시….”
“네, 말씀하세요.”
여인이 잠깐 뜸을 들였다.
“그… 그거요. 그거 떼드릴 까요?”
‘그… 그거라니?’
“무슨?”
“님 옷 뒤에 택이 달려있어요. 새 옷인가 본데 제가 떼드릴 까요?”
“네?”
‘마, 맙소사!’
나는 순간 손으로 입을 틀어막았다.
“앗, 진짜요? 제, 제가 할게요.”
나는 여인에게 꾸벅 인사를 하고 부리나케 화장실로 달렸다.
29,900원짜리 상표를 등 뒤에 달랑거리고 버스며 거리를 활보하고 다닌 지난 몇 시간을 어쩌나. 나를 훔쳐보던 다양한 시선들이 스치듯 지나갔고 마치 연예인이 된 듯 우쭐했던 기분은 부끄러움으로 돌아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