숙소에서 하루 푹 쉬고 나니 캠핑 때 소모되었던 체력이 금방 충전되었다.
전날 제주 동네 마트에서 산 계란과 집에서 챙겨온 쌀로 간단히 계란후라이를 만들어 아침을 해결했다. 식비 절약을 위해서였다.
그동안 여건이 안되서 밀린 여행일지를 쓰기 위해 카페를 찾기로 했다.
세렌디피티를 기대하며 이리저리 차를 몰고 중문관광단지에 도착했지만,
그곳은 내가 찾던 제주만의 아담한 돌담집이나 감성적인 카페들보다는 커다란 호텔과 상업적인 건물들이 주를 이루고 있었다.
결국 챗GPT의 도움을 받아 지금 있는 곳에서 가까운 몇 곳을 추천받아 가장 끌리는 곳으로 향했다.
물론 챗GPT도 완벽하진 않다. 가보니 문을 닫은 곳도 있었고, 아예 존재하지 않는 곳도 있었다.
다행히 이번 카페는 제주도 특유의 자연과 현대적 인테리어가 조화된 감성적인 공간이었다.
도로를 달리다 나무들 사이에 조그맣게 나 있는 길가 통로로 들어서면,
마치 비밀스러운 숲속에 숨겨진 듯한 공간이 펼쳐졌다.
이런 점이 제주도의 가장 큰 매력 같다.
큰 도로에서 조금만 벗어나면 마치 감춰진 보석처럼 예쁜 장소들이 나타난다.
카페에 만족하며 아메리카노를 주문하고 자리에 앉아 태블릿을 켜고 여행일지를 써내려갔다.
그러다 옆 라운지 테이블에서 사장님들이 SNS 촬영을 하는 모습을 보았다.
밝고 우렁찬 목소리로 커피에 대해 설명하며 촬영하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바깥 세상에 나오니 이런 신기한 광경도 보고 새로웠다.
카페에서 충분히 글을 쓰고 여유를 즐긴 뒤, 이번에는 카멜리아힐에 가보기로 했다.
비가 간헐적으로 조금씩 내리고 있었던 상황이라 비 오는 날 가기 좋은 곳이라는 내용이 끌렸다.
가는 길에 내 눈을 사로잡은 감성적인 폐건물처럼 보이는 카페를 발견했다.
외관은 다소 낡았지만 리모델링된 듯한 느낌이었고, 앞에는 아름다운 꽃밭이 펼쳐져 있었다.
제주도에는 이렇게 길가에 매력적인 카페들이 많아 어디서든 쉽게 새로운 곳을 발견할 수 있다는 점이 참 좋다.
꿈속같은 이 공간에 차를 돌려 들어갔다.
계획하지 않고 우연히 발견하는 이런 순간들이 바로 이번 내 제주도 여행의 컨셉, '세렌디피티 여행'이었다.
건물 내부는 넓고 깔끔했고, 폐건물 특유의 빈티지함과 어우러져 독특하고 감성적인 분위기를 느낄 수 있었다.
내부도 좋았지만 넓은 정원 들판이 특히 동화같았다.
형형색색의 꽃들이 바람에 살랑살랑 흔들리고 있었고, 그 사이로 난 조그마한 돌담길과 아기자기하게 꾸며진 소박한 정원이 어울려 한 폭의 그림 같았다.
나 혼자 셀카도 찍고 풍경 사진도 찍고 있는데, 아주머니 한 분이 다가와 일행과 함께 사진을 찍어달라고 부탁하셨다.
여러 장을 찍어드렸는데 사진이 너무 멀리 찍혀 얼굴이 거의 나오지 않자 괜찮으시냐고 물었더니,
"우리 나이대는 얼굴 나오면 안 돼요" 하셨다. 웃으며 넘겼지만 속으로는 씁쓸했다.
시간이 흐르면 얼굴에 세월이 남긴 흔적들이 생기니까.
그래서 지금 젊을 때 사진을 많이 찍어 두어야겠다고 새삼 다짐했다.
나중에도 곱게 늙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려면 항상 좋은 마음가짐과 웃는 표정을 유지해야겠다는 다짐도 함께.
좋은 장소를 발견한 뿌듯함을 안고 카멜리아힐로 향했다.
입구는 여느 관람지와 비슷했지만, 안으로 들어가자 전혀 예상치 못한 아름다움이 펼쳐졌다.
제주 비자림과 비슷하면서도 다른 매력을 지닌 곳이었다.
수국들이 만발한 정원과 은은한 비 내리는 숲 향기가 어우러져 너무나 상쾌하고 향긋했다.
또 한참 사진과 영상을 찍으며 기록을 남겼다. 요즘은 기록의 중요성을 느껴 블로그엔 사진으로, 인스타엔 영상으로 열심히 남기고 있다.
카멜리아 힐은 전체가 동화같았다. 꼭 가족들과 다시 오고 싶은 곳이다.
특히 엄마가 좋아할 것 같다. 역시 나는 제주도의 이런 자연 풍경이 너무 좋다.
카멜리아힐을 나서니 벌써 저녁 시간이 다 되었다. 어두워지기 전에 야영장으로 가야 해서 서둘렀다.
다행히 텐트 설치는 금방 끝났고, 저녁을 먹으러 다시 나섰다.
야영장이 산속 깊숙한 곳이라 입장 시간이 제한되어 있었고, 근처엔 식당이 거의 없었다.
전날 숙소 오는 길에 봐뒀던 라멘집까지는 시간이 부족해 결국 근처를 몇 바퀴 돌아다녔지만 음식점은 많지 않았다
결국 원하는 음식점을 찾지 못해 시간에 쫓겨 편의점으로 향했다.
편의점 직원분은 친절하게도 시간이 급하다고 하자 다른 사람보다 먼저 계산해주셨다.
사소한 배려지만 참 감사했다.
미리 저녁 장소를 정해두었으면 더 맛있는 저녁을 즐길 수 있었겠지만, 대신 이런 따뜻한 친절함은 경험하지 못했을 것이다.
편의점 도시락도 체력 보충에는 충분했다.
어쩌면 음식 맛보다는 분위기 있는 식당을 원했던 것인지도 모르겠다.
야영장으로 돌아와 세수를 하고, 텐트 안에서 새로운 첫 일박을 시작했다.
다행히 예보된 비도 잠시만 내리고 그쳤다.
내일부터는 비 예보가 계속되어 있지만, 지금까지 비가 거의 오지 않은 것만으로도 감사할 따름이다.
마치 제주도가 내 여행을 위해 비를 참고 있는 듯한 기분이 든다.
이제 3~4일차가 지나니 제주도 여행이 꽤 충만해졌다.
처음에는 한 달 살이를 꿈꿨지만, 일주일도 충분하다는 생각이 든다.
일주일이 평소 집에 있을 때보다 꽤 길게 느껴졌다.
남은 3일 동안 제주의 아름다운 장면들과 분위기를 더 많이 눈과 사진, 그리고 마음에 담아가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