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획 없이 떠난 하루,
우연히 마주친 기차역 카페와 노루 한 마리.
오늘의 제주도는 뜻 밖의 이야기를 품고 있었다.
2박3일간 관음사 야영장에서의 캠핑은 아주 만족스러웠다.
푸르른 숲에 둘러싸인 야영장, 신선하고 향긋한 공기 속에서의 야영은 맑고 상쾌했다.
오늘 하루는 텐트가 아닌 숙소에서의 하룻밤이 예정되있어 마음이 가벼웠다.
관음사 야영장을 떠나며, 나는 차에 몸을 싣고 어디로 갈지 정하지 않은 채 제주도의 길 위에 나섰다.
발길 닿는 대로 떠나는 자유를 만끽하고 싶었다.
하지만 검색 하나 없이 세렌디피티를 기대하는 건 현실적으로 어려운 일이었다.
한두 시간을 허비하듯 흘려보낸 끝에 도착한 곳은 화순금모래해변.
기대에는 미치지 못했지만, 사람이 많지 않아 혼자 고요하게 시간 보내기엔 좋았다.
점심시간이 다가와, 어제부터 찜해놓았던 백종원의 극찬 맛집 연돈으로 향했다.
평일었기에 대기 없이 먹을 수 있을 거란 기대는 순진했다.
대기번호는 99번...
내 순번이 오기까지 예정 시간을 직원에게 물어보니 2시간 반정도 걸릴거라 했다.
나는 그동안 갈만한 카페를 챗gpt에게 물어보았다.
다섯 곳 중 유독 마음이 끌린 이름 하나, '비밀역'.
놀랍게도, 내가 아침에 잠시 머물렀던 화순금모래해변 근처였다.
여기서 나는 생각했다.
'크게는 발길따라 가더라도 더 구체적인 선택엔 때때로 기술과 정보의 도움이 필요하다는 것을'
비밀역에 가보니 이름 그대로 비밀스러운 곳이었다.
입구만 봐서는 이곳 안에 카페가 있을 거라고는 전혀 상상할 수 없었다.
그러니 내가 근처에 왔어도 발견할 수 없는게 너무 당연했다.
그냥 골목으로만 보였는데 자세히 보니 기차선로처럼 꾸며진 골목이었다.
조그마한 기차선로를 따라 들어가니 문이 있는 작은 건물이 나왔다.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가니 정말 비밀스러운 공간이 나타났다.
마치 옛 기차의 한 칸에 들어선 듯 했다.
마치 일본 애니메이션 장면이 그대로 현실에 나온 듯한 공간이었다.
난 보물장소를 찾은것 처럼 설레며 핸드폰 카메라 셔터를 연신 눌러댔다.
이 카페를 보며 정말 제주도 오길 잘했구나 생각했다.
기차 공간의 끝에는 또 다른 문이 있었다.
문을 열고 나가자, 마치 비밀세계가 펼쳐진 듯 했다.
작은 시골 기차역처럼 꾸며진 마당과 마주보고 있는 또 하나의 건물이 나타났다.
그 안에는 1930~40년대 일본 레트로 감성이 그대로 담겨 있었다.
처음 들어왔던 건물에 또다른 공간이 하나 더 있었다.
그 안에는 지브리 애니메이션 분위기가 실감나게 나고 있었다.
지인들에게 소개하고 싶은 곳이었다.
언젠가 조용히 이곳에서 나만의 시간을 보내며 애니메이션 속으로 들어가고 싶었다.
카페에서 알찬시간을 보낸 후, 시간에 맞춰 연돈으로 향했다.
직원의 말처럼 정확히 2시간 반만에 내 순서가 되었다.
‘그동안 얼마나 손님을 많이 받았기에 이렇게 딱 맞출까?’
포장할 수 있는 메뉴가 따로 있어 이따 저녁에 먹을 생각에 포장주문 코너로 가보았다.
포장 코너에선 tv에서 봤던 사장님이 직접 돈까스를 튀기며 포장메뉴를 건네고 있었다.
나는 ‘냉장고에 보관 후 전자렌지로 데워도 괜찮냐’고 여쭤봤고 사장님은 짧고 무뚝뚝하게 "가능은 하지만 불편할 거예요"라고 답했다.
그 말투에는 피로가 쌓여있었다.
엄청 많은 손님들을 받으며 고생이 많았을 것이기에 그런 무뚝뚝한 태도가 이해가 되었다.
그동안의 노고로 인해 무뚝뚝하고 차가워졌을 것 같아서 안쓰러웠다.
드디어 기다리던 돈까스를 맛보았는데, 솔직히 내 입맛에는 평범했다. 대신 깍두기는 아주 상큼하고 맜있었다.
연돈 사장님이 '사장'이라는 직책에도 직원만 시키고 편하게 있는게 아니라 자신도 직접 돈까스를 튀기며 손님들을 직접 마주하며 현장에 있는 모습이 본받을 만했다.
많은 손님들을 받는데도 자기에게 들어오는 수입은 그다지 많지 않다고 tv에서 봤다.
그래서 고생하시는 사장님께 격려의 말을 건네고 싶었다.
식사를 마친 후, 사장님한테 가서 '사장님 수고많으십니다'라고 인사를 건넸다.
무뚝뚝했던 사장님은 약간 놀래하시면서 고개를 깊이 숙이며 응답해주셨다.
그 순간, 그 분께 작은 위로가 되었기를 바랐다.
연돈을 나서 도로 안내 간판에 적힌 '만장굴'이라는 글자에 끌려 찾아갔지만, 공사중으로 입장 불가였다.
아쉬움을 뒤로하고 그 다음으로 눈에 띄는 '돈내코'로 방향을 틀었다.
카라반 야영장과 일반 야영장이 자리한 그 곳은 가족과 함께 오기에도 좋아 보였다.
연두빛깔의 넓은 잔디밭에 깔끔하게 반원으로 나열된 카라반들이 인상 깊었다.
일반 야영장은 내가 묵었던 관음사 야영장에 비해서 평범했다.
관음사 야영장은 제주도 숲 분위기가 나는 곳이었지만 돈내코 야영장은 내륙지방에서도 느낄 수 있는 곳이었다.
야영장 맞은편에는 진짜 주인공이라 할 수 있는 '돈내코 계곡'이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어두운 공간 속 웅장하고 신비스러운 그 풍경은 약간의 두려움까지 느껴지기까지 했다.
자연의 압도적인 존재 앞에 그저 감탄하며 돈내코에 오길 정말 잘했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일정을 마치고 숙소 공간에 도착했을 때,
숙소 바로 앞, 사람이 쉬는 잔디마당에서 풀을 뜯어먹고 있는 작은 성체 노루를 마주하는 믿기 어려운 순간을 경험했다.
‘이게 바로 여행에서만 누릴 수 있는 선물이 아닐까’
내가 사진촬영하기 위해 가까이 다가가자 노루는 바로도망가버렸다.
오늘은 오랜만에 텐트가 아닌 숙소에서 지내는 날.
며칠 만에 만나는 따뜻한 물과 푹신한 이불.
오랜만에 샤워를 하고 이불에 누우니 너무 편했다.
이틀간의 캠핑 후라서 숙소의 편안함을 더욱 느낄 수 있었다.
정말 감사하게도 원래 예보되있던 비는 지금껏 거의 오지 않았다.
하지만 내일도 여전히 비소식이 있다.
그리고 3일간의 텐트생활이 계획되어있다.
그래서 걱정이 되어 원래 예정되있던 캠핑을 취소하고 숙소를 알아볼까 고민했지만, 그대로 캠핑을 도전해보기로 했다.
비 오는 날을 대비해 놓고 상황에 맞춰 유연하게 대처하기로 했다.
처음에는 방황했지만, 이후에는 상상하지 못했던 장소들을 마주하면서 결국 기대이상의 하루를 선물받았다.
내일은 또 어떤 일이 기다리고 있을까.
오늘의 여운을 안고, 내일부터 또 새로운 미지의 여정을 맞이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