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 내리기 직전의 제주, 그리고 폭우 속 캠핑의 긴 밤

by 차밍

여행 5일차,

제주 구름은 비를 가득 머금고 있었고, 여행온 나를 위해 아직 비를 내리지 않고 있는 듯했다.


기쁨과 설렘, 개운함 이후에는 두려움과 걱정, 찝찝함이 차례로 찾아왔다.

상반된 감정이 하루 안에 교차하는 날이었다.


서귀포 자연휴양림. 숲 속 깊은 곳에서의 하룻밤은 마치 산중의 은신처에 머문 듯 평화로웠다.

아침이 밝자 다시 차를 몰았다. 이번에도 계획없이 도로를 따라 흐르듯 달리다 협재해수욕장에 닿았다.

평일 아침의 협재는 인적이 많지 않고 조용했다.


어제 빵카페에서 먹다 남아 포장해 온 빵으로 제주 협재 바다를 보며 아침을 때웠다.

단출했지만 여유로웠고 이제 새로운 하루의 여행을 시작한다는 설렘에 기대되었다.


오늘은 방황을 줄이기로 했다.

전날처럼 정처없이 떠돌다 시간을 흘러보내지 않기 위해 이른 아침부터 챗gpt에게 도움을 청했다.

야영장에선 전기를 쓸 수 없어 배터리도 방전되었고, 밀린 글도 산더미였다.


이 모든걸 해결하며 모닝커피를 마시기 위해 아침 첫 일정으로 카페에 가기로 했다.

검색 끝에 지금 있는 곳에서 가까운 애월해수욕장 인근 제주감성 카페들을 알게 되었다.

그 중 가장 인기가 많아 보이는 카페로 가보기로 했다.


평일 아침이라 사람이 별로 없을 거란 생각에, 이때 인기있는 카페에 가보는게 좋을 거라 생각했다.

도착하니 이제 막 오픈시간이었고 카페 자리는 여유로웠다.

내 기대가 오랜만에 적중했다.


카페는 사진에서 봤던 것보다 기대이상이었다.

해외의 해변에 놀러온 듯한 분위기가 났다.

커다란 유리창 너머로 푸른 바다가 손에 닿을 듯 펼쳐졌다.

가장 좋은 자리는 커플이 이미 앉아있어서 나는 그 다음으로 좋은 창가자리를 차지했다.

배터리를 충전하며 태블릿으로 여행일지를 써 내려갔다.


그렇게 두 시간정도를 보내고 나오니 애월해수욕장에는 어느새 사람들로 북적이고 있었다.

평일, 흐린 날씨에도 사람들이 많이 왔다는게 신기했다.

인기있는 곳은 결국 날씨나 요일을 가리지 않는가보다.

대신 평일 이른 아침 카페오픈 시간대에는 사람이 적어 널럴하게 즐길 수 있는 것 같다.


점심시간이 다가와서 근처를 둘러보았으나 마땅히 끌리는 식당이 없었다.

주변에는 내가 원하는 제주감성 분위기가 아닌 고급스러운 현대식 인테리어 식당들이라서 끌리지 않았다.

난 다시 챗gpt의 도움을 받았다. 이번 여행에 챗gpt의 역할이 컸다.


챗 gpt의 추천목록 중 '제주 현지인들이 좋아하는 곳'에 마음이 끌렸다.

메뉴는 한식뷔페였는데, 보통 뷔페식당에서 만족한 경우가 거의 없어 걱정되었지만

기대반 의심반으로 한번 가보기로 했다.


결과는 예상 외로 대만족이었다.

고기메뉴로는 사진으로 보았던 제육 대신 내가 먹고싶었던 돈까스가 나왔다.

다른 메뉴들도 쌈 종류부터, 생선, 두부, 김치, 오뎅 등 건강하고 맛있는 음식메뉴들이 다양하게 준비되어 있었다. 컵라면까지 있는 걸 보고 정말 푸짐하게 메뉴들을 준비하셨다는 걸 느낄 수 있었다.

이렇게 메뉴가 다양할 뿐만 아니라 음식 퀄리티도 높은데 단돈 1만원이라니 가성비가 최고였다.


식당에 들어갔을 때 주방안에서 일을 하고 계시던 사장님은 '어서오세요'인사하며 반갑게 나를 맞아주셨다.

같이 일하시는 남편분도 무뚝뚝해보이지만 세심하게 손님들을 잘 챙겨주셨다.


급하게 음식을 접시에 퍼 담은 후, 허겁지겁 먹다 블로그에 올릴 사진을 찍지못했다는 걸 뒤늦게 깨달았다.


나는 다시 깨끗한 접시를 들고 다양하게 음식을 퍼 담기 시작했다.

그리고 내가 먹던 테이블이 아닌 다른 테이블에 음식을 깔끔하게 퍼 담은 접시를 올려놓은 후 핸드폰으로 사진을 찍기 시작했다.


이런 숨겨진 보물같은 식당은 블로그에 꼭 올려 사람들에게 알리고 싶었다.


한 테이블에서 사장님과 친구분들이 식사를 하다 내게 말을 건넸다.

"인터넷에 올리려고 찍으시는 거예요?"

난 웃으며 그렇다고 답했다.


사장님 친구분들 모두 크게 웃으시며 "꼭 올려줘요!" 라고 하셨다.

사장님도 "올려주시면 감사하죠"라고 웃으며 말씀하셨다.


음식을 마치고 식당을 나오며 사장님께 내 블로그 주소를 드리고 싶었으나,

그저 "블로그에 꼭 올릴게요"라는 말만 남기고 나왔다.

다음 제주 여행 때 이곳은 반드시 들를 예정이다.

참고로 이곳 식당이름은 ‘어음밥집’이다


식사를 마친 후 아직도 여진히 많이 밀려 있는 글을 쓰기 위해 또다른 감성카페를 검색해 찾아갔다.

이번에 찾은 카페 역시 내가 원하는 제주감성의 카페였다.

아기자기한 앞마당, 돌담길, 잔디밭, 감성을 뿜어내는 각종 소품들, 알짜배기 정원, 낮은 돌담 등..

나도 언젠간 꼭 이런 앞마당을 가진 단독주택을 가지고 싶다.


카페에서 두시간정도 글쓰기를 한 후, 이틀간의 캠핑을 앞두고 씻을 준비가 필요했다.

검색 끝에 한림수산업협동조합이 운영하는 목욕탕을 찾아갔다.

협동조합이 운영하는 거라 그런지 넓고 깨끗했다.

원래 목욕탕은 잘 다니지 않는데, 여행 중 장기캠핑시에는 필수코스인 것 같다.


오랜만에 따뜻한 탕안에서 몸을 푹 담그니 그 동안 쌓인 피로가 녹아내렸다.

정말 꿀같은 휴식을 한 후, 아주 개운한 몸으로 목욕탕을 나왔다.


목욕을 마치고 나오자 서귀포자연휴양림에서 부재중 전화가 와 있었다.

전화를 걸자 직원이 걱정 어린 목소리로 말했다.

"이따 저녁에 폭우가 예보되어있는데 그래도 캠핑장을 이용하실거에요?"


고민끝에 나는 별다른 선택지가 없었기 때문에 그대로 이용하겠다고 답했다.

직원은 조심스럽게 당부했다.

"지금도 산속이 어두우니 가능하면 일찍 들어오세요."


그 말을 들으니 불안과 걱정이 밀려왔다.

이제껏 비가 안 온것만도 기적이었고 감사했다.

'드디어 올 것이 왔구나.'


바로 옆에 위치한 어장시장에서 텐트안에 먹을 저녁거리로 고등어회와 성게를 샀다.

욕심내서 성게까지 샀지만, 후회가 남았다.

쇼핑시 항상 적정선을 지키는 게 너무 어렵다.


점점 어두워지는 산길, 급히 야영장으로 향했다.

비는 쏟아지고 있었다.


야영장으로 가는 길 입구에는 주차차단기가 내려져 있었다.

위험해서 통제중이었던 모양이다.

나는 이미 야영장을 예약한 이용객이라 차단기를 열어주었다.

이제 진짜 산 깊은 곳 어둠 속으로 가는 길이었다.

'위험의 길로 들어서는구나'라는 걱정과 함께 도전하는 마음으로 과감하게 차를 몰고 들어갔다.


산속으로 3~4km깊숙이 이어진 꼬불꼬불한 길을 따라 차를 몰았다.

라이트를 끄면 암흑이었고, 한치 앞도 보이지 않았다.


그때 신기하고 반가운 장면이 눈앞에 나타났다.

노루 한마리가 도로 가장자리에서 차에 있는 나를 호기심있는 눈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그렇게 잠시 나를 바라보더니 이내 산속으로 사라졌다.

'이런 폭우 속에 노루는 어떻게 살아남을까' 신기했다.


꼬불꼬불 좁은 산길을 달리던 20분은 마치 한시간처럼 느껴졌다.

그리고 마침내 야영장의 불빛이 희미하게 모습을 드러냈다.

야영장엔 한~두대의 차량만 남아 있었다.

다른 이들이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안도가 됐다.

'혼자면 아무래도 너무 무서우니까.'


도착하니 여성 두분이 우산을 쓰고 걱정어린 표정으로 서 있었다.

돌아갈까 고민하는 듯 했지만 결국 그들도 남기로 한 것 같았다.


제주 하늘은 비를 쉴 새없이 토해내고 있었다.

텐트 안에 들어가서 고등어회와 성게를 여유롭게 즐길새도 없이 빠르게 먹어치웠다.


폭우속에 우산으로도 소용없는 튀기는 빗물을 맞으며 얼른 양치를 하러 화장실로 향했으나

물이나오지 않아 당황했다.

대행히 그때 마침 화장실 부근에 점검하러 온 관리사무소 직원을 마주쳤고 화장실에 물이 안나온다고 얘기하자 임시방편으로 물이 나오도록 조치해 주었다.


양치를 마친 후 텐트로 돌아와 옷을 갈아입고 침낭에 누웠다.

그러나 잠은 전혀 오지 않아 괴로웠다.


비는 마치 텐트를 뚫어버릴 것 같았다.

방수 천 한쪽으로 물기가 서서히 내부에 맺히고 있었다.

그나마 다행으로 텐트 위쪽은 물이 전혀 새지 않았다.

수건으로 물이 새는 부위에 물기를 닦으며 긴 밤을 버텼다.


이 시간이 어서 지나기를 기다리며 뜬 눈으로 텐트 안에 누워서 아침이 오기를 기다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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