흐름에 맡겼던 날, 예상 밖의 친절을 만났다.

by 차밍

오늘은 목적지를 정하지 않기로 했다.

정류장에 도착해, 그 순간 눈 앞에 온 버스를 타기로 했다.

제주도 여행때처럼, 생각지도 못한 장소에서 새로운 경험을 하기 위해서였다.



익숙한 버스가 도착했지만, 그곳까지는 달려야 겨우 탈 수 있는 거리였다.

평소같으면 무리해서라도 탔겠지만,

오늘은 흐름에 맡기기로 한 날이었다.

나는 그 버스를 보내고, 천천히 걸음을 옮겼다.


내가 결국 타게 된 버스의 운전자는 중년의 여성 기사님이었다.

평일 낮, 텅 빈 좌석들 사이로 몇몇 승객만이 조용히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버스 안은 평온하고 느슨했다.

나는 조용히 풍경을 바라보았다.



버스가 출발한 지 15분쯤 지났을 무렵, 기사님의 목소리가 들렸다.

"노선 중간에 시위가 있어, 해당 구간에서 회차하게 되었습니다. 목적지가 그곳인 승객분들은 참고해 주세요."


그 순간, 자리에 앉아있던 할머니 승객이 다급하게 질문하셨다.

"그럼 거기까진 안가나요?"

"그러면 나는 어디서 내려야 되나요?"

"지하철 타려면 어디서 내려야 되나요?"

"그럼 올때는 어떻게 와야 되나요?" 등등


기사님은 그때마다 차분히 답해드리셨다.

할머니는 다시 기사님의 대답에 꼬리를 물고 계속 질문을 하셨다.


운전 중이라 여유로운 상황이 아니었지만,

할머니의 물음에 끝까지 성실하게 응대하셨다.

어딘가 모르게 속에 약간의 답답함이 스며 있는 듯한 느낌이었다.

그 모습을 보며, 나도 내 안의 감정변화를 느꼈다.

처음엔 '그럴 수도 있지' 싶었지만, 질문이 계속 이어지자

나도 짜증이 스르륵 올라왔다.


솔직히 말해, 내가 기사님이었다면

몇 번 대답한 뒤엔 점점 퉁명스러웠을지도 모른다.

혹은 그냥 대충 얼버무렸을 수도 있다.


그런 의미에서

기사님의 태도는 내게 많은 것을 생각하게 했다.


물론 상담 콜센터 직원분들처럼 아주 친절하게 하신건 아니지만,

끝까지 할머니를 챙기시는 기사님의 모습은 정말 대단했다.


책은 많이 읽었지만,

실제 상황에서 필요한 인내와 태도는 아직 내게 익숙치 않다는 걸 깨달았다.

아직 갈길이 멀었다.


내게 비슷한 상황이 오면 여성 기사님을 떠올리면서 친절하게 행동하도록 노력해 봐야 겠다.


지금 돌이켜보면,

할머니를 나와 같은 입장으로 바라본 것 부터가 실수였다.

젊은 세대들만큼 검색이나 앱 사용이 익숙한 세대도 아니고,

몸도 불편하셨을 수도 있다.


그 질문 하나하나가,

스스로 길을 찾으려는 간절한 시도였을 것이다.

상대방 입장에서 생각한다는 건

말처럼 쉬운 일이 아니지만,

조금씩 더 연습해야 되는 일이라는 걸 다시 한번 느낄 수 있었다.


그저 흐름에 맡겨 탄 버스 안에서

나는 예상치 못한 방식으로

타인을 이해하려는 노력을 일깨우고,

자신의 역할을 넘어 조용히 친절을 건넨 기사님의 태도를 배울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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