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들은 한 가닥 희망을 품고 대형 대학병원을 찾아 갔다.
이전 병원의 진료기록부와 검사기록지를 제출하고,
교수 진료실 앞에 앉아 차례가 오기를 기다리는 동안
그 시간은 불안과, 초조, 두려움으로 짙게 물든 암흑이었다.
드디어 이름이 불렸다.
의사는 먼저 보호자만 불렀다.
혹시나 하던 기대는 단 한 마디에 무너졌다.
“위암 4기입니다. 완치율은 5%. 보통 2년 정도 사십니다.”
확인 사살을 받고 하늘이 꺼졌다.
가슴이 쿵 내려앉았고, 단 한 줄의 희망도 없이 냉정하게 말하는 의사가 원망스러웠다.
그는 그녀를 잃는다는 공포에 휩싸였다.
수술은 불가능하다고 했다. 항암부터 시작해야 한다고.
TV 속에서 본 항암은 두려움 그 자체였다.
먹지 못하고, 토하고, 고통 속에서 말라가는 치료.
그녀가 그 길을 가야 한다는 사실이 너무나 무서웠다.
그에게 죄책감이 몰려왔다.
결혼을 망설였던 순간, 그녀에게 했던 날카로운 말들이 파도처럼 쏟아졌다.
“우리 나이에 무슨 암이야, 그런 쓸데없는 걱정 하지 마.”
“메이크업이 과해. 이렇게 하얗게만 칠하면 할머니 같아 보여.”
그리고 무엇보다, 그는 단 한번도 그녀에게 먼저 사과한 적이 없었다.
그는 결심했다. 무조건 살려야 한다고.
당장 완치 경험담 책을 여러 권 빌렸고, 입원 절차를 밟았다.
밤이 되자 보호자는 병실에 머물 수 없었다.
그는 그녀를 혼자 두고 가는 것이 걱정되고 두려워, 차마 집으로 발길이 떨어지지 않았다.
결국 병원 주차장에 세워둔 차 안에서, 빌려온 책을 읽으며 긴 밤을 보냈다.
다음 날, 그녀는 항암제를 맞았다.
다행히 TV에서 본 지옥 같은 고통은 아니었다.
3주에 한 번, 견딜 만한 주기였다.
그들은 그녀의 부모님이 계신 고향으로 내려가 3주의 회복기를 보내기로 했다.
예상했던 구토와 식사 불능 대신, 그녀는 “과음한 다음 날 아침 같은 기분”이라고 말했다.
먹는 것도 괜찮고 속 울렁거림이 있긴 했지만 견딜만 했다.
그렇게 첫 항암을 버티고, 다음 치료를 기다리며 시간을 보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