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사는 수고했다는 듯이 조용히 말했다.
“처음으로 음성이 나왔습니다.”
그 한마디에 그녀는 손으로 입을 막고 눈물을 글썽였다.
오랜 병원 생활 끝에 처음으로 듣는 좋은 소식,
그토록 기다리던 희망이 눈앞에 펼쳐진 순간이었다.
이대로 음성이 몇 번 더 이어진다면, 다시 본격적인 치료를 이어갈 수 있다는 가능성이 열린 것이다.
곧 퇴원을 해도 좋다는 말까지 들었다.
추석이 가까워오던 선선한 계절, 그것은 긴 고통 끝에 찾아온 뜻밖의 선물 같았다.
퇴원 후, 그들은 병원 근처 수산시장에서 꽃게를 사와 오랜만에 집밥을 함께했다.
지방에 계신 부모님 댁이 아닌, 그와 그녀가 함께 살아가던 작은 집에서 먹는 저녁 식탁은
세상 어느 만찬보다 소중했다.
단순한 꽃게찜 한 끼였지만, 두 사람은 평범한 일상의 행복을 새삼 깨달았다.
며칠 뒤 병원 진료 후, 오랜만에 그들이 예전에 자주 가던 쇼핑몰에 있는 회전스시집으로 갔다.
그 순간은 특별하지 않은 듯 보였지만, 사실은 오랜 기다림 끝에 겨우 손에 쥔 평범한 행복이었다.
그는 그녀와 오랜만에 일상으로 돌아간 것 같아 신이났다.
신이 이때까지 힘든 시간을 버틴 그들에게 주는 선물인 것 같았다.
그녀의 어머니도 가끔 그들이 있는 집에서 함께 지냈다.
그의 생일이 다가왔을때,
그녀는 그녀의 어머니와 함께 케이크를 준비해 그를 위한 생일 축하 파티를 해주었다.
며칠 뒤, 그의 어머니도 집을 찾아왔다.
셋이 함께 산책을 나섰을 때, 어머니는 두 사람을 나란히 세우며 미소 지었다.
“같이 서봐라.”
찰칵— 순간이 사진 속에 담겼다.
그는 옆에 서 있는 그녀와, 그 장면을 바라보는 어머니를 동시에 느끼며 가슴이 벅차올랐다.
세상에서 가장 사랑하는 두 여인이 그의 곁에 함께 있다는 사실,
그 순간만으로도 세상 그 어떤 것보다 행복했다.
이 시기, 그는 가끔 새벽에 일어나 수산시장에 다녀왔다.
차로 40분이 넘게 걸리는 길이었지만,
그녀가 집에서 평온히 잠들어 있다는 생각만으로도 발걸음이 가벼웠다.
달빛이 환히 비추던 새벽하늘 아래,
그녀에게 줄 신선한 음식을 사러 가는 길은 그에게 기도의 시간이자 행복 그 자체였다.
수산시장에서 싱싱한 해산물을 사 들고 돌아오면, 그녀는 이미 일어나 그의 발걸음을 기다리고 있었다.
문이 열리자 환한 웃음으로 그를 맞아주었고, 두 사람은 함께 주방에 서서 수산물을 요리했다.
웃으며 나누는 그 짧은 순간이, 그에겐 세상의 전부처럼 소중했다.
무엇보다 집으로 돌아올 때마다 환하게 맞아주는 그녀가 있다는 사실,
그것만으로도 그는 더없이 행복했다.
소소한 일상이 다시 손에 닿은 듯했고, 그 무엇도 부럽지 않았다.
첫 음성 반응 이후, 퇴원해 함께 보낸 두 달 남짓의 시간은 그들에게 ‘행복 그 자체’였다.
그렇게 두 사람의 곁에는 새해가 다가오고 있었다.
새해를 맞으며 그녀가 건강을 되찾기를 간절히 빌었지만, 하늘은 다시 무심했다.
검사 결과는 다시 양성으로 바뀌었고, 병원은 더 이상 할 수 있는 치료가 없다며 통증완화 병원을 권했다.
그는 무너지는 마음을 붙잡으며 새로운 병원을 찾아야 했다.
그녀는 이제 평범한 대화조차 힘들어졌지만, 새로운 병원으로 옮기자 다행히 통증은 조금 나아졌다.
그렇게 또 다른 병원 생활이, 시작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