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두운 저녁, 내면의 목소리를 듣기 위해 아파트 단지의 야외 벤치에 앉아 눈을 감았다.
처음엔 온갖 잡생각만이 머릿속을 흔들어놓았다.
포기하지 않고 마음속 깊은 곳으로 더 들어가려 애썼다.
“나는 어떤 사람인가?”
스스로에게 물었다.
선명한 대답은 들리지 않았다.
그저 어렴풋하게 느껴진 건 하나였다.
나는 주인공이 되고 싶어 하는 사람이라는 것.
사람들을 위해서가 아니라, 오직 나 자신을 위해 인정받고 싶어 하는 사람.
그 욕망을 마주하는 순간, 내 마음이 간사하게 느껴졌다.
책에서 배운 이상적인 모습은 나와는 거리가 멀었다.
나는 책 속의 문장들을 붙잡고
“이제 나는 더 나은 사람이 되었다”고 착각해왔다.
그저 겉을 핥은 채, 바뀐 척을 하고 있었을 뿐이었다.
마음을 있는 그대로 들여다본 순간, 오히려 반성이 밀려왔다.
내 안의 본능은 여전히 나를 주인공 자리에 세우고 싶어 했다.
나는 생각했다.
'내 본능을 따라가면 내가 진짜 원하는 걸 찾을 수 있겠지.
그리고 목표도 선명해지겠지.'
하지만 그 반대였다.
본모습을 마주한 순간,
오히려 이렇게 살아서는 안 되겠다고 생각했다.
내 자신이 기분좋으려고, 주인공이 되려고, 욕심 많게 행동한다면
결국 간사한 망나니로 변하는건 시간문제일 뿐이었다
내 본성대로 살아보기 위해 마음을 들여다보았는데
아이러니하게도, 그 깊은 곳을 들여다본 순간
나는 오히려 내 본성을 바꿔야겠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그렇게 내면을 들여다본 후 집으로 돌아와 무심코 TV를 켰다.
마침 영화 <광해>가 나오고 있었다.
진짜 왕은 욕심이 많고, 자기만을 생각하는 인물이었다.
하지만 왕을 연기하는 광대는 자신보다 백성을 먼저 두는 사람이었다.
그 대비는 내 마음과 겹쳐졌다.
나는 알게 되었다.
사람들에게 관심을 준 이유도, 결국 인정받고 싶어서였음을.
그러나 이제는 달라지고 싶다.
사람들을 돕고 싶어서 관심을 주는 사람이 되고 싶다.
'난 무슨 사람이 되길 원하는가?'
이 질문에 대한 답을 찾기 위해 나는 마음 속 깊숙한 곳으로 들어가 보았다.
눈을 감고 나자신을 조용히 들여다 본 후, 어렴풋이 잡힌 희미한 윤곽이 영화를 보며 또렷해졌다.
이제 내 마음은 말한다.
어제의 나는, 주인공이 되고 싶어 하는 사람이었다.
하지만 내일의 나는, 기꺼이 조연이 되고 싶은 사람으로 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