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항에 있는 아빠에게 연락이 왔다. 엄마가 신촌 세브란스 병원에서 할머니를 병간호하고 있는데 감기몸살로 몸이 많이 안 좋다고 했다.
바로 엄마에게 전화를 해보니 엄마 목소리에 힘이 없었다.
엄마는 병원에서 그나마 가까운 내 집에서 쉬어야겠다며 집으로 가는 버스를 알려달라 했다.
네이버로 검색해서 알아보니 병원에서 집으로 한 번에 오는 버스가 없었다. 최소 한 번은 갈아타야 됐다.
엄마는 서울길을 다녀본 경험이 거의 없는 데다 몸까지 아프니 버스 타고 오기엔 무리라 생각했다.
당시 난 집에서 책을 읽던 중이었는데 한 권을 다 읽기까지 20페이지 정도 남아있었다.
그래서 읽던 책을 다 읽고 직접 차를 끌고 병원에 가서 엄마를 데리러 가야겠더고 생각했다.
엄마에게 전화를 해서 내가 2시간 뒤 병원에 도착할 거 같으니 기다리라고 했다.
그런데 20분쯤 지나서 엄마가 택시를 타고 오겠다고 카톡이 왔다.
카톡을 보고 바로 엄마에게 전화를 걸어보니 생각했던 것보다 많이 아파 보였다. 난 바로 옷을 갈아입고 병원으로 급하게 운전했다.
병원에 도착하고 5분 뒤 엄마가 병원 본관 입구로 나와 내 차에 탔다.
엄마 몰골이 말이 아니었다.
내 욕심 때문에 읽던 책을 접지 않고 바로 엄마에게 오지 않았던 게 죄책감이 들었다.
우린 동네 병원에 가서 주사와 링거를 맞고 약을 처방받아서 집으로 왔다.
(엄마도 독감에 걸렸다.)
거실에 엄마가 누울 수 있게 엄마가 사준 이불을 꺼냈는데 엄마는 왜 좋은 이불을 꺼내냐며 다른 이불을 꺼내라 했다. 난 엄마를 위해 일부러 좋은 이불을 꺼냈는데 엄마는 본인이 아픈데도 아들이 좋은 이불을 쓰게 하려 했다. 몇 분뒤 우린 배달주문한 전복죽을 나눠 먹었다. 엄마는 이제 살 것 같다 했고 나도 드디어 안심이 됐다.
엄마는 거의 일주일간 병원에서 혼자 할머니 병간호를 했다.
난 엄마에게 병원간병이 생각이랑 다르게 많이 힘든 거니 무리하지 마라고 잔소리처럼 여러 번 얘기했다.
할머니 수술은 다행히 잘 되었고, 작은 외삼촌이 포항에서 ktx 타고 올라와서 엄마 대신 할머니 간호를 해주기로 했다.
할머니 입원실에 있던 다른 환자 간병인이 마침 일이 끝나서 외삼촌이 병원에 올 때까지 그분께 할머니를 맡기고 왔다. 3시간만 할머니 간병하는데도 하루치 일당 15만 원을 다 달라고 했다.
어쩔 수 없지만 간병인에게 화가 났다. 뭔가 거저먹으려는 느낌이 들었기 때문이다.
엄마는 내가 직장에서 조퇴를 쓰고 병원으로 온 줄알고있지만 사실 난 휴직기간이라 직장에 출근 안하고 집에서 지내고 있다.
부모님이 휴직에 100프로 반대하실 거라 생각했기 때문에 말하지 않았다.
내일까지 연가 썼다고 거짓말했다.
저녁에는 우리 동네 맛집인 버거집에서 토마토치즈버거 세트를 주문해서 엄마와 같이 먹었다.
버거와 감자튀김은 꿀맛이었고 제로콜라는 느끼한 속을 시원하게 뻥 뚫어 주었다.
평소 콜라는 자제하고 있지만 피자와 햄버거 먹을 땐 콜라가 필수라는 걸 다시 한번 느꼈다.
엄마는 내게 과일 사 먹으라며 농협하나로마트 10만 원 상품권을 줬다.내가 안 받겠다고 해도 소용없었다.
아픈 엄마를 챙기느라 독서를 많이 못한 대신 이틀 동안 못한 운동을 조금이라도 하자는 생각에 아파트 헬스장에 가서 실내자전거 10분, 벤치프레스 15회를 했다.
20분 정도만으로도 충분히 운동이 되어 몸이 개운해졌고 게다가 성취감도 느낄 수 있어 좋았다.
독서연습은 해도 늘지 않아 괴로울 때가 많은데 운동만큼은 하는 대로 성과가 나타나서 좋다.
(작년까진 아침에 운동을 다녔는데 올해부터 오후에 하려니 잘 안 가게 된다. 브런치스토리도 저녁에 쓰려니 잘 안 하게 된다. 이 두 가지를 아침에 하는 것을 고려해 봐야겠다.)
지금 엄마는 벌써 거실에서 불끄고 자고있다.
충격적이고 부끄럽게도 내 나이 40이 되기까지 부모님을 위해 직접 요리를 해준 적이 없다.
엄마는 아픈데도 불구하고 내일 아침을 직접 하기위해 나보고 두부만 사 와 달라고 했다.
몸이 아픈 엄마를 위해 내일 아침은 내가 직접 멸치육수에 호박,버섯,두부가 들어간 따뜻한 된장찌개를 만들어야겠다.
엄마에게 아들로서 도움이 되는 하루를 보내 뿌듯하다.
그리고 엄마가 편하게 앉아서 집까지 올 수 있도록 도움을 준 내 차와
마음 놓고 편하게 휴식할 수 있게 안식처가 되어준 나의 집에 너무 감사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