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태한 나를 각성시킨 <쇼생크 탈출>

by 차밍

모두가 다시 일상으로 돌아가는 월요일.

나는 그날, 번거러운 트레일러 정기검사를 위해 연가를 냈다.

기한이 딱 그날까지라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지만,

그 하루는 내게 예상치 못한 큰 '각성'의 날이 되었다.


오전 중 트레일러 검사를 마치고 남은 시간을 더 휴가답게 보내기 위해 소파에 몸을 파묻고 영화를 보기로 헀다.

TV 채널을 돌리다 리모콘을 움직이던 내 손가락을 멈춘 것은 명작 중의 명작 <쇼생크 탈출>이었다.

마침 아직 영화 초반 부분이었다.


이미 몇 번 본 영화였기에 그대로 채널을 넘기려 했는데, 왠지 모르게 영화 장면의 분위기가 나를 붙잡았다.

어릴적 추억을 건드리는 90년대 후반 할리우드 영화 특유의 클래식한 질감, 그리고 영화 '나홀로 집에' 의 그 시대 미국 감성이 나의 시선을 계속 잡아두었다.


그렇게 잠깐만 보려던 영화는 결국 나를 푹 빠뜨렸다.

러닝타임 내내 감탄사를 연발하며 몰입했고, 끝날때까지 눈을 뗄 수 없었다.

내가 이 영화에 깊이 빠져들었던 특별한 이유는, 영화 속 주인공의 상황이 신기할정도로 현재 내 상황과 오버랩되었기 때문이다.


영화 줄거리는 이렇다.

"살인 누명을 쓰고 기약 없는 억울한 감옥살이를 시작한 주인공 앤디.


자신을 괴롭히는 수용소들에게 지옥처럼 괴로운 일들을 수없이 겪으면서도 꿋꿋이 수용소 생활을 해 나간다.

그러면서도 희망을 잃지 않고 자신만의 원대한 플랜을 세우고, 남몰래 묵묵히 꾸준히 실행해 나갔다.


감옥 생활에 익숙해져 출소를 두려워하는 다른 수감자들과 달리,

앤디는 결코 교도소 생활에 안주하지 않고 교도소 밖 자신이 꿈꾸는 삶에 대한 희망을 굳건히 붙들었다.


비상한 지식과 능력을 가진 앤디는 교도소장과 교도관들에게 경제적인 도움을 주며 일종의 '혜택'을 누리기도 한다. 하지만 동시에 그들은 앤디를 자기 곁에 영원히 붙잡아두고 싶어 했다.

앤디가 누명이었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이를 은폐하며 그의 자유를 막았다.


그리고 어느 날, 그는 교도소에서 마치 귀신처럼 사라졌다.

불가능할 것만 같았던 탈옥에 온갖 고통과 끝날것 같지 않던 인내의 시간을 희망을 붙잡고 견뎌냈다.

마침내 성공하여 자신이 자유의 몸이 된 그는,

그동안 자신이 관리했던 교도소장의 불법 자금을 빼돌려 자기가 꿈꾸던 곳에서 원하던 삶을 살게 되었다."



주인공의 이 모든 상황들이 신기할 정도로 내 현실과 겹쳤다.


상사들이 능력있는 부하에게 중요하거나 어려운 일을 더 많이 맡기면서

능력있는 부하가 오히려 직장에 더 얽매이게 되는 것은

교도소장이 앤디가 계속해서 자기의 자금과 세금을 효율적으로 관리하게 하기 위해 누명을 쓴 앤디를 감옥에서 벗어나지 못하게 하는 상황과 맞아떨어졌다.

참고로 난 이 케이스에서만큼은 어느정도 자유롭다. 직장에서 상사에게 일로 인정받는 직원은 아니기 때문이다.


수감자들이 교도소 수감생활에 익숙해져 오히려 바깥세상을 두려워하는 모습은,

나 역시 직장회사 생활에 안주하여 새로운 도전이나 변화를 두려워하는 것에 비유할 수 있었다.


회사 생활에 익숙해진 내가 직장 생활이 익숙해져 직장을 벗어나 다른 세상을 경험하는 걸 두려워하는 것에 비유가 되었다.


지옥같은 수감생활 속에서도 앤디는 잠을 줄여가며 조그마한 망치로 긴 탈출용 땅굴을 파낸 것은

내가 직장생활하면서도 새벽 일찍 일어나 출근전까지 책을 읽고 퇴근해서는 바로 블로그를 쓰는 모습과 닮아 있었다.


하지만 이보다 중요한 건,앤디의 노력 강도에 비하면 나의 노력은 '태양과 모래알' 차이였다는 것이다.

조그마한 망치로는 땅굴을 판다면 무려 600년은 족히 걸릴 법한 일을,

주인공 앤디는 무려 19년 만에 해냈다.

대부분이 600년 걸릴것 같은 일은 시작조차도 못했을 것이다 .

그런데도 불구하고 그는 시작해서 무려 19년이란 시간 동안 포기하지 않고 결국 해낸 것이다.

물론 생각없이 무작정 파낸 것이 아니라, 수학과 물리를 계산하며 더 효율적으로 작업을 진행했다


작은 해머로 판 땅굴을 나와서도 끝이 아니었다.

오물 가득한 하수관을 엎드려서, 오물에 몸을 담근 채로 무려 450m나 기어서 나와야 했다.

축구장의 3배 길이라고 하니, 그 끔찍함은 상상조차 하기 어렵다.

앤디의 희망을 향한 의지는 그 어떤 장애물도 막을 수 없었다.

나라면 감히 엄두도 내지 못하고 차라리 감옥살이를 택했을것이다.


게다가 주인공은 지옥같은 수감소 생활을 무려 19년동안이나 버텨냈다.

게다가 탈출 준비를 하면서도 그는 교도소 생활을 소홀히 하지 않았다.

오히려 의회의 지원을 어렵게 받아내 수감자들을 위한 도서관을 새로 단장했고,

그 덕분에 차가운 감옥은 조금 더 사람 냄새 나는 공간이 되었다.


하지만 난 주인공보다 훨씬 좋은 환경에서 고작 1년 조금 넘은 정도에 벌써 지치고 포기하려 했다.


주인공 앤디는 희망을 이루기 위해

걸리면 죽을 수 있는 위험한 상황에서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보다 차라리 죽더라도 실행하는 선택을 했다.

그에 비해 나는 죽기 살기로 하기는 커녕, 19년이 아닌 고작 1년 설렁설렁하고 벌써 지쳐 포기하려 했다.


쇼생크탈출 영화는 나태해진 나를 각성시켰다.

내가 하고 있는 노력은 아직 '티끌'만큼도 안 된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 월요일 연가는 단순히 트레일러 검사를 위한 날이 아니었다.

나 자신을 점검하고 반성하도록 이끈, '나를 검사하는 날'이었다.


계륵처럼 여기던 트레일러 덕분에 <쇼생크 탈출>을 보며, 어떤 어려운 상황에서도 끝까지 포기하지 않는 의지와 희망을 가슴 깊이 새길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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