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이든 현악 4중주 작품번호 64-5 '종달새'
또르르르! 또르르르!
천운이를 임신하기 전까진 아침에 제일 먼저 하는 일이 커피를 내리는 일이었다. 집안 가득 갓 구운 원두의 향이 퍼지면서 커피가 내려지는 소리를 들으면 정말 행복했다. 아침 햇살이 가득 담긴 거실에서 하늘을 향해 한껏 기지개를 켜고는 오늘의 음악을 골라 오디오에 걸고 앉는다. 햇빛을 입고 음악을 귀에 담고 커피 향을 온몸으로 맡으며 아무 생각 없이 즐기는 그 시간이 참 행복했다.
한동안 아이를 임신하고 키우면서는 그 아침의 호사를 누리지 못했다. 우아하게 앉아서 아침에 음악을 듣는다는 건 어린 아들을 둔 출근하는 엄마에게 사치였다. 알람시계가 울리면 잘 세팅된 로봇처럼 휘뤼릭휘뤼뤽 아침을 준비하고, 아이를 깨우고 씻겨 밥을 먹이고 등원 준비를 했다. 아이가 밥을 먹는 그 몇 분 동안 난 앞에 있는 의자에 앉아 얼굴에 그림 그리기를 대충 하고는 집을 나선다. 아이가 셔틀을 타고 떠나면 나도 직장인 학교로 향했다. 혼자서 아침을 챙기는 그 시간들이 버거웠지만 그렇게 시간들이 흘러갔다.
어느덧 아이가 혼자서 할 수 있는 일들이 많아지면서 아침이 한결 여유로워졌다. 그리웠던 아침의 시간을 찾게 된 것이다. 이젠 커피를 마음껏 마셔도 되고 음악을 들을 여유도 생겼다. 우린 일어나서 함께 그리고 각각 자기의 준비를 했다.
일찍부터 자기 할 일과 자기 물건을 책임지는 것에 대해 자주 이야기를 해준 덕에 아이는 또래보다 꽤 잘 해냈다. 당연히 매번 완벽한 건 아니지만 노력하는 그 모습을 보면 고맙고 대견했다. 고사리 같은 손으로 어린이집 가방에 주섬주섬 젓가락 통을 넣는 그 장면. 세상 뿌듯하다.
우리 집은 바깥에서 들으면 식구들이 꽤 많은 집처럼 들린다. 아이와 내가 끊임없이 종알종알 때로는 와글와글 시끌벅쩍하게 이야기를 하기 때문이다. 가만 보면 아이도 말이 많지만, 나도 어느샌가 말이 많아졌다. 처음엔 의도적으로 말을 많이 했는데, 이젠 아이랑 하는 대화가 재미있어서 한다. 나는 종알종알 말을 하는 아이를 ‘종다리’라고 불렀다.
“우리 예쁜 종다리 이리 와 보세요! 엄마가 안아 줄게!”
2인용 소파에 앉아서 아이를 부르면 어느새 아이가 내 품에 쏙 안겨있다. 종다리 아들을 안고 자주 들었던 음악. 바로 파파 하이든의 현악 4중주 ‘종달새’다.
하이든 현악 4중주 ‘종달새’ 작품번호 64-5
교향곡의 아버지라 불리는 요셉 하이든은(Joseph Haydn 1732~1809 오스트리아) 오스트리아의 작은 마을 로라우에서 태어났다. 음악사에서 ‘~의 아버지’라고 불리는 건 그 분야의 아버지 같은 역할을 한다는 뜻이다. ‘서양 음악의 아버지’라고 불리는 바흐는 이전의 서양 음악을 집대성하고 정리해서 후세의 음악가들에게 지표를 만들어줬기 때문에 붙여진 호칭이다. ‘서양 음악의 아버지’ 바흐와 ‘교향곡의 아버지’ 하이든, ‘왈츠의 아버지’ 요한 슈트라우스 1세.
음악가들은 결혼을 많이 하지 않았다. 설사 결혼을 했어도 원만한 가정생활을 하면서 아이들을 잘 키우는 건 천성적으로 어려웠다. 개인적인 측면으로 보면 대단한 음악가였지만 부모가 되기엔 부족한 점들이 많은 게 예술가다. 하이든은 결혼은 했지만 아이는 없었다. 억척스러운 부인과 사이가 그리 좋지는 않아 평생 결혼 생활이 만만치 않았다. 그런데도 그는 아이들의 마음을 어루만지는 재주가 있다.
내가 하이든을 좋아하는 여러 가지 이유
음악가 부모를 두지 않았지만 훌륭한 음악가가 됐다.
음악은 타고난 능력이 아주 중요하다. 물론 능력만 가지고는 안 된다. 자신의 끊임없는 노력이 중요하다, 하지만 예술가가 된다는 건 타고난 능력이 필수 전제조건이다. 바흐는 가문 전체가 음악가 집안이었고 모차르트 아버지도 궁정 바이올리니스트였다. 베토벤도 브람스도 아버지가 음악가였다. 그런데 우리 하이든 선생님의 아버지는 수레바퀴 제작자였고, 어머니는 그 지방 귀족의 요리사였다. 더군다나 하이든의 아버지는 두 번이나 결혼하여 12명의 아이를 뒀는데, 하이든은 첫 번째 부인의 큰아들이었다. 말하자면 11명의 이복형제를 둔 12남매의 장남이었다. 어깨에 짊어진 짐이 상당히 무거웠을 것이다.
삶을 받아들이고 최선을 다하며 살았다.
하이든의 집은 여유롭지 않았다. 그래서 어릴 때부터 일찌감치 철이 들었다. 가계에 도움이 되기 위해 숙박을 하면서 음악을 배울 수 있었던 빈 슈테판 합창단에서 노래를 불렀다. 16살 경부터는 잡일을 마다하지 않고 일했으며, 악기 레슨을 하며 돈을 벌었다. 부모를 탓하지도 집에 돈이 없는 것도 탓하지 않고 모든 것을 받아들이며 자신의 삶에 최선을 다했다.
유머와 재치가 있다.
하이든은 집안 환경이나 자신의 삶이 그리 평탄치 않았지만 항상 웃음을 잃지 않았다. 그래서 어떤 불편한 상황을 마주하거나 어려운 상황이 돼도 부드럽게 돌려서 기분 좋은 결과를 만들어 냈다. 요즘 세상에 정말 필요한 능력을 지닌 그였다.
이런 하이든이었기에 남들에게 직접적으로 강렬한 영향을 끼치지 않으면서도 은근히 느끼게 하는 곡들을 많이 작곡했다. 하이든은 여러 관현악기들이 연주하는 교향곡을 104곡이나 작곡했고, 현악기 4대로 연주하는 현악 4중주의 곡도 83곡이나 작곡했다.
현악 4중주에서 가장 유명한 곡이 바로 작품번호 64에 다섯 번째로 들어있는 ‘종달새’다. 작품 64의 현악 4중주 세트는 하이든이 에스테르하지 궁정에서 보낸 30년간의 궁정음악가 생활을 마무리하고 인생의 새로운 전환기를 맞이하던 중요한 시기에 작곡됐다.
하이든의 후기 작품이니만큼 작품 64의 6곡에는 하이든의 노련한 작곡기법이 잘 나타나 있다. 그가 직접 붙인 제목은 아니지만, 종달새라는 제목 덕에 우린 더 이해가 쉽다. 전체 4개의 악장으로 만들어졌는데, 1악장은 누구나 들으면 익숙한 멜로디다. 태교음악 음반에 꼭 들어가 있는 필수곡이다.
아이가 갓난쟁이 때도 그랬지만 지금까지도 음악을 들을 때면
아이를 무릎에 앉히거나 꼭 안고 듣는다.
내 체온까지 더해서 음악을 느끼게 해주고 싶어서다.
음악을 사랑하는 아이로
사랑이 많은 아이로 자라면 좋겠다.
아참! 하이든도 음악을 사랑하는 부모 아래서 사랑받으며 컸다.
하이든의 아버지는 항상 하이든을 무릎에 앉히고 노래를 불러줬단다.
유튜브 검색어
하이든, 현악 4중주 ‘종달새’
[Haydn, String Quartet Op. 64, no.5 ‘The Lark’ Hob. Ⅲ:63]
하이든 현악 4중주 '종달새'
J. Haydn - Hob III:63 - String Quartet Op. 64 No. 5 in D major
연주-예루살렘 현악 4중주단
https://youtu.be/bwZv_q4q2_0?list=RDbwZv_q4q2_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