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쇼팽 전주곡 op.28-4, 28-15 '빗방울 전주곡'
뮤즈> 반가운 비가 내려서 빗소리 들으며 주말 보냈습니다. 비 오니까 마음이 무장해제돼서 온몸의 감성이 살아나더라고요. 도로가 막히는 건 싫은데, 가만히 앉아서 빗소리 듣는 건 정말 좋아요.
디오니소스> 비가 좋았다가 싫었다가 하는데, 음악 감상할 땐 비가 좋아요. 괜스레 낭만적이 된다고나 할까요?
뮤즈> 맞아요. 마음이 말랑말랑해져 있을 땐 음악도 더 잘 들리고, 더불어 더 듣고 싶기도 하죠.
‘비가 내리고 음악이 흐르면~~~!!!’ 많이들 좋아하는 가요죠.
전 이런 날에 꼭 듣는 클래식이 있습니다.
비와 잘 어울리는 작곡가 프레드릭 쇼팽의 전주곡입니다.
디오니소스> 쇼팽! 녹턴 말고도 전주곡을 작곡했군요?
뮤즈> 쇼팽은 피아노 문헌상으로 볼 때 독보적인 업적들을 많이 남겼습니다.
이전에도 녹턴이나 전주곡이라는 장르가 없었던 건 아니었어요.
하지만 쇼팽에 이르러서는 이런 곡들이 독주곡으로서 아주 중요한 의미를 갖게 되죠.
아시다시피 쇼팽은 클래식의 변방인 동유럽 폴란드에서 태어났습니다. 그는 폴란드 귀족인 엄마와 프랑스어 교사인 아버지의 덕택에 어릴 적부터 음악을 자연스레 접했습니다. 그리고 폴란드 음악원에서 공부를 하면서 역량을 키어나갔어요.
하지만 쇼팽은 20살에 고국을 떠나 프랑스 파리에서 정착을 했고, 연인인 죠르쥬 상드와 함께였던 시기에 전주곡 작곡을 시작합니다. 삶의 질풍노도를 겪어내면서 만든 전주곡이야말로 쇼팽의 내면세계를 마음껏 표현한 장르라고 말할 수 있어요. 모두 24곡으로 구성된 전주곡은 1836년부터 1839년까지 3년에 걸쳐 작곡됐어요. 상드와 함께 마요르카로 떠나기 전에 일부 작곡이 되고 나머지는 대부분은 요양차 떠났던 마요르카 섬 작은 수도원에서 작곡되었습니다.
디오니소스> 전주곡이란 무엇을 말하나요?
뮤즈> 전주곡이란 바흐가 활동했던 바로크 시대에는 도입부적인 역할을 하는 곡이었어요. 메인이 나오기 전에 먹는 에피타이저 같다고 할 수 있죠. 그런데 19세기 쇼팽의 시대부터는 독립적인 악곡을 일컬어 전주곡이라고 합니다. 쇼팽 이후에 드뷔시, 라흐마니노프, 쇼스타코비치 같은 작곡가들도 전주곡을 작곡했습니다.
디오니소스> 전주곡이라는 건 어느 한 곡을 말하는 게 아니고, 장르명이었군요.
뮤즈> 네 맞아요. 독립적으로 몇 곡을 발췌해 연주하기도 하지만 정격 연주회에서는 전체 24곡을 이어서 연주합니다.
그리고 24개의 곡으로 모은 이유는 쇼팽이 워낙 바흐를 좋아하고 존경해서 바흐의 평균율 24곡의 틀을 본떠 작곡을 해서입니다. 그중에서 4번과 빗방울 전주곡이라는 부제를 가지고 있는 15번을 감상해 보겠습니다.
쇼팽- 전주곡 op. 28- 4
피아노- 이보 포고렐리치
디오니소스> 음 클래식 이라기보단 무슨 슬픈 드라마의 배경음악 같아요.
뮤즈> 곡이 되게 음울하고 슬퍼요.
자신의 병약한 신체를 숙명처럼 느끼고 포기하는 것도 같고 마지막 음이 조용히 끝나는 부분은 체념하듯이 들립니다. 전주곡은 곡 하나하나가 색깔이 다 달라요. 몇 곡은 밝고 명랑하면서 몇 곡은 한없이 음울하고 무거워요. 그리고 또 몇 곡은 아주 웅장하고 스케일이 큽니다. 쇼팽의 다양한 내면세계를 표현한 거죠.
이 4번은 왼손의 코드 반주가 굉장히 음울해요. 그 저음의 비애감 위로 오른손이 슬픔의 멜로디를 연주해요. 마치 눈물을 뚝뚝 흘리는 장면을 묘사하는 것 같아요.
그리고 이 곡에 관한 독특한 편곡이 있어서 꼭 함께 듣고 싶은데요, 바로 일렉 기타 전자 기타의 지존 지미 페이지의 연주입니다.
영국의 전설적인 기타리스트죠, 1944년 생이던데 지금 봐도 멋있습니다.
디오니소스> 아니 지미 페이지는 일렉 기타리스트인데 클래식과도 관련이 있나요?
뮤즈> 너무 의외죠. 그런데 이 버전을 비 많이 오는 날 차에서 혼자 문 닫고 크게 들으면 엄청난 감동입니다.
기타연주- 지미 페이지
디오니소스> 지미 페이지 전성기 때 사진 보면 아주 멋지던데, 이런 멋진 사람이 쇼팽의 곡을 편곡해서 연주했다니 놀랍네요. 전주곡을 쇼팽의 원곡 버전으로 그리고 일렉 기타의 버전으로 동시에 들어보는 것도 흥미롭네요.
자! 두 번째 들을 전주곡은 15번인가요?
뮤즈> 작품번호 28의 전주곡 중에서는 15번인데, 이곡은 별도의 독립 곡으로도 자주 연주됩니다. 쇼팽이 비 오는 날 창가에 부딪치는 빗방울 소리를 듣고 작곡했다고 해서 ‘빗방울 raindrop’이라는 부제가 붙었어요.
디오니소스> 음표 하나하나를 빗방울처럼 표현한 거군요. 빗방울 전주곡은 저도 많이 들어봤어요.
뮤즈> 사실 클래식 음악에서 제목이란 어디까지가 진실인지 그 진위를 파악하기는 쉽지 않아요. 한 가지 확실한 건 작곡가 본인이 붙인 제목은 많지 않다는 겁니다. 출판사의 편집자나 판매자 또는 비평가들에 의해 붙어지는 경우가 많은데, 곡을 감상하는 입장에서는 이런 부제들이 고맙죠. 음악을 들으면서 상상을 할 수 있으니까요.
디오니소스> 쇼팽은 비 오는 날 어떤 느낌이었을까요? 예술가들이 영감을 얻는 방법이 궁금해요.
뮤즈> 영감이란 건 얻고 싶다고 얻어지는 것은 아니에요. 계획하고 마음먹는다고 떠오르는 건 아니지만, 마음의 상태가 어떠냐에 따라 달라지긴 합니다.
이 곡을 작곡할 당시 쇼팽은 많이 아팠습니다. 결핵을 앓고 있어서 요양 차 스페인의 섬 마요르카를 찾았는데, 일반 호텔에 방이 없어서 임시로 마을에 숙박을 하려다가 거절당합니다. 결핵이 전염이 된다고 하니 사람들은 그런 환자가 곁에 있는 것이 무서웠어요. 그래서 어쩔 수 없이 섬에 있는 카르투하 수도원에 머뭅니다. 6살 연상의 연인 죠르쥬 상드는 이미 두 아이를 키우는 엄마여서인지 쇼팽을 아이처럼 돌봐야 한다는 책임감이 컸어요.
어느 날 상드가 외출한 사이에 쇼팽이 호자 남아 수도원에서 빗소리를 듣습니다. 그 빗소리는 단순하 빗소리가 아니라 자신의 굴곡진 삶에 대한 애잔한 노래처럼 들렸어요. 짙어 가는 병색이 느껴지기도 했고요. 음악을 듣다 보면 한 음만 계속 반복돼서 들리거든요. 그 음이 커졌다 작아졌다 해요. 따뜻하게 들리기도 했다가 위협적으로 들리기도 했다가 하면서요. 음악 들으면서 그 음을 잘 들어보세요.
디오니소스> 몸도 아프고 마음도 적적한데 비까지 오니 그게 밝게 들리진 않았을 것 같네요.
사랑하는 여인과 함께여도 내 건강이 악화되는 게 느껴지니 슬펐나 보네요.
뮤즈> 저는 비가 오는 그날에 상드가 옆에 있었으면 이 음악은 작곡이 안 됐을 것 같아요. 혼자 있다 보니 외롭고 쓸쓸함이 격해져서 영감이 떠오르지 않았을까요? 아까 하셨던 질문에 대한 답을 하자면, 예술가는 부재나 결핍을 느낄 때 영감이 떠오르는 것 같아요.
부재와 결핍이 영감을 만든다
쇼팽- 전주곡 op.28-15 ‘빗방울’ (raindrop)
피아노- 마우리치오 폴리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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