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의 모든 아이들은
몸으로 표현한다.

by 피아니스트조현영

#EBS육아학교 칼럼 '피아니스트 엄마의 클래식 육아'에 연재 중입니다. 그 밖의 다른 글은 EBS육아학교 앱에서도 볼 수 있어요.



나는 피아니스트지만 춤추는 것을 상당히 즐긴다. 우아하고 차분한 클래식도 좋지만 가끔은 엉덩이 들썩이게 신나는 댄스 음악도 좋다. 특히나 요리를 할 때면 댄스 음악은 필수다.


예를 들면 이런 거다. 가늘게 채를 써는 게 관건인 감자볶음을 하는 때면 칼질을 리듬에 맞춰한다. 리듬과 함께 속도도 신경을 써 본다. 천천히 조심스럽게 칼질할 때가 있는가 하면, 빠른 속도로 알레그로(allegro)까지 달리는 경우도 있다. 쉽게 말하면 1분에 40번 정도의 칼질에서 1분에 80번 정도까지 칼질의 속도를 내는 거다. 중국 요리의 대가들이 TV에 나와 칼질하는 걸 보면 정발 고수답다. ‘따다다다 따다다다 딱!’ 그들이 하는 칼질에는 정확한 리듬과 빠른 속도감이 있다. 더군다나 박자감을 느끼게 하는 강박의 위치도 일정하다.


따! 와 마지막 딱!!

반면 두부 부침을 할 때는 적당히 기름을 두르고 앞뒤를 골고루 뒤집으며 기다려야 한다. 괜히 급한 마음에 너무 자주 뒤집으면 익지도 않을뿐더러 으스러진다. 부침개로 한 번씩 4분 음표 한 박 동안 꾹꾹 눌러준다. 댄스 음악을 틀어놓고 요리하는 시간은 은근히 즐겁다. 칼질을 하거나 부침을 하거나 국을 끓일 때도 몸은 한시도 가만히 있지 않다. 이런 엄마를 자주 보는 아들 역시 춤추는 것을 좋아한다.


우리 집엔 텔레비전이 없으니 영상을 따로 보진 못한다. 아들은 가수의 춤을 따라 하는 게 아니라 자기만의 방식대로 움직인다. 때로는 내가 추는 춤을 흉내 내는 경우도 있고, 어린이집에서 배운 춤을 보여주는 경우도 있다. 모든 게 다 자체 제작이다.


아들이 추는 춤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아이가 어느 정도 음악성이 있는지 알 수 있다. 물론 춤을 잘 춘다고 해서 다 음악성이 좋은 것도 아니고, 음악성이 있다고 해서 춤을 다 잘 추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분명 상관관계는 있다.


춤을 잘 추려면 음악을 잘 타야 한다.

리듬과 박자감이 없으면 스텝은 꼬이고, 발동작은 어설프며, 손동작이나 시선 처리는 어색하기 그지없다. 음악을 타고, 손과 발과 몸짓 그리고 시선이 각각 능수능란하게 상호 합동작전을 펴야 멋진 춤이 나온다. 음악에서는 아름다운 멜로디도 중요하지만 리듬감이 기본이다. 음악을 들으면서 몸을 움직이는 아이라면 벌써 이 아이는 음악을 타는 거다. 음악에 맞춰 몸을 흔드는 건 원래 인간의 본능이었다.


어린이집에서 오감발달 놀이로 오르프를 배우더니 요즘은 유리드믹스도 배우고 있다. 이젠 더 이상 음악 교육이라고 해서 음악만을 위한 교육은 하지 않는다. 음악을 들으며 몸으로 표현하고, 가사를 듣고 다른 단어를 넣어 보고, 흐르는 노래에 맞춰 악기 연주를 해보면서 오감이 골고루 발달되게 하는 프로그램을 진행한다. 오르프가 음악에 신체 리듬을 접목해서 몸동작으로 또는 오르프 악기로 표현해 보는 교육법이라면 유리드믹스는 그보다 훨씬 리듬을 중시하면서 음악성을 키워 나가는 교육법이다. 엄청난 차이가 있는 것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모두 같진 않다.


교수법의 대부분은 창시자의 이름을 딴 것이다. 그런데 유리드믹스는 예외다. 이 교수법은 스위스 음악교육학자 자크 달크로즈(1865~1950 스위스)가 만들었던 교수법 중 하나다. 유리드믹스와 솔페즈와 즉흥연주가 달크로즈 교육의 세 가지 방법이다. 그중에서 유리드믹스가 가장 중심인 거다.


달크로즈는 19세기 예술의 중심지였던 오스트리아 빈에서 태어났다. 음악교사인 엄마 덕에 어릴 때부터 음악에 관심이 많았다. 그는 단순히 악기 연주뿐만 아니라 스스로 짧은 곡을 작곡하기도 했다. 그리고 성장을 하면서 연극, 발레, 오페라, 문학 등에 두루두루 관심을 보였다. 이러한 성장 배경이 음악을 다른 장르와 연결시키게 된 것이다. 달크로즈에게 음악은 춤이고 그림이고 이야기였다.


‘유리드믹스(Eurythmics)’는 ‘좋다(good)’라는 뜻의 ‘유(eu)’와 ‘리듬(rhythm)’의 합성어이다. 말하자면 ‘좋은 리듬’이라는 뜻이다. 거기에 하나 덧붙이자면 움직임, 동작이다.


유리드믹스는 좋은 리듬의 음악을 몸으로 표현하는 음악놀이교육이다.

즐겁게 춤을 추는 것이다.


음악을 들으면서 내 몸을 이해하고 움직이면 아이의 예술성은 발달된다. 아이가 음악을 표현하기 위해 자신의 몸을 스스로 통제하고 조절하는 과정에서는 집중력이 좋아진다. 음악이 흐르는 동안은 음표에 맞춰 몸을 흔들다가, 갑자기 쉼표가 나와 멈출 때 내 몸도 멈춘다. 언제 어느 때 음악이 멈출지 모르니 집중해서 듣고 있어야 한다.


‘즐겁게 춤을 추다가 그대로 멈춰라!’

어릴 때 자주 하고 놀았던 이 노래에도 유리드믹스는 적용된다.

유리드믹스도 오르프도 모두 좋은 교육법이다. 개인적으로 관찰해 보건대, 모든 음악교육법은 각각 장단점이 있다. 그래서 딱히 ‘이 교육법이 제일이다’라고 말하긴 어렵다. 나 역시 음악을 하고 있지만 세상의 어떤 교육법도 완벽한 건 없다.


아이의 음악놀이 또는 음악교육을 시작해 보려고 한다면 일단 내 아이의 성향을 살피고, 수업료의 경제성이나 교통편의 이동성 그리고 수업 시간대를 알아보는 게 좋다. 일단 경험삼아 한 두 달의 수업을 듣는 것을 권한다. 그러다 보면 아이의 변화가 보인다. 당연히 진행하는 선생님의 자질과 능력도 보인다. 아이들의 반응은 본능적이고 감각적이어서 금방 눈에 띈다.


아들은 이미 몸이 흠뻑 젖을 만큼 춤을 췄다. 아들의 댄스 공연 뒤에 열화와 같은 리액션으로 박수를 쳤다. 아이의 얼굴이 행복해 보인다.


세상의 모든 아이들은 몸으로 표현한다.

보이지 않는 음악을 듣고 보이는 몸동작으로 표현을 한다. 리듬은 움직임이다.


그리고 움직임은 신체적인 경험이다. 이 신체적인 경험이 음악적 인식을 생기게 한다.

오늘도 아들은 마이클 잭슨처럼 마음껏 춤을 춘다.


https://youtu.be/wU2AYF7b9UM

#몸# 춤 #동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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