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 엄마처럼? 아니 나답게

by 피아니스트조현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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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 엄마처럼? 아니 나답게]




아이는 폐렴으로 입원했다가 소년이 되어 퇴원했다.




‘아이들은 아프고 나면 조금씩 큰다.’는 엄마의 말대로 씩씩한 소년이 된 아들은 4박 5일이 결국 6박 7일이 되어 집으로 왔다. 퇴원하면 어린이집을 다녀야 하는데, 다른 아이에게 감염이 될 수도 있으니 혹시나 하는 마음에 병원에서 넉넉하게 있다가 온 것이다. 그 사이 나는 병원과 직장을 쏘다니며 정신없이 지냈다. 아이의 병실에서 잠을 자고, 화장을 하고, 정장 차림으로 학교에 출근하는 내 모습이 이상했다. 아침마다 병실 엘리베이터 앞 거울을 들여다보며 옷매무새를 다듬는 어색한 내 모습이 거기 있었다. 아픈 아이를 혼자 재울 수는 없으니 일이 끝나면 꼭 병원으로 갔다. 연주가의 특성상 연주가 끝나면 대부분 저녁 10시경이다. 연주의 여운을 느낄 겨를도 없이 난 아이의 병원으로 향했다. 슬프게도 이상과 현실은 엄청난 간극이 있다. 피곤하다. 아들 폐렴 치료가 끝나면 내가 아파 누울 판이다. 아... 빨리 집에 가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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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침내 집에 도착했을 때 아이는 무척 기뻐했다. 자기 분신 같은 장난감들이며 익숙한 냄새, 익숙한 가구들이 아이를 반겼다. 이젠 많이 좋아져서 밥도 잘 먹고, 내일 당장 어린이집에 가겠다고 한다.




‘아들아! 그렇잖아도 어린이집 꼭 가야 해! 이젠 정말 엄마가 독주회 준비를 해야 한단다.’ 아들이 낫고 나니 당장 내 일이 걱정이다. 엄마로서, 한 여자로서 인생의 균형을 맞추는 일은 누구에게든 어렵다. 뫼비우스의 띠처럼 절대 풀리지 않고 엉켜있다.




깊은 한숨이 나온다. 아이 한 명도 이렇게 버벅거리고 있는데, 일하면서 아이 둘 셋씩 키우는 엄마들은 대체 어떤 능력과 품성의 사람들일까? 원래 나는 웬만한 일엔 크게 두려움 없이 자신감이 있었다. 그렇지만 둘 셋의 아이를 혼자 키우면서 주말부부 할 자신은 죽었다 깨어나도 없다. 대체적으로 주변에 아이를 많이 낳은 친구들을 보면 생각이 여유롭다.




다들 마음 그릇이 크다. 각자 다르겠지만 철저하게 나의 마음 그릇만 본다면 내 생애 아이는 하나인 것으로 결론을 내린다. 친정 부모님이나 시댁 부모님이 가까이 살거나 도와주신다면 무척 감사할 일이지만 사실 그것도 어려운 문제다. 시집도 늦게 갔는데, 조카 보느라 노쇠해진 부모님께 아들을 맡기는 것도 마음이 편치 않았다. 그렇다고 시어머님께 아이를 맡기고 아무렇지 않을 자신도 없었다. 시원스럽게 말 못 할 상황들이 얼마나 많이 생기겠는가... 참고 있자니 복장이 터질 테고, 상황마다 다 말씀을 드리자니 고부갈등이 깊어질 거다. 이건 불 보듯 뻔하다. 결정적으로 시어머님은 엄청 활동적인 분인데, 집에만 있어야 하는 육아를 시작하고 싶진 않으실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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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황이 허락하는 한 오랫동안 모유수유를 했고, 3살 때까진 엄마가 아이와 같이 있으면서 애착형성을 해야 한다는 나와의 약속도 간신이 지켰다. 그런데 어린이집을 다니기 시작하면서부터는 마음이 점점 무너지고 있다. 집에서 갓난아기로 있을 때는 특별한 일이 없었다. 먹고 자고 싸고. 이 간단한 세 가지의 행동을 잘해주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행복했는데, 지금은 욕심이 생겨난 거다. 아이가 아주 조금 컸을 뿐인데 조급해졌다. 점점 아이로부터 독립하고 싶어진다. 아직 갈 일이 먼데 말이다.




결국 다시 원점으로 돌아가서 아이를 어떻게 키울지 생각해 본다. 여러 육아서를 읽어보면 죄다 좋은 말이다. 그리고 전문가들이 많은 사람들의 임상과 자신의 경험과 전문지식을 토대로 쓴 글이니 하나도 틀린 말이 없다.




문제는 ‘나’다.


한때 우리나라에서도 ‘~엄마처럼 시리즈’가 유행했다. 지금도 그 트렌드는 진행 중이다. 나도 그 책을 읽으면서 밑줄 긋고 고개를 끄덕였던 부분이 한두 군데가 아니다. 그런데 문제는 아는 대로 실천을 못한다는 거다. 그리고 여기는 한국이다. 책을 읽은 며칠 동안은 정신을 차리고 애써 그렇게 해보려 하지만 끝내는 나라는 사람으로 돌아왔다. 엎치락뒤치락하면서 그렇게 좌충우돌 육아를 해왔다.




모두들 그렇게 키우고 있었다. 어디 멀리에서 찾을 것도 없었다. 아이가 입원해 있을 때 주변 엄마들을 보니 모습이 다양했다. 똑같이 아이가 아프지만 웃으면서 간호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얼굴에 온갖 짜증이 가득한 사람도 있었다. 다 같은 엄마인데 누군들 자식한테 화만 내고 싶었을까? 아마 그 엄마도 당시에 여유가 없으니 그랬을 것이다. 결국 육아는 나를 들여다보는 시간을 갖고 나답게 해야 하는 게 맞았다. 다만 어떤 다양한 방법이 있는지, 다른 사람들은 어떻게 아이와 관계를 맺는지에 대해서는 알아볼 필요가 있다. 그러나 결코 그것만이 답은 아니라는 것을 믿고 따라 하는 육아가 아닌 내 철학을 찾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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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에서 공부하면서 나중에 결혼하면 독일 엄마들처럼 육아를 해야겠다고 다짐했었다. 내가 보기에 아주 이상적이고 좋아 보였다. 독일의 육아는 여러모로 합리적이고 이성적이다. 공공의 규칙을 지키는 것을 아주 중요하게 생각하고, 그러면서도 자신의 목소리를 드러내는 일을 소홀히 하지 않는다. 당근과 채찍도 분명하다. 독일은 정말 가차 없다. 같은 유럽이지만 프랑스 엄마들은 독일 엄마들에 비해 더 온유하고 부드럽다.




아닌 것은 아니라고 강하게 이야기하고 대신 아닌 그 이유를 아이가 이해할 때까지 설명해준다. 그리고 아이가 이야기할 때 절대 다른 곳을 보지 않고 눈을 마주치며 집중해서 듣는다. 꾸중 뒤에는 깊게 안아주면서 사랑한다는 표현을 과감히 한다.




물론 요즘은 엄마들이 공부를 많이 해서 이런 방식으로 육아하는 분들이 많다. 하지만 눈 마주치면서 집중해서 듣기가 얼마나 어려운 일이며 아이를 설득하기 위해 필요한 논리와 다양한 수사법은 어찌 다 익힌단 말인가? 육아를 하면서 느껴보니 독일 엄마처럼 키우기도 어렵다. 그나마 한 가지 다행인 것은 독일 엄마들도 때론 욱하고 때론 악쓰고 때론 성질이 급하다. 그들도 사람이니까.




갑자기 부쩍 큰 아들을 바라보고 있자니 지금부터는 아이를 어떻게 키울지 많은 생각이 든다. 결국 이 말은 ‘내가 앞으로 어떻게 살지’와도 같은 의미다. 독일 엄마처럼 이성적으로? 프랑스 엄마처럼 온유하게? 과연 나처럼은 어떤 육아가 돼야 할까?




육아야말로 끊임없이 나를 들여다보는 작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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