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탕달 신드롬’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적과 흑≫으로 유명한 프랑스의 작가 스탕달이 만들어낸 단어로, 뛰어난 예술작품(미술작품이나 문학작품 등)을 보고 순간적으로 흥분 상태에 빠지거나 호흡곤란, 현기증, 위경련, 전신마비 등의 이상 증세를 보이는 것을 말하죠. 그가 1817년 이탈리아 피렌체에 있는 산타 크로체 성당에서 느꼈던 정신적 육체적 경험을 1817년에 출간한 책 ≪로마, 나폴리, 피렌체≫에서 처음 사용했습니다.
스탕달이라는 이름은 작가 마리 앙리 베일의 필명인데, 독일에 위치한 도시인 ‘슈텐트할(Stendhal)’에서 따온 것입니다. 강렬한 끌림! 여러분은 어떤 때 이런 느낌을 느끼시나요? 저는 딱 어느 때라고 이야기하긴 어렵지만, 아무래도 음악가이고 연주자이니 음악을 듣거나 연주하면서 이런 감정을 가장 진하게 느낍니다.
저는 위경련이나 전신마비의 스탕달 신드롬까진 아니었지만, 가슴이 턱 막히고 심장이 벌렁거렸던 경험이 있습니다. 그 어떤 감각보다 귀로 들리는 소리에 더 빨리 격하게 반응했던 제게는 평생 잊지 못할 소리의 처음들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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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기억하는 첫 번째 멋진 소리는 피아노예요. 7살에 처음으로 옆집 친구가 피아노 치는 것을 봤는데, 너무 멋있었습니다. 건반을 눌렀을 때 그런 예쁜 소리가 난다는 게 참 신기하면서도 놀라웠죠. 그야말로 맑은 소리, 고운 소리가 나는 피아노였습니다. 만화 속 공주가 요술 지팡이로 건들면 뭐든 바뀌는 것처럼, 친구의 손가락이 닿으면 그 네모난 큰 상자에서 기가 막힌 소리들이 탄생했습니다. 친구 손가락에 마법의 가루라도 묻혀있는 것 같았죠.
지금이야 워낙 일찍부터 피아노를 접할 수 있지만 제가 어린 시절만 해도 초등학교 때 집에 피아노 있는 사람 손들라고 할 정도로 피아노는 고가의 귀한 물건이었습니다. 그런 피아노를 친구는 7살부터 만질 수 있었어요. 정작 저보다 피아노를 훨씬 일찍 시작했던 그 친구는 얼마 안 가 지겹다고 그만뒀고, 피아노 소리에 스탕달 신드롬을 느낀 저는 엄마를 졸라 뒤늦게 피아노를 배울 수 있었습니다.
두 번째 알 수 없는 강렬한 끌림을 느꼈던 곡은 피아졸라의 사계를 들었을 때예요. 탱고를 좋아해서 그의 음악을 자주 듣긴 했지만 이 음악은 뭔가 특별한 것이 어쩐지 달랐습니다.
일상적인 것들과 모든 절망을 잊게 해주는 음악
아르헨티나 부에노스아이레스 남부에 있는 보카 거리에서 벌어진 즉석 탱고 공연 ⓒ조선DB
이 음악은 탱고 풍의 음악인데, 밀고 당기면서 끈적끈적하기도 했다가, 섬광처럼 강렬하기도 했다가 하는 음악입니다. 아스토르 피아졸라가 작곡한 ‘부에노스아이레스의 사계’ 중에서 ‘봄’입니다. 우리가 일반적으로 아는 ‘사계’는 바로크 시대의 작곡가 안토니오 비발디의 작품이죠. 물론 비발디의 사계가 가장 유명합니다. 그런데 이 사계절을 뜻하는 단어 ‘사계’는 비발디뿐만 아니라 많은 현대의 작곡가들도 음악의 소재로 썼습니다. 차이코프스키의 사계도 있고, 피아졸라의 사계도 있어요. 아스토르 피아졸라 (Astor Piazzolla, 1921~1992)는 아르헨티나의 수도 부에노스아이레스에서 태어났는데, 19세기의 대중음악인 탱고를 클래식화하여 ‘누에보 탱고(새로운 탱고)’로 재탄생시켰습니다.
피아졸라 사계의 원제목은 ‘네 계절의 포르테냐’로 포르테냐는 항구의~ 항구 풍의~라는 뜻으로 아르헨티나의 민속음악을 말합니다. 비발디와는 다르게 처음부터 사계절을 염두하고 모음곡으로 작곡된 것이 아니라, 각기 다른 시기에 작곡된 독자적인 작품들입니다.
처음 1965년 ‘부에노스아이레스의 여름’을 작곡하고 난 후 ‘부에노스아이레스의 가을’을, 그리고 ‘겨울’, ‘봄’의 순서로 1970년까지 각기 따로 작곡되었으며, 마지막에 이 곡을 모아 자신이 이끄는 5중주단이 연주할 수 있게 만들었는데 이때 ‘부에노스아이레스의 4계절 (Cuatro Estaciones)’이란 이름이 붙여졌습니다. 아르헨티나도 한국처럼 사계절이 있긴 하지만, 부에노스아이레스는 우리나라랑 계절이 좀 다릅니다. 우리가 겨울이면 아르헨티나는 여름이죠. 정반대예요. ‘부에노스아이레스의 봄’이니까 한국의 봄과는 시기도 다르고 정서도 다르지만, 이 음악을 처음 듣는 순간 강렬하게 끌렸습니다. 전체적인 분위기가 머리끝에서부터 손끝까지 격정적이라는 단어 이외에는 달리 표현할 말을 못 찾겠더라고요.
아스토르 피아졸라 ⓒ조선DB
모든 악기들이 숨죽이고 있다가 아주 천천히 음들이 진행하면서 점차적으로 격해집니다. 음악으로 들을 뿐인데 장면이 그려져요. 격하게 사랑하지만 이성의 힘으로 객관적 거리를 두고 있던 두 남녀가 서로를 응시하며 망설이다가 하나가 되고, 그랬다가 마지막에는 다시 제자리로 돌아가는 그런 느낌입니다. 이럴 때는 이 음악을 피부에 닿을 만큼 적확하게 표현해 줄 단어가 머릿속에서 쑥쑥 뽑아져 나오면 좋겠어요. 추상적인 음악을 말로 표현하려니 힘들어서 답답하네요.
워낙 좋아하는 곡이라 무대에서 자주 연주했습니다. 주로 피아노 트리오 버전으로 연주하는데, 피아노 트리오는 피아노, 바이올린, 첼로 이렇게 세 대의 악기가 서로 주고받으며 연주하는 구성입니다. 이 곡을 연주할 때마다 매번 무대에서 내려오면 너무 집중한 탓인지 땀이 엄청나게 흘렀던 기억이 나요. 연주자 입장에선 너무 감성에 젖는 것도 위험한 일이라 곡이 격정적이고 감성적일수록 최대한 이성을 잃지 않으려고 하는데도 그게 잘 안 되더라고요.
연주자로서 느끼는 이 감정을 아주 멋진 말로 표현한 바이올리니스트가 있습니다. 피아졸라 연주의 대가인 바이올리니스트 기돈 크레머의 말을 빌려 봅니다.
“나는 거의 모든 것을 연주해왔다. 마르첼로, 비발디부터 슈니트케, 존 아담스, 루이지 노노 등 최근작에 이르기까지. 그런 내가 피아졸라에 음악에 푹 빠져 버렸다. 그의 음악은 내게 모든 일상적인 것들과 모든 절망을 잊게 해 준다. 아스토르 음악에 대한 나의 사랑은 나로 하여금 일방적인 강의 같은 음악이 아니라, 청중에게 진정으로 말을 거는 현대음악의 한 단면을 탐구하게 해 주었다.” –기돈 크레머-
일상적인 것들과 모든 절망을 잊게 해 준다. 이 한 문장으로 모든 게 집약됩니다. 뭔가 끌리는 데는 이유가 없죠. 자석처럼 갖다 대기만 했을 뿐인데, 찰싹 달라붙습니다. 블랙홀처럼 빨려 들어갑니다. 피아졸라의 블랙홀은 제게 정말 스탕달 신드롬을 일으키게 했습니다.
이 글을 쓰는 동안 개인적으로 힘든 일이 한꺼번에 발생했습니다. 이제 이쯤 살아보니 '행복은 동시에 오지 않지만 불행은 동시에 온다'는 말이 암묵적인 진리처럼 느껴집니다. 저에게도 불행은 언제나 그렇게 왔으니까요. 올해 들어 자꾸 아프셨던 친정아버지가 요 근래 급격하게 건강이 안 좋아지셨고, 한창 건강해야 할 남편은 네 번째 수술을 했습니다. 심각한 수술은 아니지만 몸에 칼을 대는 일이 저렇게 반복되니 곁에 있는 저도 무기력해지고 힘들었습니다. 엄마를 필요로 하는 초등학생 아들도 챙겨야 하고, 큰딸 노릇도 해야 하고, 수술한 남편 보호자도 해야 하고, 일상도 꾸려나가야 하는 이 여자의 삶은 녹록지 않습니다. 딱 제 개인적인 기준만 들이대면 훌쩍 어디론가 떠나서 아무것도 생각 안 하고 멍하니 있다 오고 싶어요. 일주일만이라도 제 마음대로 쓸 수 있는 시간이 허락된다면 말입니다.
오늘도 글쓰기와 음악이 저를 살립니다. 차마 남에게는 제 입으로 힘들다는 소리가 죽어도 안 나오던데, 이렇게 글을 토해내듯 쓰고 있으니 말입니다. 일상적인 것들과 모든 절망을 잊고 싶은 이 봄에 최대한 크게 볼륨 설정하고 남반구의 봄노래를 들어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