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현듯 그의 얼굴이나 이름이 떠오를 때...

by 피아니스트조현영

‘누군가가 얼굴이 먼저 떠오르면 보고 싶은 사람이고, 이름이 먼저 떠오르면 잊을 수 없는 사람이다’라는 글귀를 읽은 적이 있어요. 사랑이란 얼굴이 떠오르기도 하고, 이름이 떠오르기도 하는 그런 감정입니다. 만나고 싶을 때 만날 수 있으면 기쁨이지만, 보고 싶어도 볼 수 없다면 슬픔이겠지요. 사랑은 기쁨과 슬픔을 모두 느끼게 하는 야누스입니다.



불현듯.

갑자기.

느닷없이.

뜬금없이.


작정을 한 것도 아닌데 온통 머릿속이 그 사람 생각으로 가득 차는 순간이 있습니다.

불현듯. 불과 현 그리고 듯, 이렇게 세 단어가 합쳐진 단어로 *불을 켜서 불이 일어나는 것처럼 어떤 일이나 생각이 걷잡을 수 없이 일어난다는 것 (*네이버 사전 발췌)이라는데 그 말이 딱 맞네요.

그렇게...

예기치 않게 마음을 요동치게 하는 감정

그게 바로 사랑입니다.

사랑은 조용히 오기도 하지만

그렇게 갑자기 마음에 훅 들어오기도 갑자기 훅 떠나기도 합니다.



야누스(Janus)적인 클래식. 야누스란 원래 앞뒤가 없는 문을 의미하는 것으로 로마의 신을 일컫는 말입니다. 사랑은 야누스예요. 어떨 땐 기쁘고 어떨 땐 슬프고. 정말 어떤 모습이 진짜인지 모를 때, 양가적인 감정이 드는 어떤 것을 두고 우리가 야누스 같다고 표현합니다. 저는 이런 약가적인 기분이 들 때 크라이슬러를 찾습니다.


기쁨과 슬픔이라는 사랑의 두 얼굴을 음악으로 표현한 프리츠 크라이슬러의 ‘사랑의 기쁨’과 ‘사랑의 슬픔’입니다. 작곡가 프리츠 크라이슬러는 1875년 오스트리아 빈에서 태어나서 1962년 미국에서 죽을 때까지 활동했던 20세기 작곡가입니다. 바이올리니스트로 뿐만 아니라 전쟁 때에는 참전 용사로 활동하기도 했는데, 1923년에는 우리나라에 와서 연주를 한 적도 있습니다. 직접 한국에 온 적이 있다니 왠지 좀 친숙하게 느껴집니다. 보통 작곡가들은 자기가 좋아하거나 잘 다루는 악기가 있으면 특별히 그 악기를 위한 곡을 많이 작곡합니다. 크라이슬러도 마찬가진데요, 본인이 유능한 바이올리니스트여서인지 유독 바이올린 곡을 많이 작곡했습니다. 그중에서 인간의 삶에서 빠질 수 없는 ‘사랑’이라는 화두를 표현한 두 곡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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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셔터스톡


먼저 ‘사랑의 기쁨’입니다. 이 곡은 여러분들 이미 익숙하게 많이 들어 본 곡인데요, 몇 년 전에 모 방송의 개그 프로에서 시그널 송으로도 쓰였어요. 어린 친구들은 대부분 이 곡을 들으면 바로 그 방송 이야기를 해요. ‘달인을 만나다!’라는 문구 기억나시죠? 바로 그 음악입니다. 개그 프로에서 들어도 전혀 어색하지 않을 만큼 아주 잘 어울리는 곡입니다. 듣고 있으면 정말 기분 좋아져요. 경쾌하게 시작되는 반주 덕에 결혼식에서 신랑 입장할 때도 많이 쓰여요. 사랑의 기쁨, 사랑의 슬픔 두 곡 모두 빈(wien)의 오래된 왈츠 선율을 인용해서 작곡되었습니다. 크라이슬러는 다른 작곡가들과 달리 소품 위주로 곡을 작곡했습니다.


두 번째 곡 ‘사랑의 슬픔’은 예전에 가수 이치현과 벗님들이 불렀던 노래와 제목이 같은데요, 혹시 그 노래 아세요? 가요에도 클래식처럼 오랜 여운이 남는 곡들이 많습니다. 어린 나이에 들었던 곡이지만 그 노래의 가사와 멜로디가 되게 공감이 가는 내용이었어요.


허무한 사랑에 눈을 감으면/ 그대 생각에 가슴이 시려요

아 속삭이듯 다가와 나를 사랑한다고/ 아 헤어지며 하는 말 나를 잊으라고

거리엔 흰 눈이 쌓이고 내 가슴엔/ 사랑의 슬픔이 피어나지 못할

눈꽃이 되어 빈 가슴을 적시네

-이치현과 벗님들 ‘사랑의 슬픔’ 중에서


크라이슬러의 '사랑의 슬픔' 역시 가요의 분위기처럼 굉장히 멜랑꼴리 합니다. 가사가 없을 뿐이지 사랑의 슬픔으로 인한 스산한 마음은 동일하네요. 사랑의 슬픔이 피어나지 못할 눈꽃이 되어 빈 가슴을 적십니다. 사랑이라는 건 하면서 기쁠 때도 있지만 울 일도 많잖아요. 사람 마음이 작정한 대로 움직이면 좋겠지만 그렇지도 못하고, 일방적인 짝사랑일 때도 있고요. 처음엔 둘이었지만 헤어져야 할 때도 있고요. 하지 않아야 할 사랑인 걸 뻔히 알면서도 마음이 가고 있어서 괴로운 사랑도 있습니다. 갑자기 크라이슬러 때문에 사랑에 대한 옛 추억이 떠오르는데요. 예술가들은 이렇게 곡 하나만으로도 사람의 마음을 들었다 놨다 합니다.

크라이슬러.PNG <작곡가 크라이슬러>

작곡가 크라이슬러는 오스트리아에서 태어났지만 프랑스 국적을 취득하기도 했고, 마지막에는 미국에서 활동을 하다가 뉴욕에서 삶을 마감했습니다. 어쩌면 그의 음악에서 느껴지는 세련된 취향은 이런 글로벌 노마드적인 삶에서 기인하는 건지도 모르겠어요. 미국으로 귀화하기 전에는 제1차 세계 대전에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 육군 장교로도 참전했고, 그 후에는 연주를 하면서 모은 돈을 상이군인을 위한 치료비로 내놓기도 했답니다. 잘 생긴 데다 인격도 훌륭하고 악기도 잘하고 또한 굉장히 지적입니다. 뛰어난 음악적 재능 덕에 10대에 이미 전 세계적으로 바이올리니스트로 명성을 떨치지만, 후에는 빈에서 10년 동안 의학을 공부하기도 했습니다. 게다가 로마에서 그림 공부도 했다 하니 크라이슬러야말로 지금 이 시대가 요구하는 창의적 인재라고 할 수 있겠어요. 보통 예술적 인기와 대중적 인기를 동시에 얻기가 참 어려운데요, 크라이슬러는 두 마리 토끼를 다 잡은 음악가입니다.



프랑스의 작곡가 비제가 작곡한 오페라 '카르멘'에서 여자 주인공 카르멘은 '사랑은 자유로운 새'라는 제목의 아바네라를 부릅니다. 카르멘의 말이 맞아요. 사랑은 그렇게 자유롭게 사람들의 마음을 뒤흔듭니다. 잡는다고 잡히지도, 잊겠다고 잊히지도 않는.


불현듯 그의 얼굴이나 이름이 떠오를 때, 크라이슬러를 들어보세요.


불불현듯 그의 얼굴이나 이름이 떠오를 때..현듯 그의 얼굴이나 이름이 떠오를 때...

불현듯 그의 얼굴이나 이름이 떠오를 때...

사랑의 기쁨

바이올린- 막심 벤게로프

https://youtu.be/xf-agzB4Dbkhttps://youtu.be/xf-agzB4Dbk



사랑의 슬픔

바이올린- 막심 벤게로프

https://youtu.be/6ildAh9iuh0https://youtu.be/6ildAh9iuh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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