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 가을에는 기도하게 하소서

리스트-탄식 S. 144 와 위로 S. 172

by 피아니스트조현영
프란츠 리스트.JPG <프란츠 리스트 1811~1886 헝가리>

뮤즈> 요즘은 하루하루 감사하며 지냅니다. 인간이 어찌할 수 없는 일들이 자주 발생하니, 기도하는 것 밖에는 달리 할 수 있는 일이 없더라고요. 이번 주엔 다들 안전하게 시험 치를 수 있길 바라면서, 오늘은 ‘가을에는 기도하게 하소서’라는 주제로 두 곡 듣겠습니다.


디오니소스> 김현승 시인의 작품이죠?


뮤즈> 네 맞아요. 제가 정말 좋아하는 시인데요, 가을엔 꼭 이 시를 읽어야 할 것 같아요.


가을의 기도 - 김현승


가을에는

기도하게 하소서

낙엽들이 지는 때를 기다려 내게 주신

겸허한 모국어로 나를 채우소서.

가을에는 사랑하게 하소서

오직 한 사람을 택하게 하소서,

가장 아름다운 열매를 위하여 이 비옥한

시간을 가꾸게 하소서.

가을에는

호올로 있게 하소서

나의 영혼,

굽이치는 바다와

백합의 골짜기를 지나,

마른 나뭇가지 위에 다다른 까마귀같이.


뮤즈> 정말 혼자 조용히 기도하고 싶어지는 곡이에요. 살다가 걱정되고 마음이 불안한 일이 있을 때 나도 모르게 입에서 한숨이 쉬어지잖아요. 첫 곡은 리스트의 ‘탄식’이라는 곡인데요, 한탄하며 한숨을 쉬는 감정을 표현한 곡입니다.

디오니소스> 아니 리스트라면 거칠 것 없이 자기 하고 싶은 대로 다 하고 살았던 사람 아닌가요?

건반 위의 파가니니, 클래식계의 아이돌! 뭐 이런 별칭으로 불리면서 시대를 풍미했던 대가였을 텐데, 그런 사람도 이런 탄식을 하는군요.


뮤즈>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잘났건 못났건 인간은 다 똑같으니까요. 살다가 어느 누군들 한숨 한 번 안 쉬겠어요...

1848년 그의 나이 37살에 리스트가 연주회용 연습곡 시리즈 3곡을 만들었는데, 그중 마지막 곡이 바로 ‘탄식’입니다. 보통 첫 번째 ‘애가’와 두 번째 ‘경쾌하게’라는 곡은 전공자들이 테크닉을 위해서 많이 연습하는 곡이라 연주로는 잘 듣지 못하고요, 세 번째 ‘탄식’이 제일 유명합니다. 리스트 자신이 ‘탄식’이라는 부제를 직접 붙인 건 아니지만, 이게 제목을 알고 나서 들어서 그런지 정말 한숨 쉬는 느낌이 듭니다. 왠지 가 버린 사랑에 대한 아쉬움과 홀로 남은 허전함을 표현한 것처럼도 들려요.


디오니소스> 리스트는 37살에 탄식할 만큼 인생에 큰일이 있었나요?

뮤즈> 잘 아시다시피 리스트는 1811년 헝가리 라이딩이라는 시골에서 태어났지만 얼굴 잘 생겨, 피아노 연주 잘 해, 불어며 독어며 외국어도 잘하고, 입담까지 좋으니 만인의 연인이었죠. 특히나 파리 사교계에서 만난 지적인 미모의 마리 다구 백작 부인과는 두 아이를 낳기까지 하면서 뜨거운 사랑을 합니다. 그렇게 세상 무서울 것도 불안할 것도 없는 사람이었는데, 37살에 마리 백작부인과 이별을 하게 됩니다. 너무 예민한 리스트를 부인이 감당을 못한 거죠. 그러면서 리스트는 인생관이 갑자기 바뀌고 연주자의 삶에서 은퇴를 시작합니다. 20살에 거의 클래식계의 슈퍼스타로 30대 중반까지 전 유럽을 돌아다니며 많은 연주를 하고 살다가 37살부터는 독일 바이마르에 머물면서 작곡에만 전념합니다.


디오니소스> 역시 사랑의 아픔은 작품을 낳는군요.

리스트-탄식 'Un sospiro' (세 개의 연주회용 연습곡 중 3번 /S.144 no.3)

https://youtu.be/zSHwX2O7j2w 피아노 마크 아믈랭



디오니소스> 긴 한숨을 쉬듯 멜로디가 오른손, 왼손 자유롭게 교차되면서 왔다 갔다 하네요.

뮤즈> 왜 우리가 심란한 일 있으면 나도 모르게 입에서 한숨이 나오잖아요. 그러면 한숨 좀 그만 쉬라고 하면서 부정적으로만 생각했는데, 사전을 찾아보니까 한숨이 ‘긴장하였다가 안도할 때 길게 몰아서 내쉬는 숨’을 말하기도 한대요. 음악을 듣다 보면 정말 호흡이 길게 몰아쳐지는 느낌이 듭니다. 양손이 빚어내는 아르페지오, 펼침화음이 멋진 하프 소리처럼 들리기도 하죠?


디오니소스> 설명 듣고 보니 그렇네요. 잘 들었습니다. 자 두 번째 곡은 어떤 곡인가요?

뮤즈> 두 번째 곡 역시 리스트의 작품인데요, ‘위로’입니다. 리스트는 1850년에 위로 시리즈를 6곡 발표하는데, 오늘 들으실 곡은 그중 3번입니다. 6곡 중 이 곡이 가장 유명해요. 리스트가 읽은 프랑스 시인 샤를 생트뵈브의 작품에 영감을 받아 작곡했는데, 여섯 곡이 모두 동시에 연주가 되기도 하지만 3번만 단독으로 연주되는 경우가 훨씬 많습니다. 그리고 원래는 피아노 독주곡이지만 바이얼린으로 편곡되어 연주되는 경우도 많습니다. 멜로디가 좋으면 어느 악기로 연주해도 듣기가 좋죠.


디오니소스> 이 곡은 ‘위로’라는 제목이 있어서인지 설명이 필요 없이도 이해가 될 것 같아요.

뮤즈> 제가 생각하는 음악의 순기능이 바로 그런 건데요, 정말 좋은 건 설명이 필요 없잖아요. 그런 것처럼 위로라는 제목과 잔잔한 멜로디가 이 곡을 대변하는 것 같습니다. 이번에는 곡부터 듣고 이야기 나눌까요?


리스트–위로 Consolation S. 172 No. 3 (여섯 개의 위로 중 3번)

https://youtu.be/705LabZ1U88 피아노 다니엘 바렌보임


디오니소스> 앞에 들은 곡이 한숨짓는 곡이었다면 두 번째 곡은 그 한숨과 탄식을 진심을 다해 위로해 주는 것 같네요. 두 곡이 서로 대화하는 느낌이 드는데요?

뮤즈> 서로 대화한다... 제가 곡을 선택할 때 가장 신경 쓰는 부분이 어떻게 하면 무형의 음악을 유형의 이미지로 떠올릴 수 있게 할까인데, 그렇게 느껴지셨다면 보람이 있네요. 기쁩니다.

리스트는 인생의 한 면은 탕아였을지 몰라도 나머지 한 면은 분명 성자였습니다. 누군가를 이렇게 음악으로 위로할 수 있다는 건, 인간에 대한 사랑이 있기 때문 아닐까요? 원래 사랑이 많은 사람들이 사랑 때문에 겪는 고통과 아픔이 크잖아요. 리스트는 마리 다구 백작부인 이후에도 비트겐슈타인 공작부인, 마리 플레이엘, 올가 코사크 백작 부인까지 수많은 애인이 있었습니다. 코사크 백작 부인은 리스트가 무려 59세일 때 사귄 연인이었다는데, 심각한 연애라기보다는 소울메이트였답니다.

아무튼 젊을 때는 열정과 본능에 충실했다면 인생 말년엔 종교에 귀의하면서 인간 본연의 선에 집중하는 삶을 삽니다. 말년엔 로마에 가서 신앙생활도 하고 종교적인 작품을 굉장히 많이 작곡해요. 아참 그리고 리스트의 작품은 ‘셜’이라는 사람이 따로 정리를 해서 이니셜 S로 분류합니다. 오늘 셜 번호 S.144인 탄식과 셜 번호 S.172인 위로를 동시에 들으셨는데 차분하게 위로가 되셨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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