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가 내게 오다

뱃속에 아이가 있다고요?-제일 처음 들은 클래식 <모차르트 자장가>

by 피아니스트조현영



며칠 째 뱃속이 더부룩하고 피곤하고 괜히 짜증이 난다. 일이 힘들어 그런가 싶어 곧 괜찮아지겠지 하는 마음으로 기다렸는데, 더 이상 안 되겠다. 어느 병원엘 가야 하지? 본능적으로 달력을 봤다. 병원이 아닌 약국부터 가보기로 한다. 테스터를 해보니 두 줄이다. ‘설마! 기다릴 때는 안 오더니!’ 그래도 정확해야 하니 일단 산부인과에 가본다. 동네에 여자 선생님이 있는 병원을 검색했다. 나이가 들어도 산부인과는 무섭고 여전히 남자 선생님은 불편하다. 산부인과라는 게 여자라면 누구나 오가도 되는 합당한 곳이지만, 행여 누가 볼까 봐 조심스럽다. 아줌마씩이나 되면서 별 걱정을 다한다. 잘못된 성교육 탓인가?


오전인데도 산부인과에 사람이 많다. 기다리면서 버릇처럼 커피를 타려다가 멈췄다. ‘혹시 모르잖아?’ 내 이름이 불리자 안으로 들어가서 진료를 봤다. 테스터 결과를 말했더니 초음파를 해보자고 하신다.

“축하해요! 임신입니다!” 의사 선생님이 여자지만 별로 공감하거나 진정으로 축하하는 것 같진 않다. 하긴 날마다 이런 사람을 얼마나 많이 봤겠는가! 그래 의사 선생님이야 그렇다 치고 난, 내 자신의 임신이 축하할 일인가? 좋긴 했지만 그렇다고 뛸 듯이 기쁘진 않았다. 한 달 전부터 독주회에 이런저런 연주를 하면서 얼마나 스트레스를 많이 받았던가? 맥주도 몇 번 마신 것 같고, 몸살이라고 생각해서 감기약도 먹었던 것 같은데... 임신인 줄 모르고 했던 많은 무지의 일들이 떠오르면서 아이에게 이상이 생겼을까 봐 걱정이 됐다.


“저, 선생님... 임신인 줄 모르고 맥주를 좀 마신 것 같은 괜찮을까요?” 은연중에 괜찮을 거라는 말을 기대하며 물었는데, 선생님이 아주 단호하게 말씀하셨다.

“이상이 있을 수 있죠!”

아이고야! 처음부터 엄마 자격 미달인 나를 어찌할꼬! 지금 생각해보니 선생님은 의사로서 아주 합리적으로 의학적으로 이야기한 거지만, 환자의 입장을 이해하거나 성품이 여유로운 사람은 아니었던 것 같다. 때론 진실보다 하얀 거짓말이 사람의 마음을 위로해 준다.

“지금부터 16주 동안은 중요한 기간이니 조심하시고 안정을 취하셔야 합니다.”

마지막 멘트마저도 아주 무뚝뚝하게 이성적으로 내 귓가를 울렸다.


보통의 기준으로 볼 때 노산에 가까운 나는 은근 아이를 기다리면서도 걱정이 많았다. 행여 내 몸이 엄마가 되기에 부적합한 형태는 아닌지, 아이를 잘 품을 수 있을지. 산부인과를 나오자마자 남편한테 전화를 했다. “여보, 나 임신이야!” 수화기 건너 들려오는 목소리는 기뻐하는 목소리지만 끝에 떨림이 느껴졌다. 아마 남편도 아빠가 된다는 사실이 기쁘면서도 두려웠을 거다. 병원에서 집으로 걸어오는 내내 기분이 이상했다. ‘이게 상식 적으로라면 뛸 듯이 기쁘고 감사할 일인데, 왜 난 안 그렇지? 내가 이상한가? 어떤 감정이지?’ 땅 보며 걸으면서 골똘히 생각하다가 갑자기 배를 만졌다. 뱃속에 아기가 있다고? 그럼 내가 느낀 이런 부정적인 감정들도 함께 느끼고 있겠네? 내가 불안해하는 것도 다 알고 있다는 거지? 앞으로 16주 동안 예정된 일도 많은데, 몸 관리를 잘할 수 있을까?


하나마나한 고민들만 하면서 집에 도착했다. 병원에서 집까지 30분도 안 걸리는데, 느낌은 한 3시간 걸은 것 같다. 사방이 조용해지자 한 사람씩 전화를 걸었다. 친정부모님, 시어머니 마지막으로는 나보다 먼저 결혼한 동생한테 전화를 했다. 동생은 한 살 차이라서 거의 친구 같다. 본인이 의사인 데다 이미 임신의 과정을 두 번이나 거쳐서인지 역시나 이성적이다.

“다른 생각하지 말고 맛있는 거 먹고, 편하게 자고 음악이나 들어! 내일 임신 출산 책 택배로 보내줄게.

바빠서 끊는다.!”

뚜뚜뚜뚜.... 동생과 통화를 하고 나니 정신이 조금 든다. 그래, 무슨 큰일 겪은 사람처럼 어리바리하게 있니? 맛있는 거 먹고 음악이나 듣자.


인생의 선배가 있다는 건 좋은 일이다. 친정동생의 말이 다 맞다. 걱정할 일도 두려워할 일도 아닌데 뭐... 정신 차리고 다시 나가서 문구사에 갔다. 평상시 애용하는 느낌 좋은 펜과 두꺼운 노트를 샀다. 오늘부터 내 마음의 이야기를 솔직하게 털어놓을 일기장이다. 한 손에는 갓 구운 고소한 빵도 들려있다. 집에 와서 뜨거운 차를 끓여 책상에 앉았다. 물이 끓는 동안 음악을 골랐다. 자동 반사적으로 모차르트의 자장가를 오디오에 걸었다. 그러고는 신성한 의식을 치르려는 사제처럼 일기장의 첫 장을 폈다. 그렇게 아이에게 첫인사를 했다.

“반갑다! 아가야! 난 네 엄마라고 해. 지금부터 잘 지내보자.”



아가!

그 단어를 쓰면서 갑자기 모차르트를 들으니 내 마음도 편해지면서 이유 없이 눈물이 흘렀다. 모차르트는 여자도 아닌데, 어쩜 이렇게 엄마처럼 따뜻한 멜로디를 생각해 냈을까? 모차르트는 1756년 오스트리아에서 태어나 1791년 35살이라는 나이로 일찍 세상을 떴다. 생전에 626개가 넘는 작품을 작곡했는데, 아마 작품번호가 없는 것까지 하면 거의 700여 곡에 이를 것이다. 사실 이 곡은 모차르트의 작품으로 알려져 있지만, 원래는 플리스라는 작곡가의 작품이다. 하지만 여전히 모차르트의 자장가로 불린다.


초등학교 때 모차르트, 슈베르트, 브람스 자장가의 악보를 보고 누구의 작품인지를 맞추는 시험 문제는 적잖이 헷갈렸다. 하지만 세 곡 모두 다 듣기 좋은 자장가인 것은 틀림없다. 이 곡은 지금 들어도 아이로 돌아가고 싶은 생각을 불러일으킨다. 마음이 불안할 때 이 곡을 들으면 눈이 스르르 감기며 잠이 왔다. 모차르트는 엄마가 일찍 세상을 떠서 엄마를 많이 그리워했다. 유난히 가족을 사랑했던 그는 엄마가 들려주는 노래를 자신의 아이들에게도 들려주고 싶었을 거다. 모차르트는 4남 2녀 모두 6명의 자식을 뒀는데, 다 죽고 둘째와 넷째 아들만 살아남았다. 잘츠부르크에 있는 모차르트의 생가에 가보면 두 아들의 얼굴을 볼 수 있다. 모차르트는 그가 받은 사랑을 그 아이들에도 듬뿍 나눠줬을 것이다. 모차르트 아버지도 모차르트를 그리 사랑했으니.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음악은 엄마가 불러주는 노래다. 이젠 내가 그 노래를 부를 차례다. 요즘은 피아노나 바이얼린 독주곡으로도 많이 연주되지만, 뭐니 뭐니 해도 가사 붙은 노래가 제일 좋다. 뱃속에 있는 아이에게 처음 들려주는 노래다.


잘 자라 우리 아가 앞뜰과 뒷동산에

새들도 아가양도 다들 자는데

달님은 영창으로

은구슬 금구슬을 보내는 이 한밤

잘 자라 우리 아가 잘 자거라


https://youtu.be/vXRzq_8bJ3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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