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마음 나도 몰라 –임신 8주

<모차르트 피아노 소나타 11번 K.331 1악장>

by 피아니스트조현영


사람 마음이 참 간사하다. 산부인과를 다녀오더니 제대로 임산부 행세다. 겉으로는 임신인 줄도 모르겠고, 달라진 게 하나도 없는 일상인데 괜스레 오버해서 유난을 떤다. 누가? 내가 말이다. 세상에 임산부가 나 혼자인 것 마냥 좋았다가 심각했다가. 이건 뭐야? 조울증이야? 하루에도 열두 번씩 기분이 바뀐다. 대체 내 기분의 정체성이란 걸 찾아볼 수가 없구나.


일기장을 사들고 갓 구운 빵을 먹으면서 반갑다고 첫인사를 했던 나는 어디로? 그 설렘과 평온함은 손가락 사이로 빠지는 연기 마냥 휙 사라졌다. 임신이지만 가족이 아닌 사람들에게 대놓고 알리기엔 조심스러웠기에, 실상 내가 임신한 걸 아는 타인은 아무도 없다. 그러니 커피 중독자 수준인 내가 커피를 마시지 않는 것도 이상하고, 예민하게 걸음을 조심하는 것도 이상했겠지. 그 좋아하는 하이힐 그것도 최소 7센티 이상은 신고 다녔던 여자는 사라지고, 당장 2센티 이하의 편한 구두로 바꿔 신었다. 누구도 강요하지 않았지만 하이힐을 포기하니 기분이 언짢다. 당장에 옷 입는 스타일도 신발 하나로 확 바뀌었다. 식욕은 없어지고 입덧이 시작됐다. 운전을 하다가 조금만 급정거를 해도 배부터 만졌다. 아이는 괜찮은 지를 살핀다. 어찌 보면 모성애 충만한 엄마고, 어찌 보면 이기적인 여자다. 뭐가 진짜 내 모습인지. 예전에 조울증이라고 흉봤던 익명의 타인들에게 용서를 구한다. 그들도 처음부터 성격이 그러진 않았으리라.


정확히 내 몸이 어떻게 변하고 있는지 표현하긴 힘들지만 일단 헛구역질 전문용어로 입덧이라는 걸 시작했다. 영화나 드라마에서 보면 보통 헛구역질을 하니까 임신인가 의심돼서 병원을 간다. 하지만 사실은 임신인 걸 알고 나면 입덧이 심해진다. 게다가 내 뇌는 상당히 예민해서 반응이 아주 빠르다. 하고 싶지 않은 일. 보고 싶지 않은 사람을 만나야 하면 바로 뇌가 몸을 변화시킨다. 머리가 아프고, 배가 아프고, 얼굴에 ‘나, 지금 불편합니다!’가 바로 써지는 사람이다. 어때 학교 가기 싫거나 하기 싫은 일 하려면 배가 아픈 거랑 같은 이치다. 그래서 현실의 삶이 적잖이 불편한 1인인데, 사람은 안 변하더라. 당최 아무 냄새도 못 맡겠다. 워낙 코가 예민해서 이상한 냄새를 잘 못 맡는데, 입덧까지 겹치니 밥, 김치는 물론 뭔가를 보기만 해도 속이 더부룩하다. 그 좋아하는 커피 향기도 가끔 이상했다.


처음 간 병원을 계속 다니긴 어려울 것 같아서 정기적으로 다닐 산부인과를 결정했다. 집 근처 다른 병원을 가려했더니, 집안에 있는 의사께서 한 말씀하신다.

“누나는 노산 위험이 있으니까 처음부터 그냥 대학병원 다녀!”

집에 의사가 너무 많아도 탈이다. 아는 게 너무 많다 보니 겁을 많이 준다. 난 또 은근 소심하고 겁쟁이라 동생 말을 듣고 대학병원에 가서 등록을 했다. 산모수첩 안에는 때 되면 해야 할 일들이 체크되어 있었다.

산모수첩, 임신 캘린더, 그 밖에 필요한 각종 정보들을 한 아름 받아왔다.

여기저기 뒤져보니 지금 내 시기에는 이렇게 쓰여있다.


임신 초기로 태아는 내부 주요 기관이 형성되기 시작한다. 엄마는 식욕이 없어지고 입덧이 일어나기 시작한다. 약물 복용 등은 산부인과 전문의 지시에 따르고, 장거리 운전이나 여행은 피한다. 남편은 입덧을 하는 아내를 위해 요리를 해주거나, 아내의 기분 전환을 위해 집안 분위기를 바꾼다.

식욕이 없어지고 입덧은 시작됐고, 약물 복용은 당연히 안 하고, 장거리 운전은 아니지만 일주일에 한 번씩 지방 강의를 가야 하니 이건 예외군. 어라? 남편은 아내를 위해 요리를 하거나 기분 전환을 위해 애쓴다고? 이 사항도 부적격! 남편은 전형적인 대한민국 30대 남성이라 별 보고 집에 오고 일어나자마자 출근하시는데 무슨 요리?

혼자서 구시렁 궁시렁 하다가 책자를 덮었다. 기분이 이상하니 음악이나 들어야겠다. 지금 이 상황, 내 마음을 달래 줄 음악은 뭘까? 그래 모차르트가 적격이다. 하지만 이번엔 자장가 말고 피아노 소나타다.


모차르트는 18개 아니 바이얼린 소나타를 편곡한 것까지 합치면 19개의 피아노 소나타를 작곡했다. 사실 음악을 듣는 데 있어 그의 피아노 소나타가 18개인지 19인지는 그리 중요한 일은 아니다. 음악 전공자가 아닌 이상에야. 아무튼 그 18개 중에서 가장 유명한 소나타가 바로 11번이다. 3악장 ‘터키풍으로’ 일명 우리가 ‘터키 행진곡’이라고 알고 있는 곡 덕택이다. 하지만 오늘 내가 듣고 싶은 곡은 1악장이다. 이 곡은 다른 소나타와는 달리 1악장이 변주곡 형식이다.


클래식을 들을 때 어려운 것 중 하나가 곡목을 기억하는 것이다. 모차르트는 작품을 발표한 순서대로 ‘K’라는 이니셜을 붙인 번호로 표기한다. 예를 들면 이 소나타는 전체 작품 중에서 331번째 발표되었기에 K.331으로 쓴다. ‘K’는 ‘쾨헬(Koechel)’이라는 식물학자가 정리를 한 것이라 그의 이름 첫 이니셜을 붙여 그렇게 표기한다. 피아노 소나타라는 장르에서는 18번째 곡이지만 전체 그의 작품 중에서는 331번째라는 뜻이다. 소나타는 장르명이고 보통 1,2,3 악장 또는 4악장으로 구성돼 있는데, 첫 악장은 소나타 형식이라는 것으로 구성되어 있다. 그런데 이 11번은 예외적으로 변주곡 형식으로 작곡되었다. 쉽게 얘기하자면 하나의 주제를 가지고 여러 개의 형태로 변화시키는 거다.


내가 3악장이 아닌 1악장을 선택한 이유다. 엄마가 된 것이 기쁜 건 사실이다. 그런데 그 한 가지 마음이 이리저리 변한다. 절대 주제를 벗어나진 않는 변주곡처럼 내 마음은 엄마가 돼서 기쁘다는 한 가지 주제에서 가끔 우울해졌다가 다시 마음이 편안했다가 갑자기 조급해졌다가 한다. 여러 가지 모습이지만 다 하나의 내 마음이다. 오늘은 아이에게 어떤 내 마음이 전해졌을까?

<모차르트 아들 칼과 프란츠>

모차르트가 이 소나타를 작곡한 것은 1783년 경이다. 그의 나이 27살이었다. 27살 남자의 마음도 이랬다 저랬다 했나 보다. 전체 6개의 변주가 있는데, 처음엔 조용하게 가장조의 주제가 시작되고 변화한다. 대체적으로 밝고 경쾌한 가장조의 음조를 이어가지만 중간에 3번째의 변주는 가단조로 바뀌면서 잠시 음울해진다. 그랬다가 마지막 6번째 변주엔 경쾌하고 밝은 결론을 이끈다. 이 곡은 모두 3개 악장으로 이뤄졌는데, 보통 연주시간이 약 25분 정도이다. 1악장만 들어도 좋고, 3악장만 들어도 좋고, 다 들으면 제일 좋다.

유튜브 검색어 mozart piano sonata k 331 movement 1,

모차르트 피아노 소나타 11번 1악장

https://youtu.be/FZ1mj9IaczQ 피아노- 다니엘 바렌보임 모차르트 피아노 소나타 11번 전악장

https://youtu.be/AHS33DHJQFU 피아노- 마리아 조앙 피레스 /모차르트 피아노 소나타 11번 전악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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