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흐 커피 칸타타 BWV. 211
임신 12주 째다. 슬슬 몸에 변화가 나타난다. 입덧이 점점 더 심해지고, 앉아있는 게 힘들다. 직업이 직업인지라 앉아서 연습하고, 앉아서 레슨 하고, 앉아서 고속버스 타고 지방 강의 가고. 대부분을 앉아서 생활한다. 심하게 몸 쓰는 것도 아니고 앉아서 돈 버는데 뭐가 힘드냐고 하겠지만, 사실 앉아 있는 것도 서 있는 것만큼 힘들다. 고작해야 아가는 이제 20g인데, 뭔가 묵직한 게 뱃속에 있는 것 같다.
얼마 전엔 학술대회 때문에 10시간 정도 앉아만 있었더니 허리가 끊어질 것 같았다. 같이 있는 동료 선생님들의 양해를 구하고, 무대 뒤로 돌아다니긴 했지만 일 분 일 분이 너무 길었다. 딸은 임신할 때 엄마를 많이 닮는다는데, 냄새가 역겨운 건 많이 닮았다. 우리 엄마도 선생님으로 근무하셨는데, 시골로 날마다 통근하시면서 나를 품으셨다. 체구도 엄청 작고 마르셔서 힘들었는데, 가장 괴로운 건 시골버스에 같이 탑승한 닭이며 오리 녀석들이었단다. 시골버스에는 이것저것을 싣고 장터에 가는 승객이 많다. 닭과 오리는 승객들에겐 일용할 돈이 되겠지만, 엄마에겐 고역이었다. 심지어 힘이 펄펄 넘치는 닭들은 버스 안에서 날개를 파닥거리며 날아다녔단다. 헉! 상상만 해도 입덧이 올라온다. 지금 난 닭, 오리랑은 비교도 안 되는 밥, 김치 냄새도 역겨운데, 정말 우리 엄마 장하다.
냄새가 역겨운 것도 힘들지만 냄새가 미치도록 유혹하는 것도 참기 힘들다. 바로 커피! 모두들 주야장천 마시는 커피를 입에 한 모금도 델 수가 없으니 이건 완전히 그림의 떡이다. 원래 못 마신다고 하면 더 먹고 싶지 않는가! 친구들은 커피 한 잔 정도는 괜찮다고, 마시고 싶을 때 억지로 참으면 그게 더 안 좋다고 마시라고 한다. 그러나 내가 못 마시는 이유는 한 잔만 마시고 멈출 자신이 없기 때문이다. 아무 생각 없이 마시면 하루에 큰 머그잔으로 10잔도 마셨다. 이런 게 바로 중독인가? 금연을 시작한 남자처럼 내 마음에는 금단 현상이 일어났다. 괜히 짜증 나고, 커피 마시는 사람들만 눈에 보이고. 양손으로 쥐고 있는 커피잔이 무슨 황금 잔처럼 보이더라! 뭣 눈엔 뭐만 보인다더니, 으악! 부럽다!
남편이 우울해하는 나를 위해 바람 쐬러 가자고 한다. 못 이기는 척하고 따라나섰다. 그러데 막상 나가니 산책 끝에 갈 곳이라곤 집 앞 카페뿐이다. 카페 가면 커피 마시고 싶을 텐데 괜찮겠냐는 남편의 물음에 난 괜찮다고 거짓말을 했다. 절대 괜찮지 않을 거면서. 나는 우유를 시켰고, 남편은 더블샷 에스프레소를 시켰다. 카페에서 커피가 아닌 다른 음료를 시켜 본 건 처음이다. 내 앞에 앉아서 맛있게 향을 음미하며 먹는 남편이 갑자기 얄미웠다. 세상에 가장 비굴한 게 남 먹고 있는 거 쳐다보는 거라는데, 지금 내가 딱 그 짝이다. 커피 한 모금만 주세요....
내가 커피를 그렇게 자제한 데는 한 가지 이유가 더 있다. 얼마 전에 나랑 비슷한 시기에 임신을 한 친구가 유산을 했다. 서로 축하하며 군대 동기보다 더 끈끈한 임신 동지라고 좋아했는데. 갑자기 들은 슬픈 소식에 나도 은근 신경이 쓰였다. 왜 유산이 됐는지는 정확히 모르지만, 친구가 무덤덤하게 자기가 카페인 중독이라 그런가 싶다고 말을 했다. 말도 안 되는 소리라고 했지만, 그렇게 따지면 나도 같은 입장이라 친구를 보며 남일 같지 않았다. 엄마가 되고 나니 아이가 잘못되면 모든 게 내 탓이란 생각이 든다. 그래서 끊임없이 나의 욕구와 아이를 위한 행동 사이에서 갈등을 한다. 임신 12주인 지금 유산될 가능성이 가장 높다. 그리고 다음 달이면 기형아 검사를 한다. 그래서 난 남들에겐 별것 아닌 커피와 치열한 전쟁을 치르고 있다. 나처럼 커피를 마시고 싶어 안달하는 여인이 350년 전에도 있었다. 이 요망한 커피 때문에 아버지랑 큰 싸움을 한 딸이다. 바로 음악의 아버지라고 불리는 요한 세바스티안 바흐의 ‘커피 칸타타’라는 곡이다.
350년 전 바흐도 카페에서 진한 커피를 마시며 커피에 관한 곡을 썼다. 참고로 바흐는 엄청난 커피 애음가다. 근엄하고 진지하기만 하는 그에게도 익살스러운 부분이 있었나 보다. 이 곡은 18세기 커피하우스에서 연주된 커피를 찬양하는 음악이다.
본래 ‘칸타타(Cantata)’라는 음악은 이탈리아어의 ‘칸타레(cantare, 노래하다)’에서 유래했다. 음악 용어의 대부분은 이탈리아 말이다. 주변에서 자주 쓰는 ‘피아노’, ‘포르테’, 유명한 캔커피 이름 ‘칸타타’가 그렇다. 칸타타는 대개 종교적인 내용의 ‘교회 칸타타’와 소규모 오페라고 하는 ‘실내 칸타타’로 그 종류를 나눌 수 있는데, 교회 칸타타가 진중한데 반해 실내 칸타타는 드라마 같고 기교적인 것이 특징이다. 바흐의 커피 칸타타는 전형적인 실내 칸타타 작품이다. 모두 10곡으로 구성된 커피 칸타타는 풍자와 익살스러운 내용이 가득하다. 커피가 독일에 들어온 것은 17세기경인데 일찌감치 바흐는 커피와 사랑에 빠졌다. 이 「커피 칸타타」는 프리드리히 헨리가 쓴 시에 곡을 붙인 것인데 바흐 나이 47살인 1732년경에 쓴 것이다. 커피를 끊으라고 강요하는 아버지와 딸의 실랑이가 주된 내용이다. 예나 지금이나 하지 말라고 하는 부모님과 하겠다는 자식의 실랑이는 변함이 없다.
아리아(Aria)란 오페라에서 오케스트라의 반주가 있는 서정적 독창곡을 말하는데, 이 칸타타에서는 딸의 아리아 “커피는 어쩜 그렇게 맛있을까”가 유명하다. 처음부터 끝까지 ‘커피! 커피!’를 반복하며 외치죠. 보통은 바이얼린 같은 현악기나 쳄발로 같은 건반악기가 같이 연주되는데, 유독 이 아리아는 플루트가 분위기를 돋우는 중요한 역할을 한다. 익살스러운 해설자와 감정 조절을 잘 못하고 버럭 하는 아버지 그리고 재치 있고 영리한 딸. 이렇게 세 명의 독창자가 주고받는 만담 같은 칸타타이다. 우리나라 식으로 하면 마당놀이다. 판소리보다는 가볍고 재미있는 풍자가 가득한 내용이다. 공간은 달라도 사람들이 느끼는 감정은 일맥상통하다는 것을 느끼게 된다.
산책을 못하게 하고 스커트도 안 사준다고 하고, 심지어는 약혼자랑 결혼도 못하게 하겠다고 협박을 한다. 그렇게 커피 마시는 것을 반대하지만 결국 딸은 아버지를 이긴다. 아빠의 바람대로 커피를 끊겠다고 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안심시키려는 하얀 거짓말이다. 뒤늦게 딸의 거짓말을 알아차리지만 못 이기는 척하며 아버지는 딸의 청을 들어준다. 너무 많이는 마시지 말라며.
예나 지금이나 자식을 낳아 기른다는 건 많은 희생과 인내가 필요하다. 귓가에 잔소리하는 아버지와 그래도 커피는 꼭 마셔야겠다며 떼쓰는 딸의 목소리가 행복하게 울려 퍼진다.
유투브 검색어 바흐 커피 칸타타 /Bach ‘Coffee cantata’ BWV. 211
https://youtu.be/H5Ocydot-vA 지휘 니콜라스 하농쿠르
#피아니스트조현영 #바흐 #커피칸타타 #아버지 #책쓰는피아니스트 #조현영의피아노토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