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토벤 교향곡 9번 "합창"op.125
이젠 누가 봐도 임산부다. 배가 ET에서 바구니 하나 엎은 정도로 부풀었다.
5개월인데 생각보다 배가 커서, 병원에서는 몸무게를 조절하라고 당부를 한다. 거울을 보며 혼잣말을 했다.
“이젠 ET가 아니라 피오나 공주네. 배 뿐만 아니라 팔이며 다리까지 살이 다 올랐어!”
난 한숨 쉬며 말하는데, 옆에서 남편은 웃으며 대답한다.
“한숨 쉬지 마. 피오나 공주가 낮에는 예쁘잖아! 당신 괜찮아!”
이게 칭찬이야 욕이야! 나의 남편 씨는 사람이 둔한가 싶다가도 상당히 영리한 사람이라 말을 잘 알아들어야 한다. 그래 임산부인데 뭘 기대하는 거야! 다 칭찬이겠지, 내 한 몸 망가져서 건강하고 예쁜 아기가 태어난다면 더 이상 뭘 바라리.
그나저나 나도 임신 20주나 됐으니 본격적으로 태교를 해야할 것 같다. 뭐, 따로 특별한 태교를 해야 한다고 생각하진 않는다. 하지만 그래도 명색이 피아니스트인데, 우아해 보이는 클래식 태교쯤은 해야 하지 않나 하는 나름의 사명감은 느낀다. 내가 피아니스트인걸 아는 주변의 비전공자들은 자주 묻는다.
“어떻게 태교 하세요? 태교 음악은 무조건 클래식 들어야 하나요?
태교에는 모차르트가 좋아요, 베토벤이 좋아요?
하루에 얼마나 들어야 해요?”
생각보다 임산부들이 많이 물어보는 질문이다. 세상의 모든 질문엔 절대적인 답은 없다는 게 내 지론인지라, 위의 모든 질문에는 지극히 개인적인 생각만을 말한다. 일단 음악을 편식하진 않는다. 물론 나의 경우엔 클래식 선율이 듣기에 더 편하고 좋으니 자연히 클래식을 많이 듣는 편이다. 하지만 여기서 중요한 건 모든 음악가들이 태교 음악으로 클래식을 듣는 것만은 아니라는 거다. 요리사가 집에서 요리하기 싫은 마음처럼, 때론 내 귀도 클래식인 아닌 내 귀에 캔디 같은 음악이 듣고 싶다. 맨날 먹는 집밥 말고 이국적이고 희한한 음식이 먹고 싶은 것처럼 말이다. 실제로 바이얼리니스트인 내 친구는 태교 한답시고 맨날 탱고나 보사노바 같은 춤곡만 들었다. 피오나 공주 몸으로 엉덩이를 실룩거리면서 좋다고 듣던 그녀다. 그러면서 나한테도 CD 하나를 선물해줬다. 간혹 친구의 CD를 듣다 보면 은근히 기분이 좋아지면서 정말 실룩거려지긴 했다. 마치 내가 여인의 향기에 나오는 알 파치노의 상대 파트너가 된 듯 기분이 좋아졌다. 물론 그녀가 입고 있는 홀터넥의 검은 드레스는 지금 이 몸매로는 언감생심이지만.
아무튼 사람마다 취향이 다르니 꼭 클래식만을 고집하진 않는다고 답한다. 그리고 모차르트와 베토벤은 짜장면과 짬뽕 같은 관계다. 아니면 볶음밥과 짬뽕 국물 그것도 아니면 볶음밥과 짜장국 같은 관계다. 둘 중 하나만을 딱 이거라고 고르기엔 상당히 어려울 결정이다. 그래서 난 꼭 한 사람의 작품만 듣기 보단 골고루 자기가 좋아하는 곡을 들으라고 한다. 실제로 어느 한 작곡가만 꽂혀서 들으면 생각이나 정서가 그 작곡가를 닮아가는 경향이 생긴다. 난 다양한 모습을 지닌 사람을 좋아해서인지 딱 한 작곡가는 추천하고 싶지 않다. 예를 들면 꼭 모차르트만 듣는 게 좋은 건 아니라는 거다. 그리고 하루에 얼마나 들어요에 대한 답은 생각보다 명확하다.
“듣고 싶은 만큼 들으세요!”
어려서부터 정확한 답만 요구하는 사회에서 살아서인지 정량이라는 게 꼭 답인 나라다.
우리 조국 대한민국 말이다. 원하는 만큼 보다 정해진 만큼이 더 편한. 듣다 그만 듣고 싶을 때 음악 끄면 된다. 사람마다 음악에 집중하는 시간은 각각 다르다. 나는 1시간짜리 베토벤 교향곡을 들어도 심심하지 않지만, 누군가는 2분짜리 음악도 듣기가 힘들다. 자고로 임산부는 내 몸과 마음이 편안해야 하니, 나하고 싶은 대로 하는 게 정답이다. 적어도 난 그렇게 생각한다.
그런 의미에서 나의 오늘 클래식 태교는 베토벤 교향곡 9번으로 정한다. 이거야말로 우아한 피아니스트다운 태교일지도 모른다. 왜냐고? 곡 하나가 70분 정도 걸리는 음악이니까. 이 곡 앉아서 끝까지 듣는 게 생각보다 쉽진 않다. 하지만 알고 보면 이 곡은 우리나라 사람들이 매우 좋아하는 곡이다.
베토벤 교향곡 9번! 제목만 들어도 가슴 떨리게 좋아하는 매니아들이 있다. 일명 베토벤 덕후들이다. 나도 그중에 한 사람이다. 베토벤이라는 작곡가는 클래식의 ‘클’ 자도 모르는 사람이라도 이름은 다 안다. 간혹 베트맨과 베토벤 발음을 헷갈리는 사람도 있긴 하지만, 알긴 안다. 이 교향곡 9번은 베토벤 선생의 역작 중의 역작이다. 영화에서도 자주 나오는 음악이고 4악장 멜로디는 광고나 만화 심지어는 코메디 프로의 효과음악으로도 많이 쓰인다. 참고로 한국처럼 대중매체에 클래식이 많이 흐르는 나라도 없다.
베토벤은 교향곡을 총 9곡 작곡했다. 세상의 모든 작곡가들은 그의 9개 교향곡을 통해서 작곡을 배운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데, 연주자나 지휘자들에게도 서양음악의 교과서라고 할 수 있다. 교향곡 9번은 전곡이 4악장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가장 유명한 4악장만 해도 평균 25분 정도이다. 길이뿐만 아니라 음악적으로도 굉장히 독창적인 특징이 있다. 바로 기악 음악 사이에 성악이 쓰였다는 거다. 그래서 교향곡이라고 듣는데 중간에 솔로 성악가와 합창단이 등장한다. 실제로 무대에서 들으면 손끝에서 발끝까지 소름이 짝 끼치면서 전율이 밀려오는 곡이다. 행여 전체 곡을 듣기가 힘들다면 4악장만 들어봐도 된다. 앞에 나온 1악장부터 3악장까지의 주요 특징들이 반복해서 다 들린다. 교향곡 ‘합창’은 해마다 12월에 전 세계 공연장에서 가장 많이 울려 퍼지는 곡인데, 이곡 들으면서 새해를 카운트 다운하는 행사가 많이 있다.
오늘의 클래식 태교 음악으로 베토벤 합창 교향곡을 선택한 이유는 베토벤이란 작곡가의 인격도 한몫하지만, 이 음악이 흐른 영화 때문이기도 하다. 바로 고인이 된 배우 로빈 윌리암스가 키팅 선생님으로 나오는 영화 ‘죽은 시인의 사회’다. 이 영화는 오직 출세와 명예만을 위해 달려가는 학생들의 모습을 안타까워하는 키팅 선생님과 그 선생님을 ‘캡틴’이라고 부르며 존경하고 따르는 학생들의 모습을 다룬 영화다. 씁쓸하지만 미국이나 한국이나 최상위 교육 분위기는 비슷한 것 같다. 학교의 분위기와는 상반되는 철학을 가진 키팅 선생님은 왜 우리가 시를 읽고 사랑해야 하며, 어떤 인생을 살아야 하는지 강하게 설득한다. 그런 키팅 선생님이랑 학생들이 교실이 아닌 운동장에서 공부 대신 신나게 축구하는 장면에 이 위대한 음악 ‘환희의 송가’가 흐르다. 인류의 자유와 사랑 그리고 행복에 관한 환희를 노래하는 이 장면이 학생들이 공부의 억압에서 벗어나 자유롭게 축구하며 행복해 하는 모습과 일맥상통하다. 사실 베토벤이 이 음악을 작곡했을 때는 귀가 거의 들리지 않아서 정말 ‘감’으로 썼다. 그래서 더욱더 청각 장애라는 그 굴레를 딛고 인류애를 노래했다는 게 엄청난 감동을 주는 거다. 가장 유명한 4악장은 독일의 대문호 프리드리히 실러의 시를 가사로 해서 만든 곡이다.
“의학·법률·경제·기술 따위는 삶을 유지하는 데 필요하지만
시와 아름다움, 낭만과 사랑은 삶의 목적이다.”
라고 말했던 키팅 선생님의 말이 굉장히 기억에 남는다. 난 뱃속의 아이가 사람을 사랑하는 사람으로 살아가길 하는 마음에서 이 음악을 듣고 또 듣는다.
결국 모든 건 사랑이다.
유투브 검색어- 베토벤 환희의 송가/ 베토벤 교향곡 9번 ‘합창’
Beethoven Symphony No. 9 "Choral“ op.125
https://youtu.be/sJQ32q2k8Uo 지휘 다니엘 바렌보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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