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흐- 사냥 칸타타 중 '양들은 한가로이 풀을 뜯고'
난 내가 이렇게 잠이 많은 사람인지 미처 몰랐다. 자도 자도 잠이 온다. 어디서든 앉기만 하면 잔다. 예전에 고등학교 다닐 때 학교만 오면 맨날 자는 친구가 있었다. 하루는 그렇게 잠만 자는 친구가 신기해서 “넌 집에서 잠 안 자? 왜 이렇게 졸아?” 그랬더니 대답이 명언이다.
“집에서도 자지. 그래도 학교에 오면 또 잠이 와. 원래 잠이라는 게 잘수록 더 자고 싶거든!”
허허. 워낙 잠이 없는 나로서는 도무지 이해가 안 됐다. 그러나! 지금은 다 이해가 된다. 역시 사람은 자기가 경험을 해봐야 백 퍼센트 공감한다. 글을 쓰는 지금도 잠이 온다.
잠! 워낙에도 잠이 없었지만 너무 잠을 못 자서 괴로운 시간들이 있었다. 독일에서 공부할 때 심각한 불면증에 시달렸다. 몸은 너무 피곤한데, 머리는 멀쩡하고 그렇다고 수면제를 먹기엔 겁이 났다. 책도 읽어보고, 티비도 보고, 온갖 다른 일에 신경을 써 보며 자연스럽게 잠을 청해보려 했으나 말짱 도루묵이었다. 그래서 그 누구보다도 잠을 못 자는 사람들의 마음이 이해가 됐고, 그 후부턴 잠을 잘 잔다는 건 참 행복한 일이라는 걸 깨달았다. 잠을 잘 자는 건 분명 행복한 일인데, 너무 많이 자는 건 좀 문제가 다르다. 난 왜 이렇게 잠이 올까? 다른 임산부들도 그런가? 나보다 조금 빨리 임신한 내 친구는 더 배부르면 잠도 잘 못 자니 지금 많이 자 두라며 격려를 한다. 뱃속의 아이가 성격이 좋은 걸까? 엄마 잘 때는 격한 태동도 안 하고 조용하다. 아마 이 녀석도 자나보다.
배 위에 손을 얹고 잠을 청하면 아이의 심장소리가 느껴지는 것 같다. 더 정확히 표현하자면 아이를 다독거리며 자는 기분이다. 실제로 뱃속에 있는 아기도 내 손을 이불 삼아 덮고 있다. 난 아이가 세상에 나온 뒤에도 한동안 가슴 위에 올려놓고 재우려 한다. 아주 크기 전까진 캥거루 케어 할 거다.
‘캥거루 케어’
여러 책을 통해서 들어는 봤지만 아직까지 직접 해 본 경험은 없다. 그러니까 캥거루 케어란 엄마 가슴에 아이의 가슴을 대고 등을 쓰다듬으며 하는 신체 접촉을 말한다. 이렇게 해주면 아이와의 교감도 잘 되고 애착형성에도 도움이 된다는 원리다. 특히 미숙아들에게 효과가 좋아서, 이 케어를 받으면 뇌 발달에도 영향을 미치고 몸무게도 증가한다고 한다. 어릴 때 바쁘고 몸이 말랐던 엄마에게서는 기대하기 힘들었던 부분이다. 마른 엄마가 우량아로 태어난 날 가슴에 올려 재우는 건, 숨을 못 쉴 만큼 힘들게 하는 거였기에. 하지만 난 엄마보다 건강하고 몸집이 크니 캥거루 케어 자신있다. 자고로 아이들은 엄마랑 살을 붙이고 많이 자야한다. 누구든 자기를 부드러운 손길로 많이 만져주면 기분이 좋아진다. ‘엄마 손은 약손’의 효과가 어찌 보면 바로 캥거루 케어가 아닐까?
난 아이가 마음이 여유롭고 정신이 건강했으면 좋겠다. 물론 세상의 모든 엄마들이 그렇게 되길 바란다. 요즘처럼 끝도 없는 경쟁과 스트레스 받는 환경에서 아이가 잘 크려면 마음이 여유롭고 자기방어력이 있어야 한다. 자존감이 별건가? 어릴 때부터 사랑 받으며 크고 마음이 여유로우면 자연스럽게 자신을 소중하게 여기며 사랑한다. 그런 관계 형성의 시작이 바로 부모다. 뱃속의 아이를 품으면서 잠도 잘 자고, 한동안 불안했던 마음도 사그라졌다. 암만해도 아이가 나보다 마음이 훨씬 여유로운 것 같다. 특별히 날 귀찮게 하진 않으니. 나도 잘 자고 아이도 잘 잔다. 이보다 더 좋을 수가 없다. 오늘은 그런 아이와 함께 바흐의 음악을 들어야겠다.
서양음악의 아버지라고 알려진 요한 세바스티안 바흐는 커피 칸타타를 이야기하면서 소개한 적이 있다. 바로 그 바흐가 작곡한 세속 칸타타 중에 ‘사냥 칸타타’가 있다. 대부분의 칸타타가 종교적인 내용인 것에 비해, 커피 칸타타와 사냥 칸타타는 훨씬 가벼운 내용이다. 멜로디도 듣기 편하다. 바흐의 ‘세속 칸타타’는 재미있는 작은 오페라 같다. 익살스러운 스토리가 있고, 레시타티보(내용을 말로 읊조리는 부분)와 독창 아리아, 이중창·삼중창, 합창이 나오니 오페라와 별로 다를 게 없다. 연주도 교회보다는 귀족들의 개인 파티나 교수들의 연주회에서 많이 행해졌다.
사냥 칸타타는 사냥을 좋아하는 작센(Sachsen, 독일 동부지방의 라이프치히, 바이마르, 드레스덴 지역)의 영주에게 선물하려고 작곡한 곡이다. 그중에서 가장 유명한 곡이 바로 ‘양들은 한가로이 풀을 뜯고’라는 곡이다. 사냥 문화가 보편적이지 않는 우리 입장에선 이런 노래가 낯설다. 하지만 노래의 내용이나 작곡 배경과는 상관없이 멜로디만 느껴도 이 곡의 효과는 충분하다. 듣고 있으면 저절로 눈이 감기고, 마음이 편안해지는 곡이다. 시중에 나와 있는 임산부 태교음악 CD에 꼭 들어있는 필수곡이다. 이곡은 바흐가 작곡하기 이전에 1713년 ‘파레스’라는 작곡가가 만든 아리아 ‘나의 즐거움은 신나는 사냥뿐’이 원곡이다. 이 멜로디를 바흐 식으로 편곡한 것이다.
“좋은 양치기가 지켜보는 가운데 양들은 평화롭게 즐기리라”는 가사는 영주의 착한 심성을 표현하는 거란다. ‘사냥을 좋아했다는 영주가 과연 좋은 양치기일까?’ 하는 엉뚱한 의문이 들지만, 바흐 입장에선 아무튼 영주에게 선물을 하는 것이니 좋게 표현해야 했나 보다. 원래는 성악곡이지만 지금은 피아노 독주나 오케스트라(관현악곡)로 편곡되어 많이 연주된다.
아가도 자고, 나도 자고.
바흐라는 착한 양치기가 부르는 노래에 스르르 잠이 드는 평온한 오후다.
유투브 검색어- 바흐 칸타타 ‘양들은 평화로이 풀을 뜯고’
Bach Cantata BWV. 208 ‘Schafe können sicher weiden’
https://youtu.be/LKa5s-1kD8QBach "Schafe können sicher weiden" from BWV 208 Piano version by Khatia Buniatishvil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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