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발의 차이로-임신 28주

카를로스 카르델 -Por una Cabeza

by 피아니스트조현영
<예술의 전당>

친구가 독주회를 해서, 예술의 전당에 다녀왔다. 직업이 음악가인 입장에선 연주회장 가는 게 그리 대단한 일도 가슴 설레는 일도 아니다. 보통 사람들이 일하러 회사 가는 느낌 정도랄까? 하지만 비전공자인데 음악을 좋아하는 매니아라면 입장이 다르다. 연주회장이야말로 심쿵 하는 장소요, 그곳에 있는 것 자체가 행복이다. 서초동에 있는 예술의 전당은 주변 시설도 좋아서 연주 들으러 간 김에 여러 가지 문화생활을 즐길 수 있다. 콘서트홀만 있는 게 아니라, 오페라 극장이며 한가람 미술관이며 둘러볼 곳이 한 두 군데가 아니다. 식당들도 대부분 이탈리아 레스토랑이라 와인 한 잔 마시며 분위기 잡기에도 좋다. 그래, 그런 곳인데. 오늘은 다녀오고 나니 영 기분이 꿀꿀하다. 부러우면 지는 거라는데 나는 지금 독주회 하는 친구가 부럽고, 예술의 전당에 잘 차려입고 온 젊은 남녀의 생기와 여유가 부럽다. 그들과 달리 현재 나는 28주 된 임산부다.


잘 자고 잘 놀며 엄마 편하게 해주는 뱃속의 아기가 고마우면서도, 순간순간 기분이 변한다. 아무도 나에게 뭐라고 하지 않는데 나 혼자 기분이 엎치락 뒷치락인 거다. 아이가 태어나서 육아를 하는 동안엔 더할지도 모른다. 아이 때문에 못하게 되는 일이 지금보다 훨씬 많아질 테니. 아직 결혼을 하지 않은 내 친구는 연주 후에 뒤풀이를 같이 가자고 했지만, 난 그럴 여유도 없고 몸 상태도 좋지 않았다. 연주 들을 때 초집중하는 직업 근성도 있고, 이젠 몸이 많이 부풀어져서 딱딱한 곳에 오래 앉아 있을 수가 없다. 어서 집에 가서 눕고 싶을 뿐이다. 화려하고 빨간 드레스가 잘 어울렸던 친구는 성황리에 마친 연주회로 얼굴에 화색이 돈다. 불과 몇 달 전까지만 해도 나도 저 자리에 저런 모습으로 서 있었는데... 독주회 준비할 때마다 그렇게 도망가고 싶다고, 이번이 마지막이라고 외쳤던 내가 아닌가! 그런데 막상 할 수 없는 상황이 되니 부럽다. 솔직하게는 아주 많이. 집으로 돌아와서 죄 없는 남편을 붙잡고 한참을 이야기했다. 연주에 대한 이야기부터 친구의 드레스까지 마지막엔 전혀 상관없는 남녀의 결혼관과 임신 육아에 관한 이야기까지. 다행히 남편이 무던해서 그렇지 예민한 사람 같으면 진즉 화를 내고도 남았을 거다. 그럼 연주회를 가지 말지, 왜 다녀와서 자기를 붙잡고 이러느냐고... 결국 남편은 원인도 결론도 분명치 않은 나의 긴 이야기를 듣다가 소파에서 지쳐 잠이 들었다.


내 이름 석 자로 살 때는 몰랐다. 대체 여자의 일생이 어떤 것인지. 임신을 하고 나니 세상의 모든 엄마들이 존경스럽다. 결혼을 했다고, 아이를 낳았다고, 아줌마가 됐다고 해서 마음까지 달라지는 건 아니다. 아줌마지만 리즈 시절의 나로 돌아가고 싶은 순간도 많고, 혼자라면 당당하고 용감하게 할 수 있는 일인데 못하는 경우도 많다. 꿈과 현실은 많이 달랐다. 옛날 어른들께선 이런 말을 들으면 우리도 다 그렇게 아이들 낳고 키웠는데, 무슨 호들갑이냐고 하겠지만 난 좀 생각이 다르다. 요즘은 사회가 많이 달라졌다. 그냥 적당한 나이가 돼서 결혼을 하기보다는 사회생활을 하거나 자아실현을 하는 여성들이 많다. 그러다 보니 때 되면 으레 껏 하는 임신도 아니다. 결혼 전의 모습과 결혼 후 모습이 상당히 다르다. 임신이 늦다 보니 생각이 많아지는 부작용도 있긴 하다. 뭘 모를 때 그냥 할 것을. 그렇잖아도 생각 많은 사람이 생각이 더 많아졌다. 아무튼 오늘 내 심사가 불편한 이유가 대체 뭣 때문이냐고 객관적인 이유를 제시하라면 할 말은 없지만, 뭔가 나 혼자만 억울한 느낌이다. 이럴 때는 남자도 번갈아 가며 임신도 해보고, 출산도 경험해 봤으면 좋겠다. 물론 말도 안 되는 소리인 줄은 안다. 결국 못하고 있으니 부러운 거다. 솔로일 땐 결혼한 친구가 부럽고, 결혼하고 나니 솔로인 친구가 부럽다. 독주회를 할 때는 앉아서 듣고 있는 청중이 부럽고, 청중일 때는 무대 위의 연주자가 부럽다. 인간이란 상당히 이율배반적이다.


자! 이 밴댕이 소갈딱지처럼 좁아터진 나의 마음을 풀어줄 음악을 한 곡 들어보자. 못하는 것을 아쉬워하며 억울한 느낌이 드는 사람들이 들으면 좋을 음악이 뭘까? 어차피 오늘은 우아하게 클래식 태교를 하고 싶은 마음도 없다. 어쩐지 일탈을 꿈꾸고 싶다. 임신 동지애 팍팍 느끼고 있는 친구가 준 탱고(Tango) CD가 눈에 들어온다. 그래 맞아.


카를로스 카르델의 탱고 음악 ‘간발의 차이로(Por una Cabeza)’

이 음악을 들어야겠다. ‘간발의 차이로’라는 제목에서 느껴지듯 이 음악은 경마장에서 간발의 차이로 진 상황의 아쉬움을 노래로 표현한 곡이다. 간발의 차이로 이기지 못해서 아쉽나, 아예 시작도 못해서 아쉽나 아쉽기는 피차 마찬가지다. 이 음악은 영화 ‘여인의 향기’에서 알 파치노가 멋지고 젊은 여인과 춤을 추는 장면에서 흘러서 우리에게 익숙해졌다. 하지만 원래 이 음악은 카르델이 영화배우로 활동하던 1935년에 영화 ‘탱고 바(Tango Bar)’에서 부른 노래였다. 가사가 붙은 노래가 춤곡으로 그리고 지금은 기악 연주곡으로 편곡되어 많이 연주된다.


아르헨티나!

작곡가이자 영화배우인 카를로스 카르델, 축구 영웅 마라도나, ‘돈 크라이 포 미 아르헨티나’를 부른 에비타의 나라다. 레드와 블랙의 드레스 코드. 열정과 낭만의 나라. 그 나라에서 탄생한 음악 장르가 바로 탱고다. 탱고는 쿠바의 아바네라 음악이 아르헨티나로 유입이 되면서 변형된 것이다. 둘 다 액센트가 있는 2/4 박자 계통의 음악인데, 강렬한 리듬이 중요하다. 아르헨티나 드림을 꿈꾸며 이민 왔던 자들의 노래였는데, 카르델과 그의 제자인 아스토르 피아졸라에 의해 클래식화 되었다. 지금 우리가 듣는 탱고는 재탄생된 새로운 탱고, 누에보 탱고(Neuvo Tango)다.


탱고 음악이 주는 애잔함과 안타까움은 아코디언과 비슷하게 생긴 반도네온이라는 악기의 음색 때문이다. 탱고는 남녀 간의 춤이라 알고 있는데, 사실은 부둣가에서 직업여성을 기다리는 남자들끼리 줄을 서 있다가 무료함을 달래기 위해 췄던 춤이다. ‘네 다리 사이의 예술’이라고 불리는 탱고! 언젠가는 아르헨티나 수도 부에노스 아이레스에서 탱고를 꼭 추고 말리라. 그리고 빈티지 좋은 말벡 와인도 한 잔 마실 거다. 일단 오늘은 대한민국 서울에서 말벡 와인 대신 와인 잔에 임산부용 푸른 쥬스 한잔 따라 마시며 아쉬움을 달랜다. 아가야! 오늘은 엄마 좀 이해해 줄 수 있지?


유투브 검색어- 카를로스 카르델 ‘간발의 차이로’/

C. Gardel ‘Por una Cabeza’

https://youtu.be/GrWv500P2hg


https://youtu.be/F2zTd_YwTvo 영화 '여인의 향기'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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