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주 중에 아이를 느끼다-임신 32주

파헬벨- 캐논과 지그 라장조

by 피아니스트조현영
<파헬벨의 고향 독일 뉘른베르크>

30주가 지났다. 마라톤으로 따지면 전체 42.195km 중에서 가장 힘든 구간인 30km 지점을 지나고 있다. 숨이 턱턱 막힌다. 임신선은 진한 갈색으로 두꺼워지더니 급기야 내 배를 세로로 선명히 갈라놨다. 흥부 놀부가 타는 박 같은 모습이구나. 살결은 여기저기서 퍽퍽 터져서 무슨 나무줄기 마냥 제 맘대로 뻗혀 있고, 배는 바늘 하나 꽂으면 금방 터질 듯 부풀어 있다. 텔레비전에서 보는 임신한 연예인들은 배만 살짝 나온 예쁜 D라인을 유지한다지만, 그건 그야말로 꿈같은 소리다. 실제로 대다수의 임산부들은 그냥 굴러다니는 드럼통이다. 앞 빵 뒷 빵! 다리도 퉁퉁 부어서 하지정맥류를 앓는 외국 할머니 같다. 독일 할머니들이 파란 핏줄이 도드라진 채로 지팡이 짚고 다니는 걸 보면서 왜 저러나 싶었는데, 혈액 순환이 안 되면 이런 현상이 나타난다. 손발은 저리고 부종은 심해지고. 아무리 비싼 유기농 푸른 주스를 마셔봐도 화장실 갈 때마다 실패다. 몸 상태가 총체적 난국이다.


달력을 보니 예정일에 빨간 동그라미가 쳐져있다. 다행히도 예정된 출산일은 강의하는 대학의 방학이고, 두 달 정도는 충분히 산후조리를 할 수 있다. 그 기간 동안 무위도식하며 지내렸는데, 막상 활동하던 사람이 창살 없는 감옥에 갇혀 있으니 이것 또한 답답하다. 나는 차라리 몸 쓰고 머리 쓰며 일 하는 게 천상 체질이다. 모성애가 없진 않지만, 이런 나의 성향을 본다면 다산은 이미 물 건너갔다. 세상의 모든 다둥이 엄마들에게 깊은 존경을 표한다. 여자는 임신과 출산을 반복하다 보면 어영부영 4년이 슝 간다. 애가 둘이면 7년, 셋이면 한 10년은 인생에서 지워진다고 본다. 으악! 뱃속의 천운이가 탄생하고 어린이집 갈 정도가 되면 난 벌써 40대를 바라본다. 상상하고 싶지 않지만 머지않아 현실이 될 나의 미래다. 보통은 여자 나이 40대면 애가 중학교쯤은 가줘야 하지 않나? 이제 와서 시간을 돌릴 수도 없고. 쩝!

시간을 달리는 소녀처럼 이런저런 생각을 하고 있는데, 전화가 울린다. 바이얼린 연주자 선생님이신데, 임산부인 내가 했으면 좋을 프로그램이라고 같이 하자고 하신다. 손가락이 너무 부어서 건반에 낄 것 같다고 우스갯소리를 했더니 그렇게 어려운 곡 아니니 걱정 말란다. 이건 꼭 내가 해야 하는 연주라면서, 임산부 태교용으로 딱이라고 하길래 물었다.

“대체 어떤 연주인데요?”

“응, 임산부를 위한 태교 음악회야!”

아니 임산부 보고 임산부를 위한 연주회를 하라고요? 뭔가 의아하면서도 공감이 갔다. 막상 태교 음악회는 솔로였을 때 많이 했다. 솔직히 고백하자면 그땐 연주는 했지만 청중인 임산부들의 마음을 이해하진 못했다. 당시엔 나랑 상관없는 먼 나라 이야기였으니까. 그런데 지금은 임산부들의 마음이 너무 이해가 되고 공감할 수 있다. 내가 아이를 품으면서 많은 것이 변했기 때문이다. 리허설 하는 장소도, 연주회장도 집에서 이동하기 쉬어서 연주를 수락했다. 프로그램은 대부분 태교 음악 CD에 있는 듣기 편한 곡들이었다.

그래 놀면 뭐하니. 막상 다른 생각 안 하고 연습하니까 차라리 낫다. 외워서 연주하는 독주회도 아니고, 여럿이서 하는 실내악이라 암보에 대한 부담도 없다. 가지고 있는 드레스 중 제일 탄력성 있는 검은 드레스로 배를 덮고 1시간가량 연주를 했다. 10곡 정도 되는 프로그램을 모두 연주했는데, 한 음악에서 아이가 막 움직인다. 32주 된 아이는 모든 자극에 감정 표현을 한다. 이 곡이 마음에 들었나? 아이가 반응했던 곡은 요한 파헬벨의 <캐논과 지그>이다.

음들의 진행이 심하게 변하지 않고, 멜로디도 반복이 많아 누구나 들으면 금방 아는 곡이다. 아이는 그렇게 편안한 음악이 좋은지, 이리저리 돌아다니면서 까르륵까르륵 웃고 있는 것 같다. 내 배를 간지럽히는 느낌이 든다.


‘요한 파헬벨의 캐논’


요한 파헬벨은 1653부터 1706까지 독일에서 활동한 바로크 시대의 작곡가이다. 독일 중부의 작은 도시 뉘른베르크에서 태어난 파헬벨은 이 곡으로 단번에 일약 스타가 됐다. 이 곡을 제외하고는 딱히 자주 연주되는 곡은 없지만, 불후의 명곡이다. 캐논이라는 단어는 주변에서 많이 들을 수 있다. 유명 사진기의 상표이기도 하고, 복사기 이름이기도 하다. 각기 지칭하는 물건은 다르지만, 캐논의 뜻은 하나다. '캐논'이란 규칙, 표준을 뜻하는 그리스어에서 유래됐는데, 엄격한 모방 형식을 갖춘 음악이다. 쉽게 말해서 동요 ‘동네 한 바퀴’처럼 일정한 간격을 두고 계속 반복되는 돌림 노래다. 동요는 참 이상한 힘이 있어서, 가사를 보면 노래가 바로 흥얼거려진다. 이 노래를 모르는 어른은 한 명도 없다.

‘다 같이 돌자 동네 한 바퀴, 아침 일찍 일어나 동네 한 바퀴,

우리 보고 나팔꽃 인사합니다. 우리도 인사하며 동네 한 바퀴,

바둑이도 같이 돌자 동네 한 바퀴'


캐논(Canon)은 장르를 말하기도 하지만, 실제로는 곡명으로 더 알려져 있다. 우리에게 캐논은 영화 ‘엽기적인 그녀’와 뉴에이지 피아니스트 죠지 윈스턴의 곡이다. 실제로 파헬벨이라는 작곡자의 이름을 아는 사람은 별로 없다. 왼손의 저음부 멜로디가 계속 반복되는 구조로 작곡되어서 듣기에 아주 편하다. 이런 반주 형태를 통주저음이라고 한다. 반복되는 왼손에 비해 조금씩 바뀌는 오른손은 비슷하지만 매일 조금씩 변화가 일어나는 우리네 삶과 비슷하다. 원래는 3대의 바이얼린과 저음부 멜로디를 나타내는 한 대의 통주저음 악기 총 4대의 악기를 위한 곡이지만 지금은 독주 악기 편곡으로도 많이 연주된다. 이번 태교 음악회에서는 피아노 솔로 버전으로 연주했다. 이 곡을 듣다 보면 심장 박동도 규칙적으로 되고 마음이 편안해지면서 머릿속이 정리되는 듯하다. 참 많은 연주를 했지만, 이번 연주회처럼 아이와 함께 느끼는 특별한 경험을 했던 연주는 없었다. 커가는 배만큼이나 아이를 만날 날도 머지않았다.

아가야! 엄마가 많이 보고 싶어!


유투브 검색어- 요한 파헬벨 캐논과 지그 라장조

Pachelbel Canon

https://youtu.be/JvNQLJ1_HQ0 Pachelbel Canon in D Major - the original and best version -


https://youtu.be/hydo5gJP22o Johann Pachelbel Canon Piano (George Winst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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