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흐- G선상의 아리아
이제 정말 때가 됐다. 병원에서는 36주 이후엔 산모에 따라 상황이 다를 수 있으니, 마음의 준비를 하라고 한다. 그러니까 진통이 오면 언제든 병원에 출동할 수 있어야 한다. 이것저것 묻는 나와는 달리 담당 의사 선생님은 굉장히 무던하시다. 대학병원에는 워낙 여러 경우의 산모가 많아서 나는 정말 안정적인 경우라고 걱정 말란다. 어쩌면 불안해하고 예민한 성격의 환자에겐 이런 무던한 의사 선생님이 낫다.
살다 보면 무딤이 큰 힘이 되는 경우가 많다.
출산을 앞두고 결정할 일도 준비할 것도 천지다. 일단 분만의 형태다. 당연히 아이를 자연분만으로 낳을 생각이지만, 다른 경우도 생각해 봐야 한다. 제왕 절개 말이다. 한때는 온갖 분만법들을 다 뒤져가며 나름 골라보기도 했는데, 자신 없어서 그냥 자연 분만하기로 했다. 진통이나 길지 않으면 다행이지 뭐. 퇴원해서 산후조리원에 갈까 집에서 있을까도 결정해야 한다. 각각 장단점이 있지만 남편이 오히려 권해서 조리원을 택했다. 아니 그런데 병원은 그렇다 치고 조리원 정하는 게 이렇게 어려울 줄이야. 예상 밖이다. 언제든 내가 가고 싶을 때 갈 수 있을 줄 알았건만, 그건 완전 나만의 생각이었다. 분명 출산율이 낮다는데 나 하나 들어갈 조리원은 왜 이렇게 없는 건지. 가격은 또 왜 이렇게 사악한 거야?. 세상에 쉬운 게 하나도 없구나. 큰 결정들을 하고 나서도 이것저것 신경 써야 할 게 많다. 옛날 엄마들은 다들 어떻게 이 거대한 산들을 넘으신 건지... 아무리 생각해도 그분들은 지금 우리보다 세상사에 훨씬 지혜롭고 용감했다. 한 집에서 일 년 단위로 6남매 7남매 낳아 기른 엄마들은 나라 구한 위인이다.
얼마나 집을 비울지 모르니 집 정리부터 해야겠다. 아이가 바로 들어와 있을 곳이니 청결이 제일 중요하다. 아이의 물품과 산모용품들은 눈에 보이고 손에 잡히는 곳으로 배치해 놨다. 내가 없더라도 남편이 미리 준비할 수 있게 각각 메모지도 붙여놨다. 인터넷에 출산준비물을 검색해 보면 결혼 준비하는 것보다 품목이 더 많다. 차라리 결혼 준비는 쉬웠다. 아이를 위한 브랜드를 고르는 건 매우 어렵고 복잡했다. 거기에 적힌 목록대로 다 준비하는 건 아무래도 불가능해 보인다. 결국 최소한으로 필요한 것들만 사고 나머지는 키우면서 필요하면 사기로 했다. 엄마가 된다는 건 모든 선택의 기로에서 현명한 판단능력을 갖추는 일인가 보다. 엄마도 직무역량이 필요하다.
엄마직무역량!
아이는 거의 배 아래로 내려왔다. 이제는 훨씬 숨 쉬는 것도 편안하고 소화도 잘 된다. 하지만 배는 중간중간 심하게 당기고 가진통도 느껴진다. 만화 ‘아이스 에이지’에서처럼 아이가 나온다 아이가 나온다 하면서 병원으로 달려갈지, 아니면 차분히 아이가 세상에 나올지 나도 기대된다. 남편은 요즘 생전 잘 부르지도 않은 노래를 불러준다. 배에 귀를 대면 자기도 아이 소리를 듣고, 아이도 자기 소리를 듣는다고 날마다 부른다. 대부분 동요를 많이 불러줬는데, 오늘은 바흐의 멜로디를 읊조린다. 남편은 클래식을 싫어하지는 않지만 마니아도 아니다. 그런데 바흐? 난 의아해서 물었다.
“왜 그 곡을 불러줘?”
“응, 난 이상하게 이 노래 들으면 마음이 편안해지더라. 클래식은 어려워서 부담스러운데, 처음 좋아한 곡이 이 곡이야. 당신이 권해준 곡이기도 하고, 난 아이가 마음이 편안한 사람이면 좋겠거든.”
그랬구나. 내가 좋아하는 곡을 남편한테도 권했었구나. 바흐는 내가 세상에서 가장 존경하고 좋아하는 작곡가이다. 듣고 있으면 마음이 정말 편안해진다. 바흐의 음악은 정화와 치유의 기능이 있어서 마음의 번뇌가 사라진다. 곰곰이 생각해보면 힘들고 불안할 때 항상 내 옆엔 바흐가 흘렀다. 태교를 할 때에도 바흐를 가장 많이 들었다. 뱃속의 아이는 20주째부턴 이미 모든 소리를 들을 수 있다. 청각 기능은 가장 먼저 발달하는 감각이고, 좋은 소리를 듣는 것으로도 대뇌피질은 발달한다. 특히나 바흐의 음악처럼 느린 곡들은 알파파가 많이 나타나는데, 이건 아이의 뇌 발달에 좋은 영향을 끼친다.
요한 세바스티안 바흐 ‘G선상의 아리아’
음악사에선 바흐를 ‘서양음악의 아버지’라고 부른다. 클래식의 전반적인 기틀을 확립했기에 그런 별칭이 붙었다. 바흐는 음악에서만 아버지가 아니라 실제로도 자식을 둔 부모였다. 예나 지금이나 음악가 중에 결혼을 한 사람은 많지도 않거니와 자식을 두는 경우는 손에 꼽는다. 그런데도 바흐는 자식이 한 둘도 아니고 무려 20명! 음악만 다작을 한 게 아니라 자식도 다산을 했던 사람이다. 바흐는 평생을 교회에서 절실한 기독교 음악인으로 여러 가지 활동을 했다. 말년엔 독일 라이프치히 토마스 교회에서 음악감독으로 봉직하면서 신과 인간을 위한 음악을 1060개가 넘게 작곡했다. 그는 자식이 한 명 한 명 태어날 때마다 아이들을 위해 더 많은 음악을 작곡했다. 본인이 직접 아이들을 가르치기 위해 작곡한 곡들도 아주 많다. 바흐야말로 제대로 음악태교를 한 사람이다.
바흐의 G선상의 아리아는 광고나 영화에서도 자주 들을 수 있다. 영화 ‘동감’에서는 시간을 넘나들며 사랑을 했던 두 남녀의 이야기를 다루면서 흐른다. 아이러니하지만 금연 공익광고에서도 흘렀다. 이 곡의 원제는 관현악을 위한 모음곡 3번이다. 바흐가 살았던 시대에는 모음곡(Suite) 장르가 흥행이었는데, 이 모음곡이란 말 그대로 여러 종류의 춤곡들을 모아놓은 작품이다. 그러니까 한 곡 안에도 여러 곡이 구성되어 있는 형식인데, ‘G선상의 아리아’는 그 모음곡 3번 중에서 두 번째 곡인 ‘아리아’만 발췌를 해서 바이얼린 독주곡으로 편곡을 한 것이다. 바흐의 원곡을 독일의 바이얼리니스트 빌헬미(August Wilhelmj, 1845~1908)가 편곡을 했다. 독주 바이올린에는 4개의 현이 있는데, 그중 가장 낮은 소리인 G선용으로 편곡한 것이다. 누군가는 이 곡을 두고 빌헬미의 곡이라고 한다지만, 어찌 원곡자가 없는 편곡이 존재하겠는가! 원곡인 관현악 버전으로 들어도 좋고 편곡인 독주 바이얼린 버전으로 들어도 좋다. 피아노 독주로 연주해도 굉장한 감동이 있다. 사실 모든 게 그렇지만 아무리 글이나 말로 설명해도 직접 들었을 때 느끼는 그 감동엔 견줄 수가 없다. 아이가 건강하게 세상 빛 보기를 기대하면서 이 불안한 마음을 달래려고 바흐에 몸을 맡겨 보련다.
유투브 검색어- 바흐 관현악 모음곡 3번 중 아리아 ‘G선상의 아리아’
J. S. Bach Air on the G String (Suite No.3, BWV 1068)
Air on the G String (Suite No. 3, BWV 1068) J. S. Bach, original instruments
바이얼린 정경화
Kyung-Wha Chung : J.S.Bach - Air on the G String (arr. from Orchestral Sui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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