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9. 낭만, 그 일상의 아름다움

라흐마니노프- 파가니니 랩소디, 피아노협주곡2번 2악장

by 피아니스트조현영


<세르게이 라흐마니노프 1873~1943 러시아>

뮤즈> 혼자만의 시간이 너무 절실해서, 윤이상, 박경리, 전혁림, 백석 등으로 대표되는 경남 통영에 다녀왔습니다.


디오니소스> 경남 통영! 정말 멋졌겠어요.

뮤즈> 겨울에 가니까 더욱 좋더라고요. 같은 일상이지만 그곳에서 맞는 시간들은 굉장히 낭만적이었어요. 그런데 곰곰이 생각해보면 일상이 없는 낭만은 그렇게 아름답진 않은 듯해요. 낭만도 결국은 일상이거든요. 오늘은 ‘낭만, 그 일상의 아름다움’이라는 주제로 곡 들려드립니다.


디오니소스> 경남 통영에서 어떤 낭만을 느끼셨는지 곡을 들으면서 이야기 더 나눠볼까요?

뮤즈> 두 곡 모두 라흐마니노프 작품입니다. 라흐마니노프는 낭만, 겨울, 눈 하면 생각나는 작곡가입니다. 피아노라는 악기를 너무 잘 알고 있었고, 낭만적인 멜로디를 작곡하는데 일가견이 있던 사람입니다. 피아니스트가 사랑하는 작곡가예요. 개인적으로 저는 눈이 오면 무조건 이 작곡가의 곡을 무한 반복해서 들어요.


본인의 피아노 연주 실력이 굉장히 뛰어났고, 시대적으로 봤을 때도 19세기와 20세기의 흐름을 모두 느끼게 합니다. 1873년 러시아에서 태어나서 1943년 미국에서 죽었습니다. 정치적인 이유로 미국으로 망명했지만 안타깝게도 끝내 고국 땅을 밟지 못하고 죽었어요. 이런 점은 윤이상 선생님과 많이 비슷하죠.


디오니소스> 제목이 파가니니 주제에 의한 랩소디인데, 바이올린의 귀재 파가니니 맞나요?

뮤즈> 파가니니에게 영향을 받은 작곡가들이 참 많죠. 리스트도 파가니니 주제를 많이 썼고, 라흐마니노프 역시 그랬습니다. 그중에서도 지금 들을 랩소디는 24개의 변주곡 형식으로 나눠져 있는데, 18번째 변주가 가장 사랑받는 곡입니다.


디오니소스> 랩소디라는 장르는 처음인데요?

뮤즈> 클래식에서 말하는 랩소디는 일반적으로 형식이나 내용면에서 비교적 자유로운 환상곡풍의 기악곡을 말합니다. 브람스 랩소디, 리스트 헝가리안 랩소디, 현대에 와서는 조지 거쉬인의 랩소디 인 블루 이런 곡들이 있어요. 한국어로는 광시곡이라고 하는데, 한 마디로 그냥 작곡가가 느끼는 대로 자유롭게 펼치는 내러티브 곡이라고 생각하시면 됩니다.


디오니소스> 느끼는 대로 자유롭게 작곡되었다니 더 듣고 싶어집니다.



파가니니 주제에 의한 랩소디 작품번호 43 중 18번

Rachmaninov: Rhapsody On A Theme Of Paganini, Op.43

- Variation 18. Andante cantabile

피아노 연주- 다닐 트리포브 / 필라델피아 오케스트라

https://youtu.be/ThTU04p3drM


디오니소스> 시베리아를 가보진 않았지만, 이 곡을 들으니까 흰 눈이 엄청 쌓인 시베리아 벌판을 보는 느낌이네요. 감미로우면서도 우아하고 뭔가 아우라가 느껴지는 데요?

뮤즈> 저도 그런 느낌 때문에 눈이 오면 꼭 이 곡을 들어요. 이 18번 변주는 1980년에 개봉된 영화 ‘somewhere in time’ 한국에서는 ‘사랑의 은하수’라고 번역됐던 영화에 흘렀습니다. 슈퍼맨으로 알려져 있는 크리스토퍼 리브 주연인데, 기회 되시면 한 번 보세요. 타임슬립 영화인데 음악이 절묘하게 잘 맞아떨어집니다.


디오니소스> 두 번째 곡 이어가 볼까요?

뮤즈> 이 곡 역시 라흐마니노프 곡인데요, 피아노 협주곡 2번의 2악장입니다. 라흐마니노프는 4개의 피아노 협주곡과 방금 들은 파가니니 광시곡까지 해서 모두 5곡을 작곡했는데, 이 2번 협주곡과 파가니니 광시곡이 가장 유명합니다.


디오니소스> 피아노 협주곡이라면 피아노가 독주 파트를 담당하고 오케스트라 관현악이 반주를 하는 형태이죠?

뮤즈> 보통 협주곡은 3악장 형식으로 되어있는데, 보통은 1악장과 3악장이 크고 화려한 반면 2악장은 느리고 멜랑콜리합니다. 라흐마니노프 역시 2악장에 주옥같은 멜로디를 많이 표현했는데, 이 2악장에도 ‘아다지오 소스테누토’ 그러니까 ‘느리게 그 음을 충분히 눌러서’라는 나타냄말이 쓰여있습니다. 어떤 음도 허투루 연주하면 안 되는 거죠. 듣고 있으면 정말 황홀경에 바지는 음악입니다.


디오니소스> 본인 스스로가 피아노를 잘 다뤘다니 연주도 직접 했겠네요?

뮤즈> 네. 그래서 라흐마니노프가 연주한 라흐마니노프 음반도 많습니다. 라흐마니노프는 키가 2미터가 넘고 손가락을 벌리면 폭이 30센티가 넘었어요. 마지막엔 안타깝게도 마판증후군이라는 유전적 거구증에 시달리다 생을 마감했습니다. 특히 이 사람은 아주 대중들의 평에 예민했는데, 교향곡 1번이 흥행에 실패하자 오랫동안 작곡을 못하고 슬럼프에 빠져있었습니다. 급기야 심각한 우울증을 앓다가 정신과 의사인 달 박사를 만나 치료를 하고 극복해요. 그러고는 이 피아노 협주곡 2번을 작곡해서 성공을 하게 되죠. 라흐마니노프를 살린 곡입니다.


디오니소스> 러시아 작곡가 하면 차이코프스키가 제일 먼저 떠오르는데, 차이코프스키와는 어떤 관계였나요?

뮤즈> 차이코프스키에게 음악을 배웠고 많은 음악적인 영향을 받았지만 그와는 조금 다릅니다. 차이코프스키가 마냥 우울하고 침울한 스타일이라면 라흐마니노프는 그보다는 슬프지 않고 조금 더 아름답다고 할까요? 아무튼 둘 다 러시아 정서를 느끼기엔 충분하죠.


디오니소스> 혹시 이 음악도 영화에 흘렀나요?

뮤즈> 마를린 먼로가 지하철 통풍구 위에서 휘날리는 하얀 원피스를 잡고 웃는 사진 많이 보셨죠? 바로 그 영화에 나왔습니다. 7년 만의 외출이라는 영화예요. 그뿐 아니라 도쿄 타워, 밀회, 랩소디 여수 등 주로 옛날 영화에 많이 흘렀습니다.

특히 영화 ‘여수’ 원제는 ‘September affair’인데요, 이 영화에서는 여자 주인공 피아니스트가 이 곡을 연주합니다. 사랑해서는 안 될 두 남녀가 사랑을 나누면서 겪는 슬픈 로맨스인데, 마니나라는 여자 주인공이 뉴욕에서 데뷔 연주회를 하는데 ‘헤어지는 건 괴로운 일이지만, 나를 사랑한다면 떠나게 해 달라’는 메시지를 전하면서 연주합니다.


디오니소스> 실제로 피아노 연주자 입장에서 느끼는 라흐마니노프의 협주곡은 어떤 곡인가요?

뮤즈> 음... 참 어려운 질문이네요. 전 라흐마니노프를 너무나 사랑하고 좋아하지만 실제로 이 곡을 잘 연주하기엔 굉장히 어려워요. 음악을 수동적으로 듣기만 할 때와 능동적으로 연주를 할 때는 상반된 입장이거든요. 그래서 매번 연주를 할 때마다 독한 남자라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하지만 절대 미워할 수 없어요. 더 좋아하는 사람이 지는 느낌이랄까?


디오니소스> 그러니까 어렵고 힘들지만 사랑하는 거네요? 아주 낭만적이네요.

‘낭만, 그 일상의 아름다움’ 이라는 주제에 딱 어울리는 라흐마니노프 음악입니다.


라흐마니노프 –피아노 협주곡 2번 작품번호 18 2악장

피아노 연주-스비아토슬라브 리히터/바르샤바 폴란드 오케스트라

https://youtu.be/rxL9sKROKk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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