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와 내가 함께 맞는 첫 봄

요한 슈트라우스 2세 '봄의 소리 왈츠'

by 피아니스트조현영

#EBS육아학교 칼럼 '피아니스트 엄마의 클래식 육아'에 연재중입니다. 그 밖의 다른 글은 EBS육아학교 앱에서도 볼 수 있어요.


엄마들의 최대 작품인 돌잔치는 나의 게으름과 무관심으로 한 달 전까지 아무런 준비가 없었다. 다행히 막내 동생의 결혼식 전날에 호텔 홀이 비었다는 소식을 접하고는 바로 예약을 했다. 거기마저 없었더라면 난 정말로 집에서 상 차릴 뻔했다. 슬라이드 영상을 위해 필요한 아이 사진도 손님들에게 줄 답례품도 가장 일반적이고 최소한의 것으로 준비했다. 호텔에서 돌잔치하는 것이 꽤 부담이었지만, 호텔 할인과 가족들의 후원으로 아주 간소하게 무사히 잔치를 끝냈다. 자고로 아이 키우는 엄마는 모든 게 회장님 비서처럼 미리미리 계획하고 준비하지 않으면 안 된다. 돌잔치의 준비물 역시 출산 준비물 못지않게 확인하고 챙겨할 것이 많았다. 물론 그렇게 하지 못한 나로서는 별로 할 말은 없지만, 아무튼 잔치를 준비하면서도 또 배웠다.


돌이 지나고 나니 천운이는 부쩍 소년이 돼가는 느낌이다. 1년가량 했던 모유수유도 끊고 이젠 이유식도 잘 먹는다. 냉동실에 사골국처럼 모유를 저장했던 게 엊그제 같은데, 점점 시간이 빨라진다. 나가서 활동하는 것만큼 집에서 혼자 아이 키우는 것도 신체적으로 정신적으로 매우 바쁜 일이었다. 밖에서 일을 하는 것은 나중에 결과라도 남지만 아이 키우는 일은 정말 표도 안 나면서 아주 희생을 요한다. 아이에 대한 사랑과 나의 희생이 없으면 불가능한 일이다. 어른 식사와 이유식을 따로따로 분리해서 하는 것이 쉽지는 않지만, 지극 정성으로 부엌에서 자르고 다지고 끓여 엄마표 이유식을 먹였다. 아이가 먹다 남은 이유식을 내 한 끼로 대체하기도 했다. 밍밍하고 맛은 없지만 왠지 몸이 건강해지는 느낌이 든다. 평생 이렇게 먹었으면 아주 좋은 식습관을 유지했었을 텐데.


요즘 우리 집엔 내 피아노 소리보다 아이의 연주가 더 많이 울려 퍼진다. 천운이는 슬슬 연주를 하기 시작했다. 손가락에 쥐는 힘이 생기자 더 신나 했다. 문화센터를 다니면서 이것저것 보더니만 이젠 낯선 사물에 대해서도 거침이 없다. 눌러서 소리가 나거나, 때려서 소리가 나는 모든 것이 아이에겐 악기였다. 물려받은 아기체육관과 사운드 북도 천운이에게 엄청난 놀거리를 제공했다. 다만 한 가지 문제라면 음정과 박자 리듬에 예민한 나의 귀가 혹사를 당한다는 점!


돌쟁이 아들은 음악의 모든 요소를 무시하고 쿵쿵 짝짝 모든 것을 두드려 댔다. 육아서대로 하자면 아이의 행동에 맞장구를 쳐주면서 엄마가 흥을 돋워야 했지만, 그 연주에 적응하기까지 시간이 꽤 걸렸다. 솔직히 고백하건대 그건 연주라기보다는 소음에 가까운 소리다. 그런데 여기 신기한 사실이 하나 있다. 아이가 두드려대는 그것들에게 각각 다른 반응을 한다는 거다. 큰 냄비, 작은 냄비, 젓가락 두 개가 부딪치는 소리, 나무 주걱과 수저로 두드릴 때 나는 다른 소리에 고개를 갸우뚱했다. 힘을 줄 때와 그렇지 않을 때, 그리고 빨리 두드릴 때와 천천히 두드릴 때의 울림을 느꼈다. 뻔해 보이는 현상이지만 이건 진동과 악기 크기, 악기를 만드는 재질에 관계된 문제다. 음향악적 관점에서 접근하면 굉장히 신비한 일을 경험하는 거다.


아기 체육관의 피아노 건반도 특정음에 대해 더 좋아하는 모습을 보였다. 아기 체육관엔 건반이 몇 개 있지 않아서 들리는 음이 한정되어 있는데, 아이는 유난히 그 음만 자주 눌렀다. 어느 날은 주먹으로만 어느 날은 검지 손가락 하나만을 꾹, 또 어떤 때는 두 주먹으로 쿵!

사운드북은 이미 음악이 저장되어 있기에 아이 스스로 할 일이 많진 않다. 하지만 여러 음악을 하나의 책에서 골라 들을 수 있다는 것은 최고 장점이다. 이것 또한 아이가 선호하는 곡이 틀림없이 있다. 그래서 유난히 한 곡만 누르는 부분이 헤어지는 것이다. 인간이란 음악에 대한 지식이 전혀 없어도 본능적으로 음악을 느낄 수 있다는 것을 말해주는 현상이다.


다른 것은 대체적으로 물려받은 것을 사용했지만 사운드북만은 새것으로 몇 개 사줬다. 전래동요, 유아동요, 클래식 등 다양한 음악을 들려주고 싶었고, 총천연색 책의 재미를 느끼게 해주고 싶었다. 건전지를 사용하는 책이라 소리가 약하게 들리거나 나오지 않는 곡도 있어서 새것을 사 줄 수밖에 없다. 사운드북은 기계음이라는 한계가 있지만 아이는 상당히 좋아한다. 손뼉을 치고, 함박웃음을 짓고, 엉덩이를 들썩이는 이 반응이 나에게도 행복을 선물했다.

처음 아이를 낳았을 땐 백일만 지나면 살 것 같더니, 백일이 지나고 나서는 어서 빨리 첫 돌이 되길 바랬다. 엄마가 서투르고 힘들어서 그 시간들이 무사히 빨리 지나갔으면 했다. 그런데 그렇게 기다렸던 돌이 지나고 나니 아이는 생각보다 많은 것을 해냈고 나와 함께 하고 있었다.


날마다 쓰는 일기에 아이의 하루와 나의 하루가 겹쳐있다.

아이와 함께 맞는 첫 봄이 왔다. 예전 같으면 개강 준비와 연주 계획으로 한 해의 시간들을 채우느라 바빴을 텐데, 지금은 아이와 무사히 봄을 맞이한 자체가 감사했다. 계획이 없는 봄을 맞이한다. 외출할 땐 아이의 이유식과 기저귀와 물티슈로 꽉 찬 나의 보따리를 들쳐 멨다. 8센티 높은 굽도, 몸에 꽉 맞는 정장도, 귀걸이 목걸이 등의 액세서리와 멋진 핸드백도 걸치지 않는 천운이 엄마의 외출이다. 운전을 싫어하는 엄마라 아이와의 외출은 무조건 도보 또는 유모차를 대동한다. 우리의 봄은 그렇게 나에게 다가왔다. 흐느러지는 벚꽃을 보며 커피를 들고 남편의 팔짱을 꼈던 아가씨는 아이의 웃음에 바보가 되는 천운맘이 됐다.


그 봄에 들었던 음악이 떠오른다. 요한 슈트라우스 2세가 작곡한 봄의 소리 왈츠.

가끔은 지금의 나를 행복하게 해줬고, 또 가끔은 과거의 나를 들춰내 마음을 뒤숭숭하게도 했던 음악. 요한 슈트라우스 2세는 라데츠키 행진곡으로 유명한 요한 슈트라우스 1세의 아들이다. 유럽에선 같은 이름으로 1세, 2세를 구분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 아빠 요한 슈트라우스 1세는 21살 젊은 나이에 아빠가 됐기에 그 역시 서툰 아버지였다. 그래서 처음엔 아들이 음악을 하는 것에 질투를 느끼면서 반대를 하기도 했다. 하지만 후엔 그 누구보다도 아들을 적극 지지해주는 아빠가 된다. 오스트리아 빈에서 태어난 아들 요한 슈트라우스 2세는 왈츠의 왕이라고 불릴 만큼 많은 왈츠를 작곡했다. 가장 유명한 ‘아름답고 푸른 도나우강’을 비롯해서 매년 신년이면 열리는 신년 콘서트에서 그의 왈츠가 계속 울린다. 듣고 있으면 봄이 성큼성큼 나에게로 와서 품에 안긴다. 마치 내 아이처럼.


이 곡은 원래 가사가 붙은 가곡이다. 요한 슈트라우스 2세는 정말 왈츠를 출 수 있는 기악 작품을 많이 작곡했는데, 이 곡은 기교를 뽐내는 콜로라투라 소프라노를 위해 성악용으로 작곡했다. 지금은 멜로디가 너무 좋아서 관현악 기악곡으로 자주 연주되기도 한다. 1885년 빈에서 활동하고 있던 유명한 소프라노 비안키를 위해 작곡한 곡이다. 멜로디가 단순하고 계속 반복되는 론도 형식이라 콧노래로 따라 부르기는 좋지만, 실제로 무대에서 부르기엔 아주 어렵다. 높이 올라가는 고음도 많고 한 소절이 길어서 호흡을 조절하는 문제도 상당한 기교가 필요하다. 가사도 멜로디도 딱 봄이다.


종달새가 푸른 하늘로 날아오르고

부드럽게 부는 바람은 사랑스러운 숨결로 넓은 벌판과 초원에 입을 맞추네.

모든 것이 봄과 함께 빛을 더해 가고

이제 고난이 끝나고 슬픔은 온화함으로 다가오니

봄의 소리가 우리 곁에 다정히 들려오네.


유튜브 검색어- 봄의 소리 왈츠

지휘 카를로스 클라이버 Carlos Kleiber -

Johann Strauss II - Frühlingsstimmen ("Voices of Spring") Op. 410

https://youtu.be/G8_DdClkhaw


지휘 헤르포르트 폰 카라얀

노래 캐슬린 베틀

Strauss - Voices of Spring- Battle, Karajan


https://youtu.be/s0sjS92tkN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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