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리사는 집에서 요리를 할까 안 할까? 개그맨은 그의 가족들을 위해 개그를 할까 안 할까?
어찌 보면 당연한 질문이고, 어찌 보면 하나마나한 질문일 수 있다. 피곤하지 않으면 자연히 할 테고, 피곤하면 집에서만이라도 쉬고 싶겠지. 그래서 요리사 부모가 의외로 인스턴트를 먹이게 되고, 피아노 선생님인 엄마를 뒀지만 정작 아이는 피아노를 못 배우는 경우가 생긴다.
난 밖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는 사람이라 누구보다도 말을 많이 한다. 강의를 마치고 나면 입이 얼얼해지면서 얼굴 근육이 뭉치는 때도 있다. 더군다나 피아노 레슨이라는 게 생각보다 목을 많이 쓰는 일이다. 학생들이 연주를 하면서 내 소리를 듣고 동시에 고쳐나가야 하기 때문에, 악기 소리를 뚫고 내 목소리가 그들에게 전해져야 한다. 연주하는 동안 손으로 허벅지를 쳐가며 박자를 맞추다 보면, 레슨 후에 손바닥도 아프고 목도 아프다. 가끔은 나도 모르게 허벅지에 멍이 든다. 학생들에게 내 허벅지를 보여준 적이 없으니 믿거나 말거나지만 사실이다.
이런 직업인 데다 외부 강연을 할 때는 대다수의 사람들 앞에서 혼자 그 분위기를 다 짊어져야 한다. 시쳇말로 있는 기운 없는 기운 다 뺏기고 집에 들어온다. 탈탈 털린 멘탈로 오징어처럼 몸을 흐느적거리며 들어오면, 16개월 된 기운찬 아들이 날 반긴다. 엄마 없는 시간 동안 나를 눈 빠지게 기다리고 있다가 달려오는 사랑하는 내 새끼! 아무도 없는 집에 들어오는 것보단 행복하지만, 가끔은 그대로 침대에 가서 눕고 싶은데 2부제 출근을 하는 것 같아 힘들다.
현실의 나는 지방에서 독박 육아를 하며 일하는 엄마다.
아들은 내가 강의하러 가는 시간엔 돌보미 선생님과 함께 있다. 돌보미 선생님은 표정이 밝고 말을 아주 많이 하시는 분이다. 결혼 전의 난 말을 그렇게 많이 하는 편이 아니라서 아이를 키울 때 걱정을 하기도 했다. 다행히 생각보단 아이와 대화를 많이 했고 아이도 나의 이야기를 재미있어해서 문제가 되진 않았지만, 돌이켜보면 아이가 말을 잘하게 된 건 돌보미 선생님의 영향이 상당하다.
나도 나지만 선생님은 계시는 동안 내내 동화책을 읽어주시고, 아이에게 말을 걸었다. 남자아이가 여자 아이보다 말이 늦고 발달이 더디다는데, 천운이는 오히려 말이나 행동이 빠르다. 특히나 돌을 넘기고 나서는 부쩍부쩍 커가는 모습에 새삼 놀랜다. 아장아장 걷다가 이제 좀 균형을 잡고 걷기도 하고, 구부렸다가 일어나기도 한다. 집에 있는 냄비와 주걱, 국자, 쟁반 이런 잡다한 것들로 연주도 하니 악력도 많이 생겼다.
서울에서 살 때 보다 훨씬 좁은 지방의 집으로 이사 오면서, 내 피아노와 전공 서적들을 빼면 정작 침대와 아기 옷장이 거의 전부인 세간 살림이다. 집도 좁은데, 가구까지 많으면 아이가 움직일 수 있는 공간이 제한적일 것 같아 나름 신경 쓴 대목이다. 아이는 현재 16개월, 육아서를 참고해 가면서, 아이를 잘 지켜보고 있다. 아이마다 발달 상황이 다르니 앞서 나가는 것이 기쁘지도, 더딘 것이 큰 걱정이 되지도 않는다. 전반적으로 천운이는 그 개월 수에 맞는 발달 단계를 거치며 잘 크고 있다. 그렇게 나는 믿는다.
‘육아에 필요한 건 정말 절대적인 평정심이다. 내 마음이 급해지면 모든 게 부족하고 잘못돼 보인다. 걱정이 걱정을 부르면 끝이 없다. 내 일 해보겠다고 스스로 결정해서 단행한 주말부부이니 설령 억울하고 힘들더라도 남 탓은 하지 말자! 어쩌다 남편이 일 있어 못 오더라도 우울해하지 말아야지!’
날마다 밤에 쓰는 일기장 첫머리에 써놓고 읊조리는 주문이었다. 첫째도 평정심이요 둘째도 평정심이다. 아이는 나 하나 바라보고 있는데, 내가 흔들리면 우린 둘 다 무너지는 거였으니 내 마음의 평화만이 유일한 방법이었다.
주말에 서울에서 내려오는 남편은 변해가는 아이를 바라보면서 나보다 훨씬 놀랬다. 날마다 보는 나도 놀라운데, 일주일이면 정말 큰 변화가 감지되겠지. 남편이 가장 놀랜 건 아이가 말을 많이 하는 거였다. 물론 아직은 제대로 된 단어나 문장은 아니지만 엄마인 나나 아빠는 알아들을 수 있는 말이었다. 아이가 손가락으로 무엇을 가리키거나 짧은 단어만 말해도 우린 구글의 번역기처럼 아들의 안드로메다어를 잘 이해했다. 그래서 우리가 그것에 반응을 하면 천운이는 미션 수행을 잘 해낸 부모에게 함박웃음과 물개 박수로 보상을 해줬다.
그리고 두 번째 놀람은 자기주도성이 생겨서 마음대로 하려는 행동이었다. 이유식을 점점 물리고 밥을 먹기 시작하면서 아이의 식사 시간은 말 그대로 난장판이 됐다. 밥알을 흘리는 건 당연하고, 흘리다 못해 아기 식탁에 그림을 그린다. 그것도 밥알을 으깨어가면서. 때론 입에 들어가야 할 숟가락을 붓 삼아 밥알 묻힌 수저로 벽에 도배를 한다. 그리고 결국 밥그릇을 엎는다. 밥알이 공중에서 팝콘처럼 흩날리면서 밥그릇이 엎어지고 데굴데굴 굴러서 방구석에 부딪혀 멈춘다. 아이에겐 이것 또한 멋진 광경이었고, 나에겐 속 터지는 광경이었다. 엎어진 밥그릇을 보면서 아이는 자신의 작품에 만족해 헤죽헤죽 웃는다. 방금 청소하고 밥 먹인 건데, 또 쓸고 닦을 일이 생긴 거다. 아들아, 넌 이 상황에서 웃음이 나오니? 엄마는 울고 싶다. 흑흑.
아이 키우면서 생긴 버릇 중에 하나가 현상을 꽤 오랫동안 관찰하는 거다. 다른 사람 아이 아니고 내 아이니까, 엄마로서 아이에 대해 잘 알아야 한다는 의무감에 시작된 행동변화였다. 그래서 아이의 변화에 대해 심도 있게 살펴보았다.
아이가 말을 많이 하는 것은 소리를 듣고 만들어 내는 놀이를 많이 하는 것과 연관이 있다. 천운이는 7개월쯤부터 다양한 소리에 관심을 나타냈다. 나의 목소리와 돌보미 선생님의 목소리를 구분하며 다른 반응을 보였다. 나도 사람을 얼굴보다 목소리로 기억하는 편인데, 아이도 그랬다. 음색이 전혀 다른 나와 선생님의 목소리를 구분해서 사람을 인지한 것이다. 내가 아이 눈에서 사라졌어도 방에서 일하면서 목소리를 계속 들려주면 대상영속성을 갖게 된 아이는 불안해하지 않고 잘 논다.
언어를 배우는 과정도 마찬가지다. 소리가 다양하다는 것을 느끼면 언어도 소리에 대한 반응이기에 원리가 동일하다. 아이는 엄마가 내는 소리를 잘 듣고 있다가 그대로 흉내 내는 거다. 엄마들이 분명한 발음으로 반복해서 단어를 말해주면 좋은 게 바로 이런 원리다. 간혹 할머니 할아버지가 사투리를 사용하시거나 특유의 말 형태를 반복하면 아이도 그 소리를 그대로 따라 한다. 아이가 할머니처럼 말하면 정말 요절복통이 된다. 정확한 말을 잘 들으면 말하는 게 빨라진다. 대체적으로 말이 더딘 아이들의 특징은 엄마가 말이 없거나 너무 말이 빠른 경우가 많다. 너무 빨리 말하면 아이가 인지할 시간이 부족하다.
이 시기에 천운이가 가장 좋아했던 음악은 클래식 효과음이 들어간 클래식 구연동화였다. 동화의 내용을 읽어주면서 그 안에 짧게 클래식이 흐르는 구연동화다. 직업 근성인지 몰라도 난 배경음악으로 흐르는 클래식에도 관심이 갔다.
구연동화의 성우 목소리와 동화의 내용과 이 클래식을 어쩌면 이렇게 잘 매치시켰는지 감탄을 금치 못했다. 클래식이 처음이어도 아이는 그 선율이 나오면 내용을 알아차리고 ‘빨간 모자’ ‘늑대’ 등의 단어를 웅얼거렸다.
아이는 다양한 구연동화책을 통해서, 사운드북을 가지고 놀면서, 엄마와 나누는 대화로 소리를 경험하고 익히는 중이었다. 그렇게 16개월 아들은 천방지축 수다쟁이 기운센 소년이 돼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