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래식으로 말 걸기

-라흐마니노프 '보칼리제'

by 피아니스트조현영


매거진의 제목을 ‘전지적 피아니스트 시점’이라고 지었다. 나뿐만 아니라 세상의 모든 사람들은 자신의 직업과 관계된 성향을 버릴 수가 없다. 언젠가부터 모든 것을 피아노와 연관시켜 바라보고 느낀다. 대학에서 강의만 할 때는 바라보는 대상이 오직 학생들 뿐이었다. 타인의 삶이 궁금하지도, 알고 싶지도 않았다. 그 제한적인 공간을 뛰쳐나와 아니 나올 수밖에 없게 된 그 이후부터 난 달라졌다.


자고로 예술을 하는 사람들이란 고독한 습성을 가지고 있다. 혼자서 생각하고, 혼자서 연습하고, 급기야 피아니스트는 대부분의 무대에 혼자 서는 경우가 많다. 독주회를 하는 경우는 90분의 시간을 무대에 오롯이 혼자 있다. 거의 모든 것이 혼자 하는 일이다. 그 시간을 견뎌내는 것이 어렵기도 했지만 은근 즐기고 있었다. 여럿이 있는 것보단 혼자 있는 것을 좋아하고, 불특정 다수와 이야기를 하는 것보다 특정 소수와 깊게 알아가는 관계를 좋아한다. 그런 내가 어찌어찌하여 사람들과 만나게 됐고, 남들의 일에 세상 살아내는 일에 관심을 갖게 됐다. 아니 갖어야만 했다. 자의 반 타의 반으로.


처음엔 상당히 불편한 부분이 많았다. 남에게 피해 주고 싶지도 않고, 남에게 피해 받고 싶지도 않던 나는 상대가 듣고 싶어 하는 이야기와 음악을 연주해야 하는 것이 영 탐탁지 않았다. 그러나 혼자만 좋아하는 글은 일기고, 혼자만 이해하는 곡은 남들에겐 외계어나 마찬가지라며 세상은 나에게 타인에게 말 거는 작업을 계속하게 만들었다. 아직도 그 부분에 서투르지만 나는 매번 버벅거리며 연습을 하고 있다.

클래식 보단 가요가 좋고, 심각한 이야기보다는 말랑말랑하고 공감 가는 이야기를 좋아하는 타인들에게 나는 어떻게 말을 걸어야 할까?


이럴 줄 알았으면 일찌감치 20대에 직장 생활도 해 보고, 실연의 아픔도 겪어보고, 결혼도 일찍 해서 엄마의 경험도 쌓아 둘 걸. 내가 너무 사회를 등지고 살았나?

그런 후회를 해 봤자 이제 와선 다 소용없는 일이다.


대학에서 강의하는 한 가지 목표만이 인생의 전부라고 생각해서 오랫동안 공부했고, 공부를 하느라 돈을 벌 엄두를 못 냈다. 보기 싫은 사람은 적당히 피해갈 수 있었고, 타지에서 공부하는 학생이라는 신분은 상당 부분 나를 격리 속에서 자유롭게 했었다. 그 자유를 누린 덕에 지금의 나는 모든 게 더디지만 하나씩 겪어내고 있다. 늦었지만 엄마가 됐고, 늦었지만 타인과 섞여 살아내는 방법을 터득 중이다. 누군가는 나의 클래식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고, 피아니스트가 바라 본 세상에 관심을 갖는다. 물론 관심 갖지 않는다고 슬퍼할 일도 아니다. 언제부터 타인의 관심에 집중했다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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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만 각자의 리듬으로 살아내고 있는 세상에서 내가 느끼는 리듬과 소리가 조화로울 수 있게 다독일 뿐이다.


음악은 말을 초월한다.

Rachmaninov: Vocalise, Op. 34/14 - Gautier Capuçon & Gabriela Montero

라흐마니노프 보칼리제 작품번호 34-14/ 첼로 고티에 카푸숑

https://youtu.be/lCFZkAB5eN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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