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토벤 피아노 소나타 17번 '템페스트' 3악장, 32번 2악장
뮤즈> 미세먼지 때문에 창문 한 번 열기 힘들고, 가시거리도 짧아서 여러 모로 불편한 요즘입니다. 목이 칼칼한 건 물론이고, 눈이 따끔거려서 뜨고 있기도 힘들어요. 맑고 신선한 공기가 있을 때는 그 소중함을 못 느꼈는데, 편하게 숨 쉬었던 날들이 아주 절실하게 그립습니다.
디오니소스> 너무 당연한 일이라고 생각했던 일상이 이렇게 불편해지고 힘든 걸 보면 항상 누리고 있는 모든 것에 감사해야겠어요.
뮤즈> 누리고 있는 것에 감사하는 삶. 반대로 이야기하자면 없는 것, 결핍에 대해 어떤 태도를 취하면서 살아야 할지 생각하게 됩니다. 오늘 이 결핍을 이기고 음악의 성인이 된 베토벤 이야기를 해보려고 합니다.
디오니소스> 베토벤. 이름은 정말 많이 들었고, 대표적인 곡으론 운명, 전원, 합창 교향곡 같은 작품이 있죠?
뮤즈> 오늘 베토벤의 곡을 또 소개하는 이유가 있어요. 바로 3월 26일이 베토벤 선생님 돌아가신 날입니다. 1770년 12월 17일 라인 강 근처의 본에서 태어난 베토벤은 1827년 3월 26일에 생을 달리 합니다. 특히 작년 2017년은 서거 190주년이라 세계 곳곳에서 크고 작은 연주가 많았습니다. 베토벤 선생의 서거일을 맞아서 온종일 베토벤 피아노 소나타만 들었더니 꿈에서도 그 음악이 들리더라고요.
디오니소스> 얼마나 좋아하면 꿈에서도 음악이 들리나요? 대체 어떤 곡인가요?
뮤즈> 두 곡 모두 피아노 소나타입니다. 먼저 첫 번째로 들려드릴 곡은 피아노 소나타 17번 폭풍의 3악장입니다. 개인적으로 제가 정말 힘들고 방황할 때 많이 듣는 곡이고, 큰 위로가 되는 곡이기도 합니다.
디오니소스> 베토벤 피아노 소나타라.... 피아니스트들이 신약성서처럼 공부하는 곡이라고 알고 있는데, 17번이면 어느 시기 작품인가요?
뮤즈> 네. 베토벤은 전 생애를 거쳐 32곡의 피아노 소나타를 작곡했습니다. 초, 중, 후기 이렇게 3 시기로 구분하는데, 17번은 작품번호로 분류하면 31-2입니다. 그러니까 작품번호 31에 3곡이 세트로 있는데 그중 두 번째라는 뜻이죠.
일단 이 곡은 1802년 베토벤이 하일리겐슈타트에 가서 자살을 결심한 그 해에 작곡이 됐습니다. 그리고 출판은 일 년 뒤인 1803년에 됐어요. 피아노 소나타 16번 17번 18번이 한 세트 안에 들어있는데, 17번은 유독 어둡고 긴박합니다. 친구이자 제자인 쉰들러가 이 곡이 어떤 곡인지 묻자, 셰익스피어의 희곡 ‘템페스트’를 읽어 보라고 했다는데서 이 제목의 유래를 찾을 수 있어요. 1802년 자신의 인생에서 가장 질풍노도의 시간을 견뎌내면서 작곡한 곡이라 더 의미가 깊습니다.
더군다나 베토벤이 이 곡에 대해서
“나는 지금까지 쓴 작품에 만족하지 않네. 지금부터 새로운 길을 찾고자 하네!”
라고 말했습니다.
어쩌면 유서를 쓰고 난 이후 변화된 자신의 심경을 대변하는 말이면서, 작품세계에 대한 제2의 방향성을 제시하는 것이기도 합니다.
디오니소스> 그야말로 죽음의 길에서 돌아온 사람이니 그 심경의 변화가 아주 컸을 것 같아요.
뮤즈> 제가 독일에서 음악치료학을 조금 공부했는데요, 그때 유서를 직접 써보는 수업이 있었어요. 강의실에 관을 하나 두고 그 관에 자기가 들어간다는 상상을 하면서 죽기 전 유서를 쓰라고 했는데, 뭔가 말로 표현하기 힘든 무거운 감정을 느꼈습니다. 슬프기도 하면서, 지나온 삶이 그립기도 하고,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미래에 대한 지표를 설정하게도 하면서. 아무튼 복잡다단한 심정이었어요. 베토벤도 그런 경험을 하고 나서 작곡하게 된 곡이라 더 심오하고 복잡한 심경이었을 거란 상상을 하게 됩니다.
디오니소스> 32살 가을에 죽음의 문턱에서 다시 돌아온 베토벤의 작품입니다.
피아노 소나타 17번 ‘폭풍’의 3악장 피아니스트 빌헬름 캠프
베토벤 피아노 소나타 17번 op.31-2 라단조 3악장
디오니소스> 처음부터 끝까지 한 번도 쉬지 않고 연주하는 게 맞나요?
뮤즈> 잘 들으셨어요. 이렇게 박자와 리듬이 처음부터 끝까지 동일한 속도로 끊이지 않고 연주되는 것을 무궁동이라고 합니다. 무궁동 또는 상동곡이라고 하지요.
방금 들은 이 연주는 빌헬름 캠프의 실황인데요, 가끔 잘못 누르는 음도 있지만 그런 것들이 귀에 거슬리기보다는 노연주가의 기품이 느껴지는 연주라 저는 아주 존경하는 마음을 갖으며 들어요.
디오니소스> 저는 대체 인생의 방황이 언제쯤 끝날까 했는데, 모름지기 인생이란 누구에게나 끝없는 방황이군요.
뮤즈> 죽는 순간까지 우린 방황을 하겠죠. 참 희한한 게 이 3악장을 직접 연주하거나 앉아서 조용히 듣다 보면, 처음엔 조용하다가 점점 격해지는데 태풍의 눈처럼 높이 솟았다가 잠잠해지는 그런 장면이 그려집니다.
디오니소스> 베토벤의 피아노 소나타 두 번째 곡은 어떤 곡인가요?
뮤즈> 피아노 소나타 중 마지막인 32번 소나타입니다. 작품번호 111인데 이 곡은 2악장 구성으로 뒷 2악장은 변주곡 형식입니다. 저희는 2악장 감상해 보려고요.
디오니소스> 베토벤의 마지막 소나타는 어떤 느낌일지 기대가 됩니다.
뮤즈> 저는 이 곡을 들을 때마다 고백성사 받는 기분이 들면서 그냥 눈물이 흘러요. 이 소나타는 말기인 1822년에 작곡이 마무리되어 출판됐습니다. 베토벤의 역작인 장엄미사를 작곡하던 그즈음입니다. 전체 연주 시간이 약 22분인데, 2악장이 13분 정도로 1악장 보다 조금 깁니다. 한 가지의 주제를 가지고 계속 변화를 시켜가며 만든 변주곡 형식이죠.
디오니소스> 장엄미사를 작곡하면서 만든 곡이라 더 경건한 느낌이었겠어요.
뮤즈> 보통 소나타가 3악장 구성인데, 2악장까지만 작곡하니까 옆에서 사람들이 왜 3악장을 작곡하지 않느냐고 물었답니다. 베토벤이 답하기를 시간이 없어서 작곡을 못했다고 했다는데 그건 정말 우스갯소리였을 거고요, 진짜는 더 이상 할 말이 없을 정도로 폭발적인 에너지를 다 쏟아서 사족 같은 3악장이 필요 없었던 것 같아요.
하나의 주제가 5개의 변주로 변화하는데, 여기에는 따로 붙는 변주 번호는 없습니다. 그냥 들으면 하나의 곡으로 쭉 이어지는 느낌도 들어요.
디오니소스> ‘위대한 예술가 베토벤을 기억하며’라는 주제로 두 곡 설명 들었습니다.
조현영 피아니스트는 왜 베토벤이 위대하다고 생각하시나요?
뮤즈> 음... 굉장히 철학적인 질문인데요.
보통의 사람들은 어려움이 닥치거나 절망스러운 순간에 대부분 포기를 해요. 아니면 도망가거나 회피하는데, 베토벤은 항상 정면승부를 합니다. 용감한 사람이에요. 죽음에 대해서도 정면승부를 해서 자살하려 했던 마음을 다시 고쳐 먹은 거고, 이 마지막 소나타를 작곡할 때도 조카 칼의 양육 문제로 여러 가지 심사가 괴로웠던 순간인데 역작을 만들어 냅니다. 귀는 거의 들리지 않았고, 자기가 좋아했던 여자들은 온통 다른 남자의 부인이나 애인이 됐고, 형제애가 대단하진 않았지만 동생인 칼도 죽음에 이르러서 망나니 조카 칼을 키우게 생겼어요. 그래도 다 도망가지 않고 받아들입니다. 전 그래서 이 사람이 참 위대하다고 생각해요. 적어도 자신의 삶에 비겁하지 않고 당당하면서 도리를 하고 있고, 음악가 입장에선 사명감까지 뛰어났거든요. 저라면 다 포기했을 거예요.
디오니소스> 무덤에서 자신의 음악을 듣고 있을 위대한 베토벤을 기억하며 피아노 소나타 32번 2악장 피아니스트 알프레드 브렌델의 연주로 듣겠습니다.
베토벤 피아노 소나타 32번 op.111 다단조 2악장
피아노 알프레드 브렌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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