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니상 수상작 어쩌면 해피엔딩 감상 후기

감정보단 악기, 가사, 연출, 구성, 무대, 조명의 관점에서

by 최인성


처음으로 뮤지컬 감상 후기를 써보려고 한다. 작년에 토니상 수상으로 화제가 된 어쩌면 해피엔딩 후기이다. 1월에 두산아트센터에서 한번, 4월에 지방 투어 평택 공연 한번 이렇게 두 번 보았고 운이 좋게 두 번 다 완전히 다른 배우 조합으로 볼 수 있었다. 나는 거의 대극장 뮤지컬을 주로 소극장 뮤지컬을 잘 보지 않는다. EMK, 오디 컴퍼니, S&Co 회사들의 서양, 판타지 감성의 대형 작품들 스타일을 매우 좋아한다. 어쩌면 해피엔딩은 내가 주로 좋아하던 그런 작품들과는 이질적인 면이 큰 작품이다. 그럼에도 토니상 수상작품이기에 꼭 보고 싶었고 처음 봤을 때 어쩌면 해피엔딩만의 감성과 연출 음악에 다른 쇼크를 받았고 그래서 한 번 더 보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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뮤지컬 후기에서 대부분 배우들에 대한 평가 그리고 스토리가 어때서 이런 글들을 주로 쓰는 것 같은데. 배우들에 대한 얘기는 짧게 하고 스토리에 대한 부분은 스킵 하려 한다. 주로 내가 이 어쩌면 해피엔딩이 가진 대극장과는 이질적이면서도 매력적인 연출, 음악, 가사, 조명, 악기 등등에 대해 얘기해 보고 싶다.


우선 1월에 본 배우 페어는 정휘, 방민아, 박세훈 세 배우의 조합으로 봤다. 박세훈 배우 얘기는 뒤에서 제임스 이 캐릭터 얘기를 할 때 다뤄보겠다. 이 작품에서 이 배우의 롤은 조연이면서도 임팩트가 커서 따로 얘기해 보고 싶다. 다른 주연 배우들보다 정휘, 방민아 두 주연 배우의 뮤지컬 경력이 짧다 보니 약간의 걱정도 있었고 티케팅 할 때 앞에 2자리 잡는 것도 수월했다. 다만 걱정은 걱정일 뿐 젊은 두 배우의 조합 덕분에 올리버, 클레어 두 캐릭터의 풋풋함이 배가 되었고 뚝딱뚝딱 거리는 로봇 연기도 더 귀엽게 느껴졌다. 그리고 정휘 배우 역시 올리버 배역 중에는 막내이지만 뮤지컬 경력은 오래되었기에 무대 위에서 센스 있는 개그 애드리브도 잘 보여주었고 뚝딱뚝딱한 로봇 역할에 대한 묘사도 확실하게 보여주었다. 방민아 배우 또 걸스데이 활동하며 노래와 무대 경험을 잘 쌓아온 만큼 가창력이 대단해서 뮤지컬 노래를 불러도 어색함이 없었다. 또 인간 연기가 아닌 로봇을 묘사하는 연기도 어색함이 전혀 없이 잘 보여주었다. 대극장의 다른 주연 타이틀 배역에서도 걸스데이가 아닌 뮤지컬 배우 방민아로 만나고 싶다. 이 막내 배우 둘의 조합이 풋풋하고 귀여움을 증폭시킨 덕분에 극에 더 몰입해서 볼 수 있었던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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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에 본 배우 조합은 신성민, 전미도, 고훈정 세 명의 조합이었다. 주연 신성민, 전미도 두 배우의 경우 뮤지컬계에서 고참의 입지를 가지고 있고 전미도 배우는 최근에 왕과 사는 남자 영화로 천만 배우로 등극했기에 표를 바로 구하지는 못하고 운 좋게 취소표를 잡아서 보게 되었다. 역시 고훈정 배우의 얘기는 제임스 역할에 대해 다룰 때 얘기해 보겠다. 이 두 주연 배우들의 조합이라 당연히 연기력과 가창력 모두 잘할 것이라 기대도 되었지만 이전에 봤던 정휘, 방민아의 조합이 풋풋함을 잘 보여주었기에 이 두 선배 배우들이 과연 이 정도의 귀여움을 보여줄 수 있을까? 사실 걱정이 되었다. 그러나 역시 대선배 배우들답게 나이는 나이일 뿐이고 연기력으로 귀여움과 풋풋함 뚝딱뚝딱거림 로봇의 어색함까지 모두 다 완벽히 표현해 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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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주로 보던 대극장의 극들은 음악감독님의 지휘 아래 다양한 현악기들, 관악기들 그리고 기타, 베이스, 건반, 드럼 각종 다양한 악기들이 조합되어 뮤지컬 음악 하나를 만든다. 어쩌면 해피엔딩은 매우 다른데 음악감독님이 무대에서 직접 피아노를 연주하시고, 현악기 (바이올린, 비올라, 첼로) 연주자 4명이 무대 뒤편에 올라서 함께 연주한다. 무대 위에는 없지만 드럼 연주도 라이브로 진행된다. 1 피아노 + 4 현악기 + 1 드럼 최소한의 악기 조합으로 되어있는데 이 작품에 어울리는 풍성한 사운드를 들려준다. 어쩌면 해피엔딩이 극적이고 시끄러운 작품은 아니라 드럼 연주는 약하고 섬세하게 있는 듯 없는듯하는 게 매력적이고 첼로도 악기 연주 내내 베이스처럼 낮은 음을 계속 깔아준다. 나머지 현악기 3대는 역할분담을 나눠서 그런 것인지 3대뿐인데도 풍성한 사운드를 만들어 준다. 대망의 음악감독님이 연주하는 피아노는 뮤지컬 넘버에만 쓰이는 것이 아니라 배우들의 대사 중간에도 재즈풍으로 연주되어 관객들에게 아날로그 한 느낌을 준다. 아래의 두 곡 'Goodbye, My Room'과 'My Favorite Love Story'는 아날로그 재즈풍 그리고 미니멀한 느낌을 잘 살려준 곡들이다.

https://youtu.be/e5-zB_OuEr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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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youtu.be/M4gxLgUOdXw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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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세훈, 고훈정 두 배우가 맡은 제임스 외 기타 등등 역할은 이 작품에서 조연이지만 매력적인 롤을 맡는다. 제임스는 인트로 부분에서 '우린 왜 사랑했을까'라는 재즈풍의 곡을 부르며 등장하는데 사운드가 지지직거리는 듯해서 처음 볼 때 극장 사운드에 이상이 있나? 했었다. 그런데 이건 의도된 부분이고 오래된 라디오로 재즈풍, 아날로그 한 음악을 듣는듯한 분위기를 살리려는 설정이었다. '우린 왜 사랑했을까' 곡은 짧은 곡인데 중간에도 한번 나오고 작품 마지막에도 나오고 여러 번 반복해서 나온다. 이 어쩌면 해피엔딩의 작품 전체를 관통하는듯한 가사로 되어있다. 그리고 후반부에 피아노 치는 음악감독님과 제임스 역 배우가 롤 체인지 하여 박세훈, 고훈정 배우가 직접 재즈 풍으로 '우린 왜 사랑했을까' 피아노 연주를 하는 부분이 있는데 이 작품에서 내가 가장 놀라고 멋지다는 느낌을 받은 부분이다. 내 표현력이 좋지는 못해서 감정 표현은 어렵지만 배우가 재즈풍으로 그리고 감정을 담아서 피아노를 연주하는 부분이라 감명받았던 것 같다. 이 곡 자체도 아날로그하고 가사도 좋으니 한번 듣고 가보자. 아래는 내가 봤던 배우들 버전은 아니고 뮤지컬 조연 배우들 중에서 가장 강력하고 화려한 경력을 가진 최호중 배우의 버전이다.

https://youtu.be/j6bZxJVzva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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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쩌면 해피엔딩의 다른 특징은 무대 위의 캐릭터 외에도 강력한 의미를 가지는 소품들이다. 특히 화분은 어쩌면 해피엔딩에서 조연 같은 연할이다. 올리버에게 소중한 존재이며 여행도 같이 다니는 화분은 정말 소품의 영역을 넘어 대사 없는 조연과도 같다. 또 클레어가 화분 너는 친구이고 나는 여자친구라는 대사를 하며 화분이 정말 사람 같은 존재처럼 그려진다. 그리고 종이컵 전화기, 노란 우비, 충전기와 어댑터, LP 판과 LP 플레이어 등 함축적이고 캐릭터들의 감정과 무언가를 표현하는 장치들이 많다. 이 글을 쓰는 나는 문학적인 해석 능력이 좋지 않아 이 소품들의 의미를 하나하나 분석할 수는 없다. 다만 이 소품들이 어쩌면 해피엔딩에서 중요한 의미를 가진 어쩌면 뮤지컬의 앙상블 같은 존재임은 확실하다. 화분은 정말로 조연일 것이다.


어쩌면 해피엔딩의 무대 구조는 간단하다. 대규모 무대 전환도 없으며 운전 장면에서 자동차처럼 중간 무대 중간이 올라오는 것, 모텔씬에서 무대 뒤편 변하는 것, 반딧불이 장면에서 숲 장식 나오는 것 정도 외에는 무대가 다 똑같다. 다만 뒷배경 스크린이 바뀌면서 다양한 화면 전환을 보여준다. 다른 극들보다 구조가 간단하지만 스크린이 무대 전환을 확실하게 보여준다. 계절과 시간의 변화, 도시 속을 운전하는 느낌, 제주도로 가는 해저터널, 제주도의 노을 지는 여름 저녁, 여름밤의 숲속, 반딧불이로 가득한 숲속, 기억을 지우며 이별하는 로봇들의 마음속 배경을 간결한 스크린으로 모두 이쁘게 표현했다. 반딧불이 숲속 장면, 기억을 지우는 장면의 연출은 조명의 역할도 컸다. 조명의 색 변화와 움직임이 이 장면들을 잘 살려 주었다. 그리고 조명의 역할이 극대화되는 부분이 한곳 있는데 올리버와 클레어가 서로 사랑을 확인하는 장면에서 올리버는 청록색, 클레어는 분홍색 조명 아래 있어 대비되는데 이 둘이 키스하면서 이 둘이 하나의 커플이 되듯이 조명이 하나로 합쳐진다. 이러한 시간과 배경의 변화 그리고 캐릭터들의 상태 변화를 최소한의 무대 변경, 스크린, 조명 조합으로 잘 표현해 낸 부분이 굉장히 인상 깊었다. 아래 '반딧불에게'를 부르는 장면인데 실제 무대만큼의 느낌은 아니지만 한번 같이 보면 좋을 것 같다.

https://youtu.be/irxNODEXAj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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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으로 이 어쩌면 해피엔딩의 매력적인 부분은 가사이다. 2020년대 들어서 많은 노래들이 나오는데 노래의 가사는 원래 시라는 본질을 잃어버리고 있다. 아래 첨부할 '사랑이란',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두 곡은 내가 어쩌면 해피엔딩에서 가장 빠진 곡들이다. 가사가 정말 시적이고 어쩌면 나 같은 90년대 초반 색들의 감성에도 딱 들어맞는 잔잔한 발라드 곡들이다. '사랑이란' 가사 중 '사랑이란 봄날의 꽃처럼 아주 잠시 피었다가 금세 흩어지고 마는 것 사랑이란 슬픔과 같은 말' 문장이 아름다운데, 사랑을 봄날의 꽃과 같다 그리고 사랑은 슬픔과 같은 말은 8090 년대에나 나올법한 아날로그한 감성을 전달한다. '날 웃게 하는 너의 말투와 너무 따뜻한 너의 예쁜 마음들'이라는 구절도 사랑을 시작하는 사람들의 감정을 표현한다. 노래의 가사가 아니라 시라고 해도 어색하지 않을 예쁜 문장들이다. 또 다른 이 뮤지컬의 명곡 '그럼에도 불구하고'에 '생각만큼 즐겁지만은 않을 걸 알아 생각보다 어쩜 더 많이 힘들지 몰라 사랑하는 일' 구문은 연애던 결혼이던 행복하기도 하지만 힘든 일도 많다는 점을 로봇의 감성으로 나타낸다. '너와 나 잡은 손 자꾸만 낡아가고 시간과 함께 모두 저물어간대도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랑하려 해' 란 구절은 시간이 많이 흐르고 같이 늙어가고 힘들어도 서로 의지하며 사랑해야 한다는 결혼 이후의 사랑을 나타내는 듯한 문장이다.

https://youtu.be/Zropm42HNP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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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youtu.be/roL36Cm2Qu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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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어쩌면 해피엔딩은 내가 기존에 좋아하던 대극장 뮤지컬들과는 전혀 다른 방식으로 다가온 작품이었다. 나는 슈퍼 T라서 감정적인 부분을 미세하게 풀어내기보다는, 연출, 음악, 구성, 캐릭터의 롤, 무대, 조명 같은 요소들에 집중해서 이 작품의 특이점을 정리해 보았다. 이 작품은 큰 스케일이나 화려한 장치 없이도, 제한된 구성 안에서 얼마나 밀도 있게 완성도를 끌어올릴 수 있는지를 보여준다. 특히 최소한의 악기 편성으로 만들어낸 음악, 단순하지만 효과적인 무대 구조, 그리고 조명과 스크린을 활용한 장면 전환 방식은 기존 대극장 뮤지컬과는 확실히 다른 결을 가지고 있었다. 가사 역시 같은 방향성을 가진다. 설명하거나 과장하기보다는, 짧은 문장과 이미지 중심으로 구성되어 있다. 예를 들어 '사랑이란 봄날의 꽃처럼 아주 잠시 피었다가 흩어진다'는 문장은 감정을 직접적으로 풀어내기보다 하나의 이미지로 정리하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랑하려 해'라는 문장은 이유나 과정 없이 결론만 남겨둔다. 이런 구조는 서사적이라기보다 시에 가까운 형태라고 볼 수 있다. 결과적으로 이 작품은 화려함이 아니라 구성과 완성도, 그리고 불필요한 설명을 덜어낸 표현 방식으로 기억에 남는 공연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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