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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노사임당 Dec 15. 2023

글린이 한 뼘 자라기

누구나 그럴 때 있었잖아요.

마음이 불편하다. 이렇게까지 불안할 일인가 싶다.




지난 일요일. '사서'인 지인을 만나 수다를 떨었다. 어쩌다 보니 입도 손도 수다쟁이가 된 나는 7:3 정도로 혼자 떠든 것 같다. 빈 속에 털어 낳은 카페인이어서인지 교감신경은 자극을 받았고. 가늘게 떨리는 어깨를 슬쩍 쳐다보았지만 그럼에도 입은 쉴 새 없이 떠든다. 맹렬히 수다를 떨다 3만큼 얘기를 하던 지인에게 들은 짧고 소중한 말이다.


근무 중인 도서관에 출간 작가 초청 강연을 했다는데. 책이름이 무엇인지 작가의 이름도 생각이 나지 않지만 그 작가분은 "하루에 4시간씩 꼭 글을 쓴다"는 얘기를 한다. 독자가 원하는 글의 내용이라든지 글이 맛깔나기 위한 팁도 아닌 꾸준함에 대한 요구였다.

반드시 출간을 위해서가 아니더라도 글은 쓰고 싶은지. 지인은 나에게 매일 글을 쓰느냐 물었다.


슈퍼 근무할 때 주 5일 최소 3시간씩 육퇴 후 글을 썼다. 그만두고도 거의 매일이다시피 3시간 이상씩은 썼다. 그저 재미있어서. 머릿속 급류를 약간 터주는 용도로. 고혈압 있는 사람이 샤워를 한다든지, 명상으로 간단한 도움을 구하듯. 울증이 있는 사람에게 울압을 낮추는 용도로. 글을 쓰고 나면 마음도 많이 잔잔해졌으므로. 어제 새로 산 바비인형이 생각나서 설레며 일어나듯. 나중에 자판 두드리며 글 쓸 생각에 신이 났다. 말도 많아졌는데, 글도 많아졌다.


회를 거듭할수록 글의 발행 숫자가 높아질수록 의미 없는 글자를 언제까지 왜 써야 하는지에 대한 의문이 들기 시작한다. 관심받고 싶은 병도 있어서 저장글에 쌓아놓고는 또 참기 어렵다 보니 더 그런가 보다. 퇴고보다 발행을 누르는 행동이 더 빠르다.


며칠이라도 좀 뜸해져 보자. 글 쓰는 걸. 글로 수다 떨며 스트레스 푸는 용도로만 사용치 말고 삶 속에서 나를 성숙도 시켜보자. 혼자 생각도 하고 사람사이 얘기도 하면서 말이다. 동시에 읽고 있는 몇 권의 책도 각각 진도 좀 빼고 말이다.


그렇게 뜸 해봤다. 쓰던 게 버릇이라도 된 듯 글들이 손가락을 맴돈다. 좋은 문장이라서가 아니라 그 글을 잡으면 자동모드 글주행 탑승이 가능한데 타지 않는다. 글을 흘려보내면서 마음이 조금 더 단단해지고 글이 야무져지기를 기대한다.

그런데 의도와 다르게 글을 쉬니 생각도 쉰다. 다시 앉아 쓰려니 글이 딱딱 막힌다. 별 내용 없어도 술술 써지던 손가락이 자율주행 레벨 4에서 0등급으로 강등이다. 수동으로 하는데도 기어가 자꾸 딱딱 걸린다.



잘 쓰고 못쓰고 상관없이 쓴다며? 쓰고 싶은 내용이 있어서 쓰는 거라며? 이럴거면 그럼 그냥 쓰자. 손가락이 그냥 자판 두드리며 놀게 놔두자. 손이 생각할 거리를 주지 말자. 잘잘못을 따지고 잘했고 못했고를 정하는 건 죄송하지만 읽는 분들 숙제로 넘겨버리자.


다시 쓰려고 마음을 정한다. 무조건도 아니고 의무도 아니며 계획도 아니다. 그냥 좋아서 하는 일 좋을 때 하면 된다. 그런데 의무 아닌 의무를 하지 않을 때, 마음이 불편하다. 불안하다. 밥 먹고 고혈압약 깜빡 안 먹은 거 같다. 혈압이 걱정된다. 수면제를 안 먹어서 잠이 안 올까 봐 불안하다. 그냥 그때라도 먹으면 되련만 잠이 오지 않을까 불안함이 터졌다. 목적 없는 글쓰기. 계획 없는 글쓰기. 쓰고 싶을 때 쓰는 글쓰기를 할 테다. 계획서를 쓰고 목차를 정하고 개괄적인 내용을 쓰지도 말자. 감풀은 글이라도 괜찮다. 글속에 터울거림도 흘릴 테다. 냅다 쓰자. 청소 해 놓으면 돌아섰을때 더러워지지만 글은 막써도 남잖은가. 부끄러움만 내 몫이 아니면 되는거다. 나는 왜 일기가 아니라 남들 앞에 글을 써야 하는가? 궁금해하지도 말고 그냥 막글을 쓸란다. 쓰다보면 땔깜이라도 되겠지. 뭘 불태울지는 모르지만 말이다. 불안을 불편을 조금은 없애주길 바라며 오늘도 막글을 막 던져본다.


<토박이말>

감풀다: 거칠고 사납다.

터울거리다: 어떤 일을 이루려고 애를 몹시 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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