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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노사임당 Dec 14. 2023

술을 한 잔 했습니다.

해장 중입니다.

연말입니다. 모임이 많아지는 시기입니다.




저도 작년의 두 배나 잡혔습니다. 어제 한 건 있었고요. 오늘 또 한건입니다. 매일 저녁으로 집을 비우는 실정입니다. 아직도 엄마 찾는 강아지들이 집에 있는데도 불구하고요. 1차는 국가 수산업을 걱정하지는 않았지만 횟집에서 하고요. 룸에서 건배사까지 외치며 술을 마셨습니다.("우리는!!! 둘이다!" 하나회 범죄자들 때문에 '하나다'라는 구호는 역사 속으로) 2차는 역전할머니댁에 가서 맥주를 마셔야 된다던데 하이볼을 마셨습니다. 처음 마셔본 하이볼에서 28년 전 체리소주맛이 나더군요. 맛있었습니다. 3차는 즐겁게 노래솜씨를 뽐낼 차례입니다. 이럴 줄 알았으면 연습이라도 한곡 할 텐데 말입니다. 당연히 분위기를 시원하게 할 발라드지요. <신용재의 첫줄>정도 첫 곡으로 불러야 겨울왕국을 만들수..그걸 녹음해서 작가님들 귀에 들려드려야 하는데...(오만가지 생각이 들다 종국에는 웃음을 터뜨리실) 어깨춤까지 추며 3차 고고쏭을 불렀지요. 겐조인지 준코인지 "우리가 가면 나이가 많아 가장 끝방으로 밀려날 거다" "진짜냐?" 언성을 높였지만 못 갔습니다. 드림 렌즈를 끼워줘야 하는 아이가 각 집에 한 명씩 있는 모임이라 거기서 적당히 헤어졌습니다.

11시를 넘겨 들어간 집에서는 남편이 혼자 식탁에 앉아 맥주를 마시고 있더군요. 표정이 좋지 않았습니다. 웃으며 안부를 물어도 대꾸가 시원찮더군요. 누가 보면 화가 많이 난 것 같은 얼굴이었습니다. 워낙에 포커페이스라 화 안 났을 겁니다. 인상이 좀 무서울... 뿐입니다. 예, 부부동반 아닙니다.


오늘은 드레스코드까지 정해져 있는 모임입니다. 혹시 모자랄까 걱정이 되어 조금 전에 낮잠으로 늦은 시간 몰려 올 피곤도 물리쳐 놓았습니다. 이제 7시까지 파티장으로 가기만 하면 됩니다. 빨간색 트렌치코트를 입고 갈 겁니다. 얼죽트(얼어 죽어도 트렌치코트)가 되지 않게 챠콜색 내복을 맵시 좋게 입어야겠습니다. 각자 맛난 간식이든 먹을거리를 준비해서 외쿡식으로 같이 먹을겁니다. 샛길로 빠진 얘기를 하자면 우리 슈퍼에서 일하고 있을 때 친구가 온 적이 있습니다. 그 친구가 '우리 슈퍼'가 적힌 조끼를 입은 저를 보더니 "(학교에서 잠깐 일할 때 만난 사이라 서로를 샘이라 부릅니다), 빨간색 잘 어울린다! 안 어울릴 거라 생각했는데" 그 말에 그날 당장 빨간색 트렌치를 구입한 것입니다. 도대체 언제 입으려는 지는 모르겠지만. 그걸 오늘 입을 수 있어 행복합니다.

오늘 모임은 특이하게도 책방에서 합니다. 아니 찻집에서? 채도운 작가의 보틀북스라는 책방 겸 다방인 8평짜리 아기자기한 옹기종기할 사랑방으로 갑니다. 특이한 번개파티입니다. 아, 미리 날짜도 정하고 여론을 모아 진행하는 것이지만 올해 한 번으로 끝날 반짝 모임일 겁니다. 도서관에서 무료로 진행한 글쓰기 수업  썼던 글 모음집 출판기념회인데.. 책이 연말에 나온 나머지 연말모임이 되어버린 겁니다.


이렇게 되어 제 올 한 해 연말 모임은 두 건이나 되는 것입니다. 그렇죠. 작년에는 없었어요. 애 키우는 엄마들이 연말에 술 마시고 자정에 들어가고 할 여유가 잘 안 나요. 노래방을 가도 가슴이 콩닥콩닥 애들 걱정이 들 겁니다. 이제 아이가 혼자서도 잘 수 있는 나이이지만 관성이 잘 사라지지 않네요. 오늘 아침 둘째를 깨우러 들어가니 귀요미가 눈을 뜨자마자 "엄마 오늘은 몇 시에 올 거야?" 하고 묻네요. 엄마 없는 저녁을 맞은 적이 없는 아이라 그것부터 신경이 쓰이나 봐요.

그럼에도 저는 후회 없습니다. 바쁜 엄마 때문에 마음의 상처를 받았다 생각한 제가 선택한 전업주부니까요. 더 잘해주지 못한 후회는 있습니다. 


직장에서 나태한 모습 보이지 않으려 관리도 해 봅니다. 어제 늦게까지 치킨에 술까지 마셨으니 아침도 거릅니다. 속을 좀 비우는 거죠. 점심은 제가 좋아하는 시리얼을 먹습니다. 해장시리얼이 되었네요. 김밥도 좋아합니다. 해장김밥입니다. 속을 비운다면서 많이 먹는다고요? 시리얼은 아기 밥그릇에 한 술 떴고요. 김밥도 한 줄~! 적진 않..

밥솥에 밥 없는걸 제일 싫어하지만 저녁때 갓 한 밥을 먹이려 찬장과 내동실 털어 먹습니다.


20년 만에 해장하며 보여주기식 일기를 씁니다. 제가 사랑하는 그림 동아리분들과 함께 한 어제는 아쉽기도, 딱 좋기도 했습니다. 자정이 가까워오는 시간 택시에서 내리는 것도, 혼자 집으로 들어가는 것도 생경했습니다. 20대 후반 (술)상무시절 늦은 밤 집으로 들어가던 제 어린 시절도 잠깐 생각나고요. 1분이나 걸릴까 싶은 그 길에서 여러 생각이 들었습니다.


남편이 바쁠 겨울입니다. 11월 말부터 5월 말까지 하루도 쉬지 못하고 일을 해야 하는 때라 벌써 피로해 보입니다. 이럴 때는 맞벌이를 했어야 하는데 하는 생각도 듭니다. 혼자 짊어져야 할 가장의 무게에 미안해집니다. 힘 내고 있는 사람에게 힘 내라고도 못하겠고 딸기 팔 생각이나 더 열심히 해 봐야겠네요.


저혼자 놀고 와서 미안해서 그런거 아닙니다. 그럼요. 



화가는 색을 봅니다.

작곡가는 소리를 듣습니다.

주부는 살림을 합니다.


많은 훌륭한 작가님들은 글을 씁니다.

작가는 글을 씁니다...라고 처음에는 쓰려고 했는데 이건 아니지..하며 쓰지 않았는데 천재작가님께서 댓글도 다신김에 당당히 써 봅니다. 저 빼고 다른 작가님들은 글을 쓰시니까.ㅎㅎㅎ

(저는 그냥 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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