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노사임당 Dec 19. 2023

요 요 요물!

고작 너 때문에.

나라에서 배우라는 만큼 다 배웠다. 공부에 소질도 취미도 재능도 없지만 곰처럼 끝까지 했다. 뭐 낙제 안 시키는 과에 들어가 학업을 했으니 망정이지 낙제시키고 어렵고 했으면 호랑이처럼 못 참고 중도포기했을지도 모른다. 어려운 취업도 해 봤고 힘들지만 10년 넘게 직장생활도 했다. 더는 못하겠다며 출산과 동시에 그만두긴 했으나 타의도 있었으니 완전 포기만도 아니다. 아이를 놓고 보니 직장 생활 힘들단 소리 참 부질없었구나 싶었다. 뭐 이렇게 눈꽃만큼도 아는 게 없고 재능도 없는지 매일이 매 시간이 절망의 연속이었다. 그럼에도 그 모든 고통을 상쇄해 주는 안구에 넣어도 안 아플 아이는 빛이었다. 그렇게 제법 한 고비 한 강을 건너며 이성적으로든 지적으로든 조금은 성숙 나부랭이가 차곡차곡 레벨 업 되었지 않을까 생각했다. '시간이 헛되지만은 않겠지' 믿었다. 조금 전까지도 말이다.


며칠 전부터 기분이 연못 속 가라앉은 진흙처럼 내려갔다. 별 기분 나쁠 일도 없었다. 큰 아이가 방학을 했다는 변화는 있지만, 나랑 참 안 맞아 같이 있는 순간이 불편은 하지만 그걸로 그렇다고 하기에는 억지스러웠다. 지나친 감이 있었다. 남편이 스트레스를 받는 업무 과중한 겨울이지만 그것 때문만이지도 않다. 전에는 남편이 육아를 전혀 도와줄 수 없는 계절이 주는 고됨이 부부사이 냉랭한 분위기를 만드는 주요 원인이었다. 지금은 아이들이 내 손 없이도 먹고 자는 게 크게 문제없을 만큼은 자랐다. 늦게 오는 남편 야식 챙겨줄 여유도 생겼다. 주변에 아이로 알게 된 집이 4집이다. 그중에 전교 1등이 2명 전교 2등이 1명일 정도로 공부 못하는 내 아이가 희귀한 편이다. 남의 집 애들은 전교 1~2등도 쉽게 하는데 공부 못하는 아이가 내 탓이기만 한 것 같아 자책도 되지만, 딱히 가슴을 칠 만큼도 아니다. 이리저리 따져봐도 별 특이사항이 없다. 그런데 이상하다. 기분이 별로다.


그냥 나갔다. 날씨가 춥다고 진눈깨비가 내리는 날씨라고 집에만 있었더니 윗집으로 온 정신이 모이는 기분이 들어서였다. 어제는 산책을 갔다 오는 길에 윗집 7살짜리 남자애를 만났는데 심장이 쿵쿵거렸다. 그냥 보기만 해도 무섭다. 애가. 집에 들어와서까지 진정이 되지 않아 음악을 있는 대로 크게 틀었다. 정신을 분산시켜야 했다.

오늘도 나갔다. 아무 일도 없으면 아무것도 아닌 일에 예민해진다. 밖으로 나가 신선한 공기도 먹고 나간 김에 동네 못 보던 대문 구경도 하자. 동네를 휘휘 돌면서 목적도 없이 나온 발길이 불안하려나 했지만 생각보다 약간의 환기가 되었다. 그렇지만 막 세수한 얼굴처럼 맑아지진 않았다.

하늘을 올려다본다. 이 동네는 농사를 짓고 하우스를 하고 옛집들이 많은 곳이라 하늘이 지역을 넘어까지 보인다. 도시를 넘어 훤히 보이는 지리산이 걸어서 닿을 듯 가깝다. '눈이 쌓였네. 지리산에는' 생각하다 배경처럼 보이는 하늘이 뿌였다. 날씨가 어제처럼 그냥 그렇다. 흐리다.



이런 망할.. 기분이 왜 이런지 알겠다. 날씨 때문이다. 배울 만큼 배웠고 사람에게 시달릴 만큼 시달렸고 세상사 제법 겪을 만큼 겪은 줄 알았는데 겨우 햇빛을 못 봐서 그런 거다. 기분이 가라앉고 숨이 잘 쉬어지지 않고 윗집으로 자꾸 정신 집중이 되는, 우울할 거리를 찾는 내 뇌는 해를 못 봐서 그런갑다. 고작 그런 것 때문에 이렇게 휘둘리고 보니 참 사람 하찮다 싶다. 아니 내가 참 하찮다.


'해야 떠라~ 광합성 좀 하게.' 제 아무리 잘난 척을 해도 나란 인간 하찮고 자연의 도움 없인 기분조차 조절이 안되는구나. 내일은 좋아하는 찻집에라도 가야겠다. 기분 푸는데 돈이 필요하다면 좀 써야지. 자연을 이기는 건 이것뿐인 건가.


그렇게라도 조절이 되는거라면 다행. 돈에 좀 휘둘려야겠다.



(요거 요거 요물이다.


며칠 전부터 또 심계항진이다. '쿵' 누가 부딪히는지 커다란 소리에 그만 심장이 바람 빠진 풍선 같다. 갈 곳 없는 손은 허공을 허우적 대고 발은 목적지를 잊었다. 그러니 쓰는 글마다 '우울 한 스푼'

뭐 좋은 거라고 그렇게나 예민하게. 글이 요렇게 우울해지냐? 유쾌함이나 즐거움은 어디 있니? 내일은 무엇이 되었든 유쾌함을 사냥해 오리라 다짐해본다. )

매거진의 이전글 무엇이 나인가?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