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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노사임당 Jan 29. 2024

친구

속을 내어 보인다는 것에 대해

날씨가 많이 풀렸다는 얘기로 글을 열고 싶었어요. 하지만 아직은 추운 1월, 오늘 언니의 하루는 어떠셨을까요?



저는 양산으로 첫째를 데리러 갔다 왔어요. 외출했지만 한낮의 태양 속에서만 다닌 길이라 많이 춥진 않았어요. 그렇다고 따뜻했다고 할 수도 없었지요. 잠깐 내려 걸어본 길에서 고드름도 보았으니까요.


지난 금요일 우리가 두 번째(따로) 만났고 서로를 조금 더 알게 된 것 같다고 느껴요. 어반스케치 동아리에서 만난 지 반년 정도 되었지만, 개인적으로 얘기를 나눌 기회가 거의 없었으니까요. 하지만 참 희한하죠? 겨우 육 개월 정도 알고 지냈으면서 서로에게(저만인가요?) 이렇게 의지를 하고 깊이 사모하게 되리라 생각이나 했을까요?


지난번 만나서 '쓰다'라는 이름의 모임을 만들자고 했지요. (유진 씨와 수요일 저녁에 잠깐 만나 서로 해둔 말이에요) 나중에 자세히 말씀드리겠지만 제 속을 글자로 꺼내어 쓰고 나서 마음의 병이 '씻은 듯이 나았다'라고 한다면 거짓이더라도 제법 좋아졌어요.

몇 년 전 정신과 치료를 받으면서 변하고 싶다는 생각을 시작했어요. 아니 그런 생각을 한 후 상담을 받은 것이겠지요. '화'가 뭉치지 않게 꺼내야겠다고 생각하면서 변한 것 같네요. 겨우 어깨 뭉침으로 시작했다 팔도 들지 못하게 아파지는 어깨 병처럼 조금씩 모아보니 많이 곪았더라고요. 병원에서 물꼬를 트고 주변에 (뜬금없는)기적소리처럼 (못 알아들을)말을 날리고 브런치에 글로 뱉어내면서요. 좋아졌어요. 좀 원래 저였을 것 같은 사람으로요. 판도라의 항아리 바닥에 깔려 있던 희망처럼 더러운 감정과 화를 날려버리니 밝고 즐거운 제 성격만 남았네요.

좋은 걸 같이 하고 싶은 마음에 조금은 조르는 마음이었지요. 언니나 유진 씨를 보면 마음에 썩은 싹이라는 게 있을까 싶긴도 했지만, 꼭 도려내야 할 것이 있기에 글을 쓰는 건 아닐 거예요. 서로를 아는 방법으로도 나를 말 대신 표현하는 방식으로도 쓸 수 있겠지요. 친구에게 속상한 마음 수다로 하듯이 글로 털 수도 있고요.


 주말을 지냈지만 아직 진척은 없네요. 화두를 던지고 싶었는데 말이에요.

작가 흉내에 빠져 살다 보니 글테기라는 말을 써 보고 싶었는지도 모르죠. 좀 두려웠어요. 글을 쓴다는 것이요. 세상에는 좋은 글 멋진 글을 쓰는 분이 가까운 곳에 흔하디 흔하게 있는데.... 글을 쓴다는 것이 좀 우습게 느껴졌거든요. 처음 글을 적으며 느꼈던 카타르시스, 정화 뭐가 되었든 글을 쓰는 것이 주는 순수한 즐거움이 아니라 어떤 음흉한 목적이 있었기에 이런 기분이 드는 건지도 모르죠. 요 며칠 제가 책을 내고 싶다느니 어쩐다느니 하며 호들갑을 좀 떨었거든요. 저는 언제쯤 어른이 될까요? 가끔 그런 기분이 들어요. 통념으로 보자면 어른도 제법 어른인데 말이에요. 남편 말마따나 '딸기 수출' 때문에 이야기를 시작했는데 자기 이종 사촌얘기까지 한다는 진정한 수다쟁이처럼 글을 그렇게 시끄럽도록 써 재꼈으면서 글테기라는 말을 하고 싶었다니... 우스워요.


매일이다시피 쓰던 글을 쉬니 마음이 아주 불편했어요. 해야 하는 일을 하지 않고 있다는 기분이 주는 그 찝찝함이요. 화장하고 나갔다 왔는데 '이'만 닦고 잔 것 같은 기분이요. 아침에 얼굴이 퉁퉁 붓는 것 같은 기분이요. 언니는 모를 수도 있겠지요? 저는 어릴 때 술 먹고 그런 적이 있어서....


유진 씨가 저 들으라고 하는 소리가 있어요.

"아니, 언니! 거짓말 좀 하지 마세요. 언니, 사임이 언니는 맨날 친구 없다는 소리 한다니까요?! 즐겁고 유쾌하고 사람 좋아하면서 친구 없다는 거짓말이 뭐래요!" 이렇게요.

전화부를 쳐다볼 필요도 없었어요. 저는 진짜 친구가 없거든요. 장난 아니에요. 초등, 중등, 고등까지 친구는 단 한 명도 없고요. 대학 친구는 한 명이예요. 그것도 저를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보듬어주는 3살 많은 언니 단 한 명요.


친구라는 게 그런 거 같아요. 서로 즐거움도 나누지만 불편한 얘기도 나누는 사이라는 거. 세상 많은 감정 중에 굳이 나누지 못할 감정이 무얼까? 생각하게 되는 사이가 친구가 아닐까 싶은데....

저는 나눌 수 없는 감정이 너무 많았어요. 친구들 사이에서 까불고 웃기며 '오락부장'을 맡곤 했어도 제 속을 아무에게도 털어놓지 않았으니까요. 싫은 부분을, 그 많은 허물을 어떻게 당당히 꺼내겠어요. <미움받을 용기?> 흠. 그런 게 있었다면 좋았겠어요. 미움은커녕 관계도 없는 사람의 눈 찡그림마저 내 탓으로 여기는 어린 날 저의 성격 때문에 잠시도 긴장을 풀 수 없었어요. (어떻게, 왜 변했는지 얘기 드리고 싶어요)


언니에게 친구가 되어주셔서 고맙다는 말을 간단히 쓰고 싶었는데 어쩌다 보니 200자 원고지 20장을 쓰고 있나 보네요. 그만 써야겠어요. 대신 언니에게 다 하지 못한 말은 남겨뒀다 혼자서 적어 놓을 거예요. 다음에는 불안에 대한 얘기를 언니와 하고 싶어요. 아마 세상에 있는 명사에 대해 언니와 이야기한다면 제가 한 천년은 살아야 할 것 같지만 상관없어요. 제가 살아있는 동안에는 떠들 테고 제가 사라진다면 말도 글도 잃어버릴 테니 그때는 내 할 일 다 했다 하며 속 시원히 갈 거니까요.


부끄러움도 없이 제 허물에 대해 떠들 수 있게 귀를 열어주셔서. 맛있는 커피까지 사 주셔서. 감사했어요, 언니. 수요일 그림방에서 뵈어요. 언니의 그림 같은 동생 노 반장 올림.



이 글을 <쓰다>모임의 매일 글쓰기 숙제로 겸사겸사 갈음합니다.

사진은 모임의 예쁜 막내 유진씨임을 밝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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