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주 일 벌이며 다 해낸 후의 결괏값으로 그저 신이 났다. 까불었다. 웃음은 흘러넘쳤고 의욕은 남아돌았으며 '뭔데? 더 해도 되겠는데?' 하는 기분이었으니, 다 한 줄 알았겠지. 그러니 또 일을 벌였겠지. 그러다 보니 이젠 정말 그 (벌이기만 한)일들이 임계점을 딱, 넘겨버린 거지.
해 놓은 건 없다. 해야 할 것들을 어떻게 쳐 낼 건지에 대한 계획도 없다. 해내고 나면 얼마나 뿌듯할지 하는 눈에 그려지는 결과물들만이 주변을 안개처럼 떠돌 뿐. 화가로 작가로 캘리그라퍼로 불리며 이런저런 모임에 초대받을 상상에 인터넷 옷집을 기웃거리다 딱 걸린다. 외투가 든 택배가 현관 앞에 유치권 행사하듯 자리를 차지했다. 결과물을 상상하는 것도 모자라 결과를 위해 준비까지 해 놓은 거다.
나에게는 병이 있다.
쇼핑하러 가면 남편이 항상 하는 말이 있다.
"안에 입을 옷을 좀 사. 외투만 자꾸 사냐? 제대로 된 티셔츠도 없으면서…."
그렇다. 외투만 자꾸 사는 '겉옷병'.
외투는 처음 보는 사람도 자주 보는 사람도 나라는 존재를 인식하게 된다면 보게 되는 물건. 나를 모르는 사람에게 선입견을 품게 하기 위한 물건으로 사용하기도 하는 물체. 실내에 들어가도 여간해선 벗을 수 없는 내 정체성과도 같은 것, 겉옷. 처음 보는 사람도 자주 보는 사람도 겉으로만 훑어볼, 입은 사람의 입성이나 취향을 '알만하다'며 추측게만 하는 '책의 제목'과 같은 의미로써의 코트.
돈 좀 있어 보이고 싶으면 진도모피, 속에는 목 늘어난 김건희 티셔츠를 입고. 돈이랑 또 뭐 다른 것도 있어 보이고 싶으면 루이뷔통 카디건과 홈쇼핑에서 4개 3만 원 주고 산 색깔 맞춤 니트를 입는 식으로 신경 쓰는 아이템. (참고로 진도모피도 루이뷔통 카디건도 없다) 가을이 혹은 겨울이 가까워지면 낡았을 티셔츠나 셔츠보다 외투를 고르고 싶다. 속옷이라도 보일 듯 낡은 티셔츠가 얼마나 불편할지 낡음을 보이지 않기 위해 해야 하는 수고가 얼마나 번거로울지는 신경 쓸 필요가 없다. 몸이 좀 불편하겠지만 고귀한 정신은 남들에게 뻐기고 싶은 기분에 몸 구석구석이 보내올 신호를 원천 차단하며 또 새 외투가 갖고 싶다. 그런 외투를, 겨우 참고 참았던 외투를 신이 난 사이 질러버린 거다. 집 앞 현관 앞에 대자로 뻗어있다. 내 머릿속 해야 할 일들을 해내어 주지 않는다면 유치권을 거두어들일 생각이 없는 외투가 말이다. 남편의 목소리가 또 들리는 것 같다.
"안에 입을 옷을 좀 사. 자꾸 코트만 사냐?" 나에 대해 너무 알고 있다. 이 남자 항상 핵심을 찌른다.
외투 입을 생각 마라. 이제 네게 필요한 것은 라운드티. 셔츠. 니트. 뭐가 되었든 속을 받쳐줄 옷이다. 결과를 받아 들기 위해 해야 할 일만이 남았다. 결과를 상상할 수는 있지만 잡을 수도 없다. 유치권은 내가 건네준 글과 그림의 값어치에 달렸다.
새로 산 겉옷을 낡은 옷 속에 숨겨본다. 균형이 맞지 않다. 수많은 과정 후 그 많은 작업을 감싸듯 결과가 나와야 하는데 코트가 많다.
포장지가 아니라 물건 만들 시간.
공장 돌릴 시간이다.
(슈퍼우먼의 <즐거운 을질 생활>을 이북으로 내 보려고 해요. 조용히 내면 되는데요. 열정에 응원을 보내던 작가님께서 첫 프로젝트를 과감하게 시작한다네요. 처음을 함께 하고 싶어서요. 출판사 첫 삽! 응원!!
근데 다시 글을 보니 진짜 쓰레기 비슷한 원고라.. 고칠 점이 너무 많고 거기에 그림도 다 새로 넣어야 하고. 괜한 일 벌였나 싶고 ㅋㅋㅋㅋ 그랬다는 말씀이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