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 보기 어렵다. 장 바구니 물가가 온몸으로 느껴진다.
동네 골목 풍경 (그림#노사임당)
"채소값이 올랐습니다. 육계값이 치솟았습니다. 양파가..."식으로 뉴스 앵커가 읊어주던 개별 물가 얘기가 아니다. 이젠 총공세라도 퍼붓듯 전기세부터 모든 먹거리까지 꼼꼼하게 오른다.
장 보러 오는 사람들도 변하는 듯하다. 가랑비에 옷 젖듯 조금씩 부담을 느끼는 것도 같다.
한 엄마가 장을 보러 왔다. 다 큰 딸은 성인이지만 엄마 따라 젤리라도 사러 온 것처럼 함께다. 같은 여자지만 늘씬한 키 멋진 외모라 동반자처럼 함께하는 딸을 훔쳐보게 된다. 무얼 사러 왔을까 궁금하여 눈으로 좇아본다. 산책 나온 김에 장 보는 느낌으로 편하게 들어온 모녀는 생각보다 짧지 않은 시간을 머문다.
양배추 한 통, 달걀, 두부, 대파, 우유. 특별할 것 없는 간단한 장보기다. 가볍게 들어온 모습 그대로 단출한 쇼핑. 표정도 부드럽고 모녀 사이도 왠지 무척 좋을 것 같다. 엄마의 움직임은 과장됨이 없고 정갈하다. 아무 말하지 않아도 서로가 흔들림 없이 편안한 사이임이 느껴질 정도다. 오늘 처음 본 고객님에게 호감정이 인다. 가족 사이가 사랑으로 뭉쳐있는 모습만 봐도 나는 이상한 게 눈이 아프다. 그 잠깐 동안 따뜻할 가정이 그려지며 마스크 속 내 입은 아픈 눈과 다르게 혼자 미소 짓고 있다.
그때였다. 키가 훤칠한 중년남자가 모녀에게 가까이 온다. 아는 분인가? 그렇게 보이지는 않지만 조금 이상한 분인가? 하는 것도 잠시. 손에 들려있던 초코버터링을 같은 계산대에 급히 올린다. 잠시 기다리시라 말하려는 찰나,
"이건 왜 가져왔어?"
"그냥 버터링이 없어서 가져왔어"
"아빠, 저기 있을 건데? 본 거 같은데"
갑자기 가족 모두가 버터링 사냥을 떠난다. 아빠는 멋쩍은 표정으로 모녀를 따라가고 잠시 후 손에는 초코링 대신 버터링이 들려있다.
"아니, 양배추 한 통 사러 왔는데 왜 따라와선.."
물건 잡기가 무서운 요즈음 간단히 필요한 것만 사려 나섰던 엄마의 계획은 실패로 돌아갔다. 무서운 물가보다 더 무서운 건 과자를 사려는 아기심(어린아이 마음)인가 보다. 같이 가자는 말을 하지도 않았는데 그림자처럼 따라나선 아빠는 엄마의 등 뒤에서 반은 웃고 있다. 아내가 남편을 보며 원망의 대사를 했지만 표정엔 전혀 '화'가 없다.
계산을 위해 카드를 꺼내는 아내를 대신해 장 본 물건을 상자에 담는 남편. 당신의 듬직한 짐꾼노릇하러 왔다는 듯 상자를 들어 올린다. 아내가 길을 나서자 남편이 아내에게 미소를 보낸다. 미안함을 어깨로 말하며. 등에 미워하지 말라는 말도 얹어서. 내린 어깨와 굽힌 등으로 아내에게 보내는 미소를 보니 이해가 갔다. 딸의 외모를 닮은 아빠의 미소는 참 이뻤다.
승자의 얼굴로 짐을 드는 당신. 교만할만한데 하지 않더라.
등짝을 얻어맞지 않고도 저렇게 버터링을 쟁취하는구나.
그 착한 얼굴이 다했다.
겸손하게 짐을 드는 당신은 승리하였다.
싸우지 않고 과자를 얻었으니 강동 6주를 되찾은 서희처럼 당당히 가세요.
초코까지는 실패하였지만 원하던 건 그게 아니었던 거 같네요. 전혀 상관없어 보이니 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