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노사임당 Mar 22. 2024

병원 갑니다

문제를 풀어 보려고요

평소 같지 않다. 안 좋다. 정상은 아닌 것 같은데. 그래도 그냥 조금 더 두고 볼까? 아니야. 늦춰 좋을 게 없다. 특히 아플 때는 말이다. 별거 아닌 거스러미 건드렸다 살을 찢어야 하는 치료를 하게 될지도 모른다. 손톱깎이로 상처 주지 않고 처리할 일을 굳이 뜯어 피를 보고 그곳으로 염증이 퍼지기까지 해 일주일 넘게 손가락을 못 쓰게 될 수도 있다. 가벼운 증상은 가벼울 때 치료하는 게 맞을 거다.

아파트 상가에 있는 병원으로 간다. 뭐라고 할지. 예상과 달리 돈이 깨지는 것일지 지레 이런저런 생각이 든다. 뭐 그냥 간단한 증상. 밖으로 표나는 증상 하난데 별일 있겠어. 가능하면 미루고 덮어 놓고 모른척하는 걸 즐겨하는 나지만 이 정도는 쉬울 수 있다. 미뤘을 때 문제가 두 배가 되는 일들을 겪었으니 그러며 후회한 과거도 있었으니 서둘러 나가는 거다. 문제가 새끼를 치기 전에 해결하는 게 정답이란 생각이 들었으니. 증상이 보이는 뻔한 현상까지 혼자 추측하고 나쁜 생각으로 채울 필요는 없겠다. 기껏해야 돈 좀 나간다는 결과는 받을 수 있지만 돈. 까짓것 달라는 대로 주면 되지. 그리고 그게 그렇게나 많이 드는 치료라면 의례 물어보겠지. 이 정도 비용이 들 수 있습니다. 지금 치료할까요? 아니면 다음에…? 그러면 도망 나오면 되는 거고. 아, 아닙니다. 조금 더 있다 하겠습니다. 하면서 말이다. 3분도 걸리지 않는 곳이지만 이 정도 생각은 자동으로 튀어나온다. 다행히 그 정도 시간이면 그래도 가보자는 결론까지 만으로 도착이 되는 가까운 곳. 도착이다.


안녕하세요?

예. 어떻게 오셨습니까?

자꾸 빨간 불이 들어와요. 여기에 이렇게요. (사진을 보여준다.)

아. 그럼 모니터가 안 켜지겠네요.

예.(어떻게 알았지?)

그럼 본체를 봐야 합니다.

가져올까요?


아까 가면서도 아픈 애를 가져가야 하나 어째야 하나 고민은 했는데 역시나 가져오란다. 그래, 아프면 아픈 애를 의사 선생님께 보여드리는 게 맞지. 다시 집으로 온다. 주섬주섬 선을 뽑고 조금 더 정신을 차리며 무릎 나온 바지를 벗고 멀쩡한 바지로 갈아입는다. 슬리퍼를 꿰찼던 발엔 운동화를 껴 신고 무겁지 않은 컴퓨터를 들고 달랑달랑 간다. 아직 아무것도 변한 것도 해결된 것도 없는데 무언가를 시도했다는 것. 해결하려 발을 뗐다는 데 맘이 가벼워져 있다. 나도 이렇게 문제를 풀 수 있는 사람이라는 걸. 누군가에게 의지하지 않고 자발적으로 숙제를 마칠 수 있는 사람이라는 당연하면서도 낯선 감정에 기분이 나쁘지 않다. 자기 효능감이 이런 사소한 일 하나에도 들 수 있다니. 허술한 인간이라서인지 사는 건 심각한 거 없는 것들의 해결로 가벼워질 수 있는 것이었는지 모르겠다.


돌리고 맞춰놓은 나사도 없는지 맨손으로 금방 옆구리를 연다.

어? 저한테 하신 거네요?

예. 하하

아. 기억난다. 푸르지오 사시죠?

예. 하하

음. 컴퓨터에 먼지가 많이 꼈어요.


초록색 자처럼 생긴 무언가(마더 보드?)를 꺼내 지우개같이 생긴 거로 지운다. 벅벅.(아는 물건이 없으니 설명이..) 다시 켜 본다. 아무 일도 없었던 듯 켜진다.


디리링

어. 어 그래? 그럴 때는 보드를 어쩌고 부팅이 저쩌고 옮겨놓고 삭제. 아이디. 열 개. 왜 그렇게. 그러면. 그러니까 그래서 안 되면 그렇게 해... 몇 분간 전화가 이어진다.


'먼지가 껴서 그랬다고? 그러면 아픈 건 아닌데.. 그래도 돈을 달라고 할까? 얼마나?.. 수고비? 혹은 문은 열었으니 출장비(내가 왔는데?) 같은 기본요금을 내라고 할까..'또 돈 생각만 하고 있다.


먼지 좀 털어드릴까요?

예? 아 하하 예. 좋죠.^^

길어진 통화가 미안해서인지 이걸 해주려고 그냥 보내지 않고 기다리게 한 건지는 몰라도 본체를 밖으로 가져가 취취 소리를 내며 작업을 한다.


다 됐습니다. 가셔도 됩니다.

아... 그냥 가도 되나... 아하하. 감사합니다. 사장님^^

달라고 했으면 기분 나빠 울퉁불퉁했을 거면서 무료라고 하니 또 은근히 미안하다. 사람이 이렇게 간사하니.


집에 와서 아까 행동의 재감기버전으로 컴퓨터를 잇는다. 전원 버튼을 누른다. 아무 소리도 없이 켜진다. 아.. 반갑다. 컴퓨터야. 모니터야. 어제부터 글도 못 쓸 뻔했는데 이렇게 일상이 반가울 수가. 겨우 먼지 좀 털었는데 아무 일도 없었던 듯 돌아오다니. 나 사는 것도 아무것도 아닌 일들이 쌓여 기분이 나빠지고 화가 쌓이고 울화가 되어 정신과 치료가 필요해지곤 하는지도... 너나 나나 사소한 것에 목숨을 거는 미물인 건 같나 보다.


사소한 친구의 한마디에 마음이 삐끗하곤 한다. 그게 쌓이면 미움이 되고 화가 되어 싸움도 하고 원수 같은 사이마저 된다. 다시는 보지 않는 관계가 되곤 한다. 매일매일 조금씩 쌓인 먼지가 한 겹 열 겹 쌓인다. 털 수 있고 견딜 수 있는 수준일 때는 표가 나지 않더니 임계점을 넘기니 켜지지도 않는 통증으로 느껴진다. 고장 난 기계가 되어 고유의 일을 할 수가 없다. 컴퓨터가 컴퓨터가 아니게 된다. 검은색 기계 덩어리. 고철이 된다.

우리 마음에도 작은 먼지들이 매일 인다. 이곳에서 저곳에서 들어온 먼지들. 때론 눈에도 보이지 않는 것. 어느 때는 잡을 수도 있는 크기의 이물질. 그런 것들이 가끔은 문제를 일으키고 돌이키기도 힘든 상처를 남기게 된다. 대단한 척 위대한 척하는 인간이라는 생물체는 작은 먼지 조각에 쓰러지는 예민한 종족일지 모른다.


컴퓨터 먼지를 털듯 우리 마음도 가끔 먼지를 털 곳. 사람. 행동. 무엇이 있어야 하는 건 아닌지. 필요하지도 않은 그런 것들이 쌓여 나도 모르게 숨 쉴 수 없는 곳으로 가라앉을지 모르니 말이다. 그러지 않도록 말이다.


온봄달 스무이틀 닷날 씀


오늘의 먼지를 털 무엇 당신은 있으신가요? 혹시 브런치인가요?^^ 작가님들께는 글이 있으니 참 다행이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드는 오후였습니다.

 


담에 의미가 있나 싶게 윗쪽은 땅에 붙어 있습니다.ㅎㅎㅎㅎㅎ

매번 지날 때마다 뭐 하는 곳일까 궁금했습니다. 어제 2시간이나 일찍 나온 바람에.... 1시 약속인데 11시도 되기 전에 나온 바람에 들렀습니다. 알고 보니 제실이더군요. 아주 이뻐요. 장소도 좋고요. 이길로 올라가면 벚길이 있거든요. 다음 주에는 꽃이 이쁠 거예요. 구경시켜 드릴게요. 꽃이 예쁘게 핀 곳도 많은데 이곳만 좀 춥네요.

아줌마 인상 펴!
매거진의 이전글 약속을 지키려고요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