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노사임당 Mar 23. 2024

봄 그리고

인생이 시작된 날에 대해

1년의 74번째(윤년의 경우 75번째) 날에 해당한다.


수도권의 경우 이맘때쯤이면 기상학적으로 겨울이 끝나고 봄이 시작되는 날이다. 네이버에 뜬 설명이다. 3월 15일. 3월 15일이라…. 뭔가 좀 이쁘긴 하다. 음력으로 2월 15일은 보름이다. 한가위 생각도 나고, 정월대보름도 떠오르는 보름이라니 왠지 좀 덩달아 의미 있어 보인달까. 커다랗고 둥글고 풍성한 달이 내 편일 것 같은 그런 느낌. 밤의 어둠을 은은한 빛으로 가득 채워주는 보름이라니. 그해는 달력상으로도 3월 15일. 양력 15일이 보름은 아니지만 꽉 찬 달을 상상하게 하는 15라는 숫자의 매력을 맛본 후라 그냥 좋았다. 보름달이 없는 15일마저.

 

지금으로부터 사십몇년 전. 봄이 시작되는 날 나는 태어났다. 이견은 없었다. 봄과 내 생일 그리고 음력 2월 15일. 그날을 달력상으로 찾으며 새해 새 달력을 만나는 날의 설렘도. 누구를 사귀기는 어렵지 않지만, 그 친구가 둘도 없는 짝꿍이 되어 선물까지 챙겨주려면…. 언제나 시간이 부족했다. 어중간한 새 학기라 친구에게 선물을 받은 적은 한 번도 없지만 그거야 나도 안 주면 그만이니 약간만 섭섭하면 되었다. 매년 달라지는 생일을 찾고 아무것도 없는 날이라도 미역국에 푸짐한 밥상을 받으며 그래도 한 번 웃을 수 있는 날이 그리 싫지만은 않았다. 생일은 기다리는 맛이라고 당일은 어디 숨겨둔 이벤트나 선물이 있으려나 어슬렁거리게 되지만 이렇게 아무것도 없다니 인생 참 허무하다 생각되는 귀빠진 날이라도 그 아무것도 없는 날을 매일매일 기다리는 행복을 위해 하루 희생하는 날이 생일이라면 꽤 쓸모는 있었다. 364일이 그날을 기다리며 즐거울 수 있다면 하루 정도야. 지금도 우리집 둘째는 연말 생일이 지나고 올해는 며칠 남았다며 기다리고 있다. 생일은 그런 날 같다.


결혼하고 보니 아이들 생일은 양력으로 하고 있다. 음력의 번거로움 혹은 정확성은 우리까지가 아닐까 싶어서다. 아이들에게까지 이해하기 어려운 음력의 유례를 설명하며 문화를 잇고 싶지는 않았다. 귀찮고 번거롭다. 그러다 보니 나와 남편의 생일은 근 십 년 동안 아이들에게 일부러 알려줘야 하는 날이었다. 내 생일은 올해 3월 24일이란다 얘들아. 아버지 생일은 8월 2일이란다 하며 나도 궁금하지 않은 날을 알려줘야 하는 조금은 이상하지만 어쨌든 남은 가족들을 위해 챙겨야 하는 그런 날.

하던 대로 하는 버릇이라 친정과 시댁 가족들이 아직 음력에 축하해 주더라도 그런 거야 넘기면 되었다. 그것이 그날을 고집하는 이유는 아니었다. 말은 하지 않았지만 버리지 못했던 이유는…. 결혼하고 생일날 오던 어머니의 전화 때문이었다. "막내야, 미역국은 끓여먹었나? 박 서방은 왔고? 애들은 건강하고?"하는 한 글자도 틀리지 않고 같은 말을 하는 엄마에게 대충 둘러대기도 거짓말을 하기도 싫어서였다. 왠지 그날 미역국을 먹지 않으면 생일도 못 챙겨 먹는다며 걱정 아닌 걱정을 하실 것 같고 날짜를 바꾸었다 말씀드리면 양력보다 음력이 정확한데 왜 그걸 그렇게 했냐는 식의 타박을 들을 것 같았다. 생일상도 못 챙겨 먹었다 솔직히 얘길 하면 걱정하여 하는 말씀이겠으나 비난식의 말투를 생일까지 듣고 싶지 않았고 본인이 낳은 내 생일의 정확성을 버린 것을 싫어하실 것을 알기에 그러지 못한 것이다. 아직도 누구의 자식 누구의 딸이라는 위치는 어른보단 어린 자식의 시간으로 돌아가는 연유 같다. 한마디로 변화를 위해 들어야 할 말들로 어머니와 설전 아닌 설전을 벌일 일이 두려웠다. 혼나는 것 같은 시간을 겪기 싫었다.


하지만 언제부턴가 슬그머니 어머니도 본인 생신 이외에는 챙기지도 않으시고 알고 보니 언니도 오빠네도 다 양력으로 생일을 챙기고 있었다. 어머니 팔순에 알게 된 사실에 이제야 생일을 단일 일자로 고정할 결단을 내리게 된 것이다. 뭐 올해는 이렇게 음력으로, 내일 차려 먹겠지만 내년부터는 그냥 태어난 해 달력의 날. 3월 15일로 정하는 거다.


내년 생일부터는 나도 생일이 세 개가 아니라 한 개다. 봄이 시작되는 그날 내 생일도 시작될 거다. 생일 독립일 3월 15일 되겠다. 봄의 시작 그리고 태어남. 그게 새롭게 시작될 내 하나뿐인 생일날이다.

우리 동네 꽃집에 한번 가봤습니다^^

토요글방 숙제로 급하게 적어 내용이 아주 편협합니다.ㅋㅋㅋ

매거진의 이전글 병원 갑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