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스를 태워 보냈다. 배다른 자식이라 그런가 강하게 키우고 싶은 마음인 건지도 모르겠다.
남편은 소작농을 겨우 면한 농부의 아들이었다. 그럼에도 모두가 그만한 농사꾼네 아이들이라 가난을 모르고 자랐다. 친구들끼리 독사를 잡아 뱀 장수에게 팔고 그 돈으로 같이 사탕을 사 먹던 추억을 간직한, 나랑 동갑인데 아버지뻘이 아닐까 싶은 기억을 갖고 자란 사람이다. 냉인지 두릅인지를 캐서 공판장에 친구와 팔고 과자 사 먹었다는 얘기를 해주는 친구다. 아버지가 소 판 돈을 대학생 때(부산 유학 시절) 술값으로 홀랑 가져가는. 아버지가 잠바 안 주머니에 돈 있으니 필요한 만큼 가져가라고 해서 그랬다고 당당히 말하는, 내 기준에서는 돈 개념 없는 어찌 보면 철부지였다. 가난하게 자랐지만 가난한 줄 모르고 자란, 마음은 부자의 그것이었다. 그런 쪼들리지 않는 마음가짐이 좋았다.
통장에 돈이 있으면서 가족을 들들 볶는 어머니 밑에서 자랐다. 직장 생활에 적응할 즈음 평생 하고 싶었던 미술학원을 끊었을 때도 그런 걸 왜 하냐고 물감을 왜 사냐며 돈 쓰는 것만 지적하던 어머니였다. 하고 싶은 걸 하면서도 눈치가 보여 두어 달 만에 그만두며 모든 기준이 돈인 삶이 얼마나 끔찍한 지 또 한 번 느꼈다. 그래서 그런지 돈 쓰는데 죄책감을 갖는 내게 남편의 돈에 대한 느긋한 마음가짐은 전염이 되었다. 필요도 없는 외투를 싸다는 이유로 또 사도 손에 착착 감긴다는 핑계로 만년필을 또 사는 걸 보면서도 농담으로라도 입에 올리지 않았다. 항상 그렇듯 지금은 기억도 안 나지만 남편이 이런 말을 언젠간 했더랬다.
당신 결혼하고 처음에 어쨌는지 아나? 물건 사면서 3만 원만 넘어가면 나한테 물어봤데이. 사도 되냐고!
내가? 지금은 내 의지로 집도 사는, 내가?
그래. 그 얘기 지인들한테 했을 때 사람들이 얼마나 놀랐는지 아나? 그런 사람도 있냐고!
지마켓에 물건 사고 포토 리뷰 쓰며 100원을 반드시 모으기 위해 기를 쓰는 생활을 하지 않아도 마음 편한 배우자. 양배추가 냉장고에서 썩어도 "살림 이따구로 살 거냐?"" 잔소리하지 않는 남자. 종량제 봉투를 반만 채운 채 버리면서도, 그런 사치를 하면서도 남편 앞을 편안한 걸음으로 걷게 해주는 사람. 그런 짝지라 고마웠다. 사실은 너무도 소중하다. 내 첫 삶에서 다시 만나기 힘든 귀인이다.ㅋㅋㅋㅋ
그런 남자를 버스 태웠다. 보통 같으면 그냥 차를 끌고 갔을 테고 술을 먹었으니 대리를 불러왔을 남자를. 버스 노선 엉뚱하게 불러줘 몇 코스 걷게 했지만 당당히 버스 번호를 불러줘 태웠다. 잠깐이긴 했지만 백수 시절에도 택시 타고 다니던 형부를 좋게 보지도 않았으면서 벌이도 없는 주제에 택시니 대리 불러왔다면 대책 없다는 욕을 해 줬을 거면서 착한 얼굴로 버스를 타러 가는 남편의 뒷모습에 그만 눈물이 터진다.
아니, 본인의 구차함을 못 참는 것이면서 당당히 내세우진 못하고 타인을 위하는 척하는 짓인지 모르지. 내가 이렇게 돈 걱정을 하는 게 싫어져 남편의 그런 모습이 눈에 띄었는지도 모르는 거지.
그래도 안 되겠다. 아르바이트해서라도 남편 버스는 안 태워야겠다. 내 가난의 자존심에 버스 타는 모습은 용납이 안 된다. 운전을 위해서가 아니라 무료한 눈빛으로 바깥 풍경을 볼 그림이 짠하다. 버스 작은 의자에 앉았다 문이 닫히기 전에 교통카드를 찍는 상상을 하니 특별한 것 없는 풍경이면서도 그저 짠하다. 통장에 돈 있으면서 가난을 강요한 내가 미안하다. 돈 때문에 강의 시간에도 점심시간 걱정만 했다는 소리에 "그때 나랑 만났으면 편하게 지냈을텐데.."(소 판 돈으로 밥 사주고 옷 사줬을 텐데...) 하며 진심으로 걱정해주던, 안타까워하던 남편을 이렇게는 못 키운다.
그런 의미에서, 오늘은 택시 대신 버스 태워 번 왕복 교통비 33,300원으로 스케치북이나 하나 사서 또 곰비임비 해야겠다. 오늘을 잊지 않고 되새기기 위해서 말이다.
소모되어 사라질 돈을 집에 쌓아두게 생겼으니 아~ 오늘도 알뜰하게 잘 산지도 모르겠다.
(근데 가만 보면 어머니의 양육 방식은 맞았는지도 모른다. 즉흥적이고 감정적인 내게 경제관념은 잔소리로라도 끼워 넣어져야 할 것처럼 보이니 말이다. 아니지, 어머니가 아끼는 삶을 가르쳤으니, 남편이 구두쇠같이 굴지 않아도 집이 굴러가는지도 모르니 어머니가 맞고 틀리고가 아니라 그냥 고마운 거고 돈, 돈 하지 않는 남편도 고마운 거겠다. 오늘도 철없고 대책 없는 백수 일기 끝)
무지개달 열하루 낫날(04월11일 목요일)
<토박이말>
*곰비임비*
물건이 거듭 쌓이거나 일이 계속 일어남.
대문 사진은 집 근처 산책하러 가서 찾은 네잎크로바…. 인데 그건 사진에 없네요. 두 개나 찾았지 뭐에요~ 시간이 많아서 잘 찾나요. 돌연변이가 많아진 건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