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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재택 백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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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노사임당 Apr 11. 2024

백수 가족 일기 6

배다른 자식 양육법

버스를 태워 보냈다. 배다른 자식이라 그런가 강하게 키우고 싶은 마음인 건지도 모르겠다.



남편은 소작농을 겨우 면한 농부의 아들이었다. 그럼에도 모두가 그만한 농사꾼네 아이들이라 가난을 모르고 자랐다. 친구들끼리 독사를 잡아 뱀 장수에게 팔고 그 돈으로 같이 사탕을 사 먹던 추억을 간직한, 나랑 동갑인데 아버지뻘이 아닐까 싶은 기억을 갖고 자란 사람이다. 냉인지 두릅인지를 캐서 공판장에 친구와 팔고 과자 사 먹었다는 얘기를 해주는 친구다. 아버지가 소 판 돈을 대학생 때(부산 유학 시절) 술값으로 홀랑 가져가는. 아버지가 잠바 안 주머니에 돈 있으니 필요한 만큼 가져가라고 해서 그랬다고 당당히 말하는, 내 기준에서는 돈 개념 없는 어찌 보면 철부지였다. 가난하게 자랐지만 가난한 줄 모르고 자란, 마음은 부자의 그것이었다. 그런 쪼들리지 않는 마음가짐이 좋았다.


통장에 돈이 있으면서 가족을 들들 볶는 어머니 밑에서 자랐다. 직장 생활에 적응할 즈음 평생 하고 싶었던 미술학원을 끊었을 때도 그런 걸 왜 하냐고 물감을 왜 사냐며 돈 쓰는 것만 지적하던 어머니였다. 하고 싶은 걸 하면서도 눈치가 보여 두어 달 만에 그만두며 모든 기준이 돈인 삶이 얼마나 끔찍한 지 또 한 번 느꼈다. 그래서 그런지 돈 쓰는데 죄책감을 갖는 내게 남편의 돈에 대한 느긋한 마음가짐은 전염이 되었다. 필요도 없는 외투를 싸다는 이유로 또 사도 손에 착착 감긴다는 핑계로 만년필을 또 사는 걸 보면서도 농담으로라도 입에 올리지 않았다. 항상 그렇듯 지금은 기억도 안 나지만 남편이 이런 말을 언젠간 했더랬다.


당신 결혼하고 처음에 어쨌는지 아나? 물건 사면서 3만 원만 넘어가면 나한테 물어봤데이. 사도 되냐고!

내가? 지금은 내 의지로 집도 사는, 내가?

그래. 그 얘기 지인들한테 했을 때 사람들이 얼마나 놀랐는지 아나? 그런 사람도 있냐고!


지마켓에 물건 사고 포토 리뷰 쓰며 100원을 반드시 모으기 위해 기를 쓰는 생활을 하지 않아도 마음 편한 배우자. 양배추가 냉장고에서 썩어도 "살림 이따구로 살 거냐?"" 잔소리하지 않는 남자. 종량제 봉투를 반만 채운 채 버리면서도, 그런 사치를 하면서도 남편 앞을 편안한 걸음으로 걷게 해주는 사람. 그런 짝지라 고마웠다. 사실은 너무도 소중하다. 내 첫 삶에서 다시 만나기 힘든 귀인이다.ㅋㅋㅋㅋ


그런 남자를 버스 태웠다. 보통 같으면 그냥 차를 끌고 갔을 테고 술을 먹었으니 대리를 불러왔을 남자를. 버스 노선 엉뚱하게 불러줘 몇 코스 걷게 했지만 당당히 버스 번호를 불러줘 태웠다. 잠깐이긴 했지만 백수 시절에도 택시 타고 다니던 형부를 좋게 보지도 않았으면서 벌이도 없는 주제에 택시니 대리 불러왔다면 대책 없다는 욕을 해 줬을 거면서 착한 얼굴로 버스를 타러 가는 남편의 뒷모습에 그만 눈물이 터진다.


아니, 본인의 구차함을 못 참는 것이면서 당당히 내세우진 못하고 타인을 위하는 척하는 짓인지 모르지. 내가 이렇게 돈 걱정을 하는 게 싫어져 남편의 그런 모습이 눈에 띄었는지도 모르는 거지. 

그래도 안 되겠다. 아르바이트해서라도 남편 버스는 안 태워야겠다. 내 가난의 자존심에 버스 타는 모습은 용납이 안 된다. 운전을 위해서가 아니라 무료한 눈빛으로 바깥 풍경을 그림이 짠하다. 버스 작은 의자에 앉았다 문이 닫히기 전에 교통카드를 찍는 상상을 하니 특별한 없는 풍경이면서도 그저 짠하다. 통장에 돈 있으면서 가난을 강요한 내가 미안하다. 돈 때문에 강의 시간에도 점심시간 걱정만 했다는 소리에 "그때 나랑 만났으면 편하게 지냈을텐데.."(소 판 돈으로 밥 사주고 옷 사줬을 텐데...) 하며 진심으로 걱정해주던, 안타까워하던 남편을 이렇게는 못 키운다.


 그런 의미에서, 오늘은 택시 대신 버스 태워 번 왕복 교통비 33,300원으로 스케치북이나 하나 사서 또 곰비임비 해야겠다. 오늘을 잊지 않고 되새기기 위해서 말이다. 


소모되어 사라질 돈을 집에 쌓아두게 생겼으니 아~ 오늘도 알뜰하게 잘 산지도 모르겠다.


(근데 가만 보면 어머니의 양육 방식은 맞았는지도 모른다. 즉흥적이고 감정적인 내게 경제관념은 잔소리로라도 끼워 넣어져야 할 것처럼 보이니 말이다. 아니지, 어머니가 아끼는 삶을 가르쳤으니, 남편이 구두쇠같이 굴지 않아도 집이 굴러가는지도 모르니 어머니가 맞고 틀리고가 아니라 그냥 고마운 거고 돈, 돈 하지 않는 남편도 고마운 거겠다. 오늘도 철없고 대책 없는 백수 일기 끝)



무지개달 열하루 낫날(04월11일 목요일)


<토박이말>

*곰비임비*

물건이 거듭 쌓이거나 일이 계속 일어남.


대문 사진은 집 근처 산책하러 가서 찾은 네잎크로바…. 인데 그건 사진에 없네요. 두 개나 찾았지 뭐에요~ 시간이 많아서 잘 찾나요. 돌연변이가 많아진 건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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