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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노사임당 Apr 15. 2024

수륙양용 (백수 일기 9)

자웅동체의 삶을 사세요~ 나 말고요, 당신만요!

여성은(만?) 아침잠이 많은 편이다. 남성보다는 혈압이 낮아 텐션이 좀 늦는 거라고 말하고 싶지만, 맞다. 나의 경우는 변명이다. 나는 그냥 온종일 잠을 자도 벌떡 일어나지지 않는다. 그럼에도 나의 사랑, 수면과 잠과 낮잠과 쪽잠과 초저녁잠과 통잠을 얘기하고자 말을 꺼낸 것은 아니다.

매일 아이들 등교를 위해 7시에 눈을 뜬다. 새벽 1시 2시 어떤 때는 3시까지도 혼자 커피숍처럼 붉은 등을 켜놓고 독서하는 시간 혹은 눈 감고 멍때리는  좋아 어김없이 늦잠에 드는 생활. 아! 내일 아침 얼마나 일어나기 싫고 다시 눕고만 싶을까 상상하며 잠에 드는 거다. 알람과 동시에 일어나 밥을 차리고 물통을 챙겨주고 머리를 묶어주며 최소한의 본업을 한다.

학교 가서 뭘 하는지 모르지만 7시 45분에 대문을 나서는 큰딸. 한 관문 통과. 작은 녀석은 꼭대기 층 친구와 8시 25분에 출발할 예정이라 꾸물꾸물 책상에서 장난감을 만지고 이 닦을 준비를 하며 느긋한 준비를 한다. 어서 빨리 준비해라 마음속으로 주문을 왼다. 8시 20분. 띵동~ 현관 호출이 온다. 서둘러 둘째가 대문을 나선다. 두 번째 관문 통과. 둘째가 챙기는 사이 나는 이를 닦고 다시 잠잘 준비를 끝냈다. 이때다 싶어 침대로 기어들어 간다. 이불 속으로는 구렁이처럼 슬그머니, 귀신도 모르게 가야 맛이다. 아직도 내가 빠져나온 온기가 남아있다. 아~ 따뜻해. 차가운 이불은 다시 온기가 들 때까지 잠이 들지 못한다. 온수탕에 목욕하듯 따뜻한 침대에 몸은 노곤해지며 금방 잠에 든다.

이 모든 걸 할 수 없다. 주말, 일요일인데 말이다. 아침 9시 수업이다. 전날 알람을 맞추고 잠이 들었다. 8시에 남편은 둘째와 운동하러 간다. 부산한 움직임에 일어났다. 집에서 줌 수업하는데 마스크 끼고 가릴 수도 없고 최소한의 단장을 하고 컴퓨터 앞에 앉는다. <독일은 우리와 같은 비율로 원자력이 있었지만, 점차 줄여 지금은 한 기도 없습니다. 원자력이 없으면 전력 생산에 커다란 차질이 생긴다고 하는 주장은…. > 생태적 삶 수업이다. 대체 수업 숙제는 'RE100'이던데 그냥 수업 듣길 잘했다. 숙제가 더 적다. 1시간 경과 10분 쉬는 시간이 되었다. 거실에 나가보니 남편은 소파에 누워있고 아이들은 끼리 무언갈 하느라 바쁘다.


밥 안 주나?

......


운동을 빡시게 했나보다 뻗었다. 급하게 치킨 너겟에 밑반찬을 꺼내 밥을 차려준다. 남편이 잔다는 핑계를 대고 나까지 먹어버린다. 남편은 백수 상태다. 일을 하지 않는 상태지만 오랜 기간 일을 하며 몸도 마음도 아플 터. 쉬게 해주고 싶다. 성실하게 쉬며 몸도 회복하고 마음도 태릉인으로 다시 돌아오길 바란다.

남편이 누워있다. 마누라가 여대생이라 수업을 듣고 있는 오전. 아무도 밥도 안 먹고 있는데 누워있다. 남편이 쉬길 바란다. 푹 쉬길 바란다. 마누라가 일이 있어서 못 차리면 밥을 좀 챙기면 안 되나? 남편이 날아다니던 때처럼 건강해지면 좋겠다. 아니 집에서 놀면서 청소도 밥도 좀 차리면 안 돼? 남편이 그동안 못 잔 잠도 많이 자고, 일하며 한 번도 못 가본 꽃구경도 가게 된다면 좋겠다. 본인 바쁜 일이 있어도 마누라가 대학 공부한다고 저렇게 있으면 뭐든 도와주려고 해야지, 누워있어? 남편이 쉬고 있으니 보기 좋다.

정신 착란이 오려고 한다. 아냐! 남편은 쉬어야 한다. 나는 아이들 밥을 차려주면 된다. 어려울 것도 힘들 것도 없다. 남편 손가락 없이도 두 아이 다 키웠다. 독박 육아로 키워냈는데 갑자기 남편 손이 왜 여기 없고 저기 있냐 섭섭해할 것도 없다. 그런 마음 예전에 많이 들었는데 나만 힘들었다. 사이만 나빠졌다. 여대생은 현명해졌다. 3살 딸 키우는, 3살 (딸) 엄마 아니다.


남편이 다니던 회사에 남편보다 두어 달 먼저 그만둔 팀장이 있다. 이 회사에서 더 오래 일했지만 일을 할수록 생명 단축의 길이라 어차피 죽는 거 굶어 죽는 게 낫다는 판단을 하며 고혈압 사망을 피한 사람이다. 그는 다정한 남자다. 집에서 요리도 잘 하고 시간만 나면 아내에게 전화하는 사람이다. "보험 연락해야 한다.. 자동차 몇 킬로인지 사진 좀 찍어 보내줘."라는 류의 대화가 아니면 통화할 일이 없는 우리 부부에게는 극히 이상한 커플이다. 그가 집에 있으면서 아마 집안일도 아이들도 열심히 돌보고 했을 거다. 그는 좋은 사람이다. 하루는 그 집 아내가 이렇게 말했단다.


"내 일 탐내지 마!"

아무리 직도 없이 놀고 있지만 당신은 좀 쉬어. 밥하고 아이 돌보고 살림하는 건 내 본업이니 넘어오지 마! 라는 뜻이 아니겠는가? 말도 어쩜 저리 우아하게 할까? 내 표정을 보더니 남편이 해석을 해준다.

"나도 그렇게 생각했거든. 근데 형수가 자기는 주부가 본업이니까 회사 가서 일할 생각 없다고 투잡 안 하겠다는 의지의 표현을 그렇게 한 거래! 대박이지?"

"크크 하하하 우와~~~ 대단한데? 그 정도로 함의를 둔다고?진짜? 작가네 작가! 내가 졌다 졌어~" 나의 단단한 편견이 우지끈 깨어진다.


그래 나도 일하러 안 갈 거다. 아니 갈지도 모르지. 하여튼 지금은 당신이나 나나 백수다. 남편이 일 안 하면서 집안일마저 하지 않는다고 화를 내려 했다니 남편이 놀고 있으면 내가 당장 생활전선에 뛰어들지도 않으면서 필요할 때만 수륙양용 자웅동체가 안 된다고 버럭버럭할 뻔했다.


여보 그냥 하던 대로 해! 아직 나 견딜 만해! 170센티미터에 45킬로 부러질 것 같은 비율의 사람처럼 내 뇌도 살이 없지만. 휘청휘청 불안하지만 오늘은 오늘은 괜츈하다잉! 맘껏 자라잉~


무지개달 열닷새 한날(04월15일 월요일)


<토박이말>

*우지끈*

크고 단단한 물건이 갑자기 부서지거나 부러지는 소리

새벽 2시 책은 보는거지 사진용이 아닙니다. 독자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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