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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노사임당 Apr 16. 2024

워라벨 있는 삶 (백수 일기 10)

중의적 표현에 주의하세요

세월호 10주기입니다.



열 번째 봄.





문자가 잘 가지 않는다. 아니 네트워크 오류로 보내지지 않는단다. 가뜩이나 전화도 문자도 톡도 잘 씹고 안 받는 내가 어쩌다 확인한 문자에 답을 보내고자 버튼을 눌렀음에도 가지 않으니, 나는 그냥 <연락 안 되는 사람>이라는 주홍 글씨 낙인이 찍힐 판이다. 뭐 억울해할 거야 없다. 다만 내가 원해서 아웃사이더가 되는 게 아니라 원하지 않았음에도 그것으로 유지된다는 것만은 썩 유쾌하지 않다. 자발적 앗싸가 아니라 비자발적이라는 그 이유 하나만으로 말이다. 되더라도 내 발로 될 테다 이 말이다.


전화기를 하러 갔다.

갑자기 설화 하나. (옛날 옛적에 어머니 집에 살던 한 처녀는 장애인 등록이 되어있는 어머니 명의로 전화기를 개설했데요. 통신비가 얼마나 싸길래 그랬을까요? 그게 말이지요. 6만원 7만 원 하는 통신비가 2만 원이면 되었답니다. 그게 이젠 할부에 의무 뭐 이런 것까지 끝나니 만 원대로 써지는 거예요. 그래서 그 처녀는 어머니 명의로 전화기를 아직 쓰고 있데요. 그때 그 아가씨는 없고 아줌마가 되어 누구의 어머니가 되었는데도 말이에요. 맨날 어머니가 본인 화나게 한다고 노래를 부르면서 이렇게 이용하고 있었던 거지요. 혼자 착한척하던 못된 아(가씨였던 아)줌마 이야기였어요~)

 아…. 너무 싫다. 무엇을 하면 더 저렴하고 어떻게 하면 아낄 수 있고 저렇게 하면 편리하고 이건 이렇게 깔고 눌러서 어쩌고 그렇게 해 놓고 다시 하고…. 안되면 다른 날 하고…. 살려고 억지로 먹어야 하는 음식도 아니고 전화기를 데시기하듯 살아야 한다니. 전화기 없이 살고 싶다. 명의 변경은 또 어떻고. 이젠 집 밖으로 나오지도 않는 어머니를 모시고 갈 수도 없고. 연락 오는 사람도 하는 사람도(?) 없는 마당에 집 전화 개설하고 집에 있을 때만 가끔 통화하면서 살고 싶다. 복.잡.하.다. 편리하기 위한 인간의 노력은 엄청난 복잡과 어려운 작동 원리 장착을 요구한다. 현대인 하기 싫다. 콩 뿌리면 콩 나고 도토리 뿌리면 참나무가 나는 어느 정도 예상 가능하고 여유 가능한 시간 흐름이 좋다. 빠른 상황판단에 새로운 기능을 넣어야 하는 영리하고 편리한 기계 생활이 영 불편하다.

한마디로 나이 먹었다.


전화기는 실패하고 집으로 간다. 지나가는 길에 트럼펫 수강 수시 모집 현수막이 보인다. 그러고 보니 언제나 희망 사항으로만 간직한 남편의 '기타 배우기'가 생각난다.


"여보, 트럼펫 가르쳐주네? 당신도 배워. 기타 말이야. 나 이 동네 월요일 그림 배우러 오잖아. 문화센터 거기서 가르쳐줘."

"그럴 여유가 어딨냐?"

"아니, 놀고 있는데 여유가 없으면 언제 배워! 일할 땐  일한다고 못 배워 일 안할땐 마음의 여유가 안 되어 못 배운다 하면!!!"

"취미도 할 수 있는 일로 해 봐야지."

"그래~ 이젠 좀 쉬면서 하는 일 해보자! 일과 삶의 균형! 워라벨 맞추는데 work-and-life balance가 아니라 당신은 war--and-life balance다. 일은 전쟁이다. '삶은 전쟁이다'다! 좀 적게 벌고 작게 쓰면 되지. 당신이 조금만 아끼면 되잖아~"

"아니 잠깐만 뭐라고? 흐흐흐 누가 뭐 어떻게 하면 된다고?"

"아이고~~~ 적게 벌고 적게 쓰면 되는 거야. 당신만 조금 아끼면 다 해결되잖아~"

"아니 말이 이상하잖아."

"이상하긴 뭐가 이상해. 당신이 좀 아끼고 일도 좀 줄이고 딱 맞지 헤헤헤"

"당신은 안 줄이고?"

"당신이 헤프니까 줄여~ 난 사치해야 해! 흐흐흐"


이 백수 일기를 브런치 북으로 내려면 40개나 60개 꼭지는 쓰고 싶은데. 그중에서 쓸만한 15개만 추려서 말이다. 남편이 자꾸 술을 마신다. 이 사람이 만나자, 저 사람이 만나잔다. 집에 있는 아내는 자발적이든 비자발적이든 외톨이, 아웃사이더인데 남편은 항상 인기인이다. 어제는 자기 회사 들어오라는 사람과 만나고 왔다. 이 백수 일기가 얼마나 이어질지 약간은 불안하지만, 또 생각보다 불안하지 않을지 모른다. 빠른 현대사회 흐름에 휩쓸리는 것일 뿐 알고 보면 실속 없이 술만 마신, 헛걸음했을 수도  있으니까 말이다. 그나저나 내일 또 전화기 재 도전하러 가야 하나? 워라벨도 지켜지고 내 느린 삶도 보장되는 그런 삶 어디 없나? 어떻게 하는 거지?


뭐 어쩌긴 어째! 되는대로 살고 그때그때 해결하면 되는 거지. 일도 전화기도 말이다. 전화기는 어떻게든 통신사 이동이 될 테고 남편도 조금 더 여유로운 곳으로 가는 걸로. 그런 방향으로 가지리라 생각하며 가면 될 거다. 도토리 심었다 생각하고 조금은 여유도 부리면서 말이다. 현대사회에 도토리 심고 싶은 백수 일기 끝


무지개달 열엿새 두날(04월16일 화요일)


<토박이말>

*데시기다*

먹고 싶지 않은 먹거리를 억지로 먹다.


엉덩이 통통한 호박벌을 찾아보아요!  귀여웡~~~~~남편 왈. 물린다!!조심 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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