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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노사임당 May 07. 2024

제목을 입력하라고요?

그런 거 시키지 마세요. 그럴 기분 아니니까요

이런 그림을 예상한 게 아닌데.


금의환향하리라 기대하진 않았지만 그렇더라도 이렇게 깨질진 몰랐다. 분노해야 할지 우울해야 할지 누군가를 정해 화풀이를 해야 할지 모르겠다. 한마디로 어이가 없다.


내가 살아온 길을 돌아보게 된다. 태어나고부터 48년. 뭐 사실 사는 데 지장이 있을 만큼 인지에 어려움을 겪긴 했다. 간단한 계산도 남들 앞에서 얼굴색 변화 없이 되지 않았고. 선생님이 칠판에 열심히 적으며 설명하는 내용도 거의 이해되지 않았다. 하다못해 도시가스 요원이 검침 기계를 교환해야 하니 이렇게 하게 되면 저렇게 하십시오하는 말도 들리는 대로 이해가 되지 않아 고개만 끄덕이는 나였다. 맞다. 나는 내 기준에서는 'ㅂㅂ'다. 그렇다고 사회에서 바보를 인정받기 위한 절차를 밟을 수는 없다 보니 남들 앞에서는 사회생활 부적응자라는 낙인으로 겨우 살아온 외길 인생이다. 인지 능력이나 이해력이 떨어져서가 아니라 자기 세계가 확고해서 그렇다, 저 사람은 엉뚱하다는 이름표를 받아놓고 살아냈다.


꽃이 피는 식물이거나 어디에 필요한 약효 같은 능력이 숨겨진 것도 아닌, 암만 봐도 잡촌데 하우스에서 길러져 사회 돌아가는 것도 세상 돌아가는 이치마저 깨치지 못한 심한 삶치, 인생치다.

그럼에도 나이에 비례해 조금씩 평범으로 보이는 듯도 했다. 안 되는 건 안 하고, 계산이 필요하면 계산기를 이용하고 외울 일이 있으면 적으며 모자람을 인정하며 살았다. 노력하기에는 에너지 소모가 크기에 그걸로 삶의 목적을 정하는 게 아니라면 타협하고 부족은 부족으로 충분은 충분으로 받아들였다. 오빠나 언니가 전화번호 정도는 보자마자 외우는 것과 다르게 나만 안 외워지는 것도 아이큐 탓해가며 편하게 살았다. 그렇게 탄탄대로(?)를 살아온 인생이건만 무슨 욕심에 새로운, 하고 싶은 걸 하면서 살려한다. 그림도 글도 공부마저도.


 밤새워 과제를 해본 적도 긴 시간을 들여 자격증을 따려고 노력도 해 본 적 없는 편안한 인생에 '이런' 도전이다. 할 일이 꽤 된다. 힘들고 하기 싫은 게 아닌, 하고 싶어서 하는 일들이라 생각보다는 행복한 작업이다. 다행히 내가 할 수 있는 것들로만 잘 골랐고 그것들로 '그들만의 리그'. 누군가에겐 평범 같은 보통처럼 보이는 세상까지 입성했다. 그림으로 동아리 세계에도 글로 브런치 월드에도 들어오게 되었으니 내 인생 이쯤에서 이미 성공이다. 그 성공으로 가는 길목, 이미 성공 월드에 진입했다 생각한 내게 과거에서 온 그림자가 발목을 잡았다. 남들이 설명해 놓은 것을 이해하지 못하는 심각하게 '삶치' 성격이 툭 튀어나와 있었다.


"여보세요? 안녕하세요. 문화교양학과 3학년 노사임인데요. 중간 과제 점수가 이상해서 문의드려요"

"학번을 알려주세요"

"202443-123456이요"

"점수가 26점 아래가 되면 이유가 적혀 있어요."

"아…. 그래요? 그럼 저는 있겠…."

"잠시만요. 평가 의견 보기"

'이번 과제 범위가 아닙니다? 헉. 뭔데!!!'

"과제 범위가 아닌 부분 과제 내셨다네요…."

"아, 예 감사합니다"

"뚜뚜 뚜뚜루루루"

'아 거짓말. 누가 아니라고 말해줘. 제발~!'


책 읽고 독후감 쓰기 그까짓 거 하며 거만했나? 무슨 책을 읽고 어떻게 쓰지 하며 흥분했던 기억은 있는데 본때를 보여주겠어! 하며 까불었나? 학우(70~80대까지 계심)들보다 어려서 (글) 근육이 좋은 내가 유리하겠지 하며 거들먹거렸을까? 어쩐다고 내가 갖다 붙여놓은 과제 범위 설명도 가볍게 건너뛴 아니, 보고도 안 보며 숙제를 냈단 말인가. 그것도 더 이상 잘 쓸 수 없다며 과감하게, 자신감에 차 제출한 과제를 말이다. 망했다, 이 과목은.

출석 20점(강의 듣기). 과제 30점 만점에 20점을 받으면 기말에 아무리 잘해도 50점 만점까지야 받. 받으면 되나? 그럼 90점. 90점이면? A 학점은 되는데…. 어 혼자 무슨 소설이냐! 그게 되겠? 아~어쨌든 핸디캡을 내 손으로 받고 시작한 이번 학기 이 과목은 의욕 상실이 되어버렸다.


정신 차리자. 이제 시작인데 앞으로 나다운 실수 그만하고 잘하면 되는 거지. 그래 거짓말처럼 기말시험 백 점 받아보겠어~ "거짓말!!!!!"을 외칠 만큼, 내 눈으로 보고도 믿기지 않을 점수로 말이야!



아~ 나답지 않은 내가 되고 싶다~~~ 격하게!!


평가하신 분의 감정이 고스란히 느껴지는 마침표 두개..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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